돌아온 아기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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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기염소
  • 문미정 송석영
  • 승인 2019.10.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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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지금, 데리러 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봄까지 아기 염소 ‘깜지’에 대한 글을 두 번을 썼다. 한번은 데려오게 된 사연이었고, 한번은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였다.
그리고 초여름, 연재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깜지를 농장으로 돌려보냈었다.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고 다시 건강해진 깜지는 어느새 젖도 다 떼고 풀도 먹게 되었지만 풀만 먹고 사료를 전혀 먹지 않아 다른 또래보다 작았다. 임시보호를 하고 있는 나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어차피 농장 염소들과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지라 원래 염소 농장으로 돌려보냈다.
 
깜지를 농장으로 돌려보낸 후에도 우리 가족은 자주 깜지를 보러 가곤 했다. 아이들은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매일같이 창문을 열고 깜지를 불렀다. 멀리서 이름을 부르면 엄마를 찾듯이 달려오기도 하고 우리에서 꺼내달라며 울기도 했다. 이러다가는 깜지가 염소 농장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서 우리가족은 여름 한 달간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이들 학교에 볼일이 있어 학교로 가는데 깜지가 염소 우리 밖을 나와 길가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였다. 도로변을 혼자 돌아다니는 깜지가 위험스러워 보여서 바로 농장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깜지가 대로변에서 혼자 돌아다녀요. 알고 계셔요?”
“응. 알고 있어요. 걔 매일 나와서 그렇게 풀 먹어요.”
“네? 우리 안에 안 있고 돌아다녀요?”
“아이고, 사료를 하나도 안 먹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하면 풀어주고, 퇴근하면서 들여 놓고 나가요.”
“네? 뭐라고요?”
 
사료를 먹이고 다른 염소들과 잘 적응하라고 농장으로 돌려보냈는데 예상과는 달리 사료를 전혀 먹지 않더란다. 그리고는 배고프다고 너무 울어대니 안쓰러운지라 출근하면 우리에서 꺼내서 이렇게 밖에 꺼내둘 수 밖에 없었다고 하신다. 문제는 염소가 밖을 혼자 돌아다니니 여기저기서 전화를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사장님이 아주 성가시다면서 데려다가 키우라고 하신다.
 
염소 값이 얼마인지 알기에 선뜻 받기엔 좀 저어되었다. 우유 먹일 때도 내가 우유를 산 것은 얼마 안 되고 사장님이 우유를 다 사다 대주셨다. 살리느라 애먹긴 했지만 내 염소로 삼기에는 무리였다. 그래도 나는 ‘깜지 엄마’ 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먹이를 잘 먹고 잘 크라고 농장으로 보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고 깜지는 여전히 작았다. 그리고 대로변에서 그렇게 풀을 뜯고 있는 게 여간 불안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깜지를 집으로 데려왔다. 어차피 안 먹는 사료, 풀이라도 안전한 곳에서 실컷 먹이고 싶었다. 온 가족이 대 환영이었다. 아이들도 아이들 아빠도 다시 돌아온 깜지를 너무나 반겼다. 다시 돌아온 며칠은 자꾸만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싸워야 했지만 이제는 자기 집과 잔디 마당에서 자기 영역을 잘 지킨다.
 
집에 돌아온 깜지는 아침에 해 뜨면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계속 풀을 뜯어 댔다. 농장에서 홀쭉했던 배가 집에 와서 빵빵해졌다. 덕분에 우리 집 마당엔 잡초가 싹 없어져서 골프장처럼 맨들맨들해졌다. 저녁이면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즐기고 아이들과 나란히 달리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등산도 하고, 고구마를 캐러 같이 가기도 했다. 아침에 아이들과 내가 집을 나서면 자기도 데려가라고 울기도 한다.
 
그렇게 깜지는 다시 우리 식구가 되었다. 아이들도 깜지가 너무 예쁘다며 인천까지 데리고 나오고 싶어 하지만 도시에는 깜지가 먹을 만한 먹이가 너무 부족하고 하루 종일 구슬 똥을 싸는 깜지의 신체 리듬을 우리 식구가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다시 데리고 왔던 첫 주말은 인천 도시 집에 데리고 나왔다가 주말 내내 온 집안에 구슬 똥 장식을 해놔서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주말에 도시로 나올 때는 깜지를 다시 농장으로 돌려보내고 우리가 섬에 다시 들어가면 집으로 데려온다. 그래도 이제 거의 매일 깜지를 볼 수 있어서 우리 집은 더 즐거워지고 풍성해졌다.
 
한번은 주말에 섬에 못 들어가고 월요일에 들어가는 바람에 월요일 오후까지도 깜지를 데려오지 못한 날이 있었다.
따르르릉~
염소농장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깜지 왜 안 데려가요? 여기저기서 염소 돌아다닌다고 전화오고 아주 성가셔. 얼른 데려가요~”
“네~ 지금 데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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