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사랑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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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사랑의 미덕
  • 이권형
  • 승인 2022.01.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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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6) ‘산울림’의 《너의 의미》(1984년)
1984년 발매된 '산울림 제10집' 앨범 앞면

 

음향 수업을 들었을 적에 가장 처음 배운 게 ‘칵테일파티 효과’였습니다. 소란스러운 칵테일 파티 가운데에서도 의도적인 집중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아주 간단한 개념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 지각(知覺)의 ‘지향성’에 대해 이해한다면 다양한 기술적 응용도 가능하겠죠. 선택적 지각의 가능함은 그만큼 우리가 가진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속성입니다.

텅 빈 몸짓, 텅 빈 패션, 텅 빈 표정 등등. 사교장은 갖가지 화려하고 텅 빈 기호들의 장(場)입니다. 누군가의 의미가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공연히 흩어져갈 쓸쓸한 기호들의 칵테일파티. 그렇게 파티의 시간은 하릴없이 흐릅니다. 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도 ‘누군가’의 그 웃음, 작은 눈빛 하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 따위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 오늘 얘기할 곡 <너의 의미>처럼요.

텅 빈 기호들의 세계에서 한 대상이 뿜어내는 기호들이 선택적으로 지각된다는 것, 그것만이 의미가 되고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는 것, 그러한 매혹의 경험들은 일면 신비롭지만, 난처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낯선 세계를 스스로 해석해야만 하니까요. 스핑크스의 시련 앞에서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했던 오이디푸스처럼, 사랑에 빠진 주체에겐 ‘너’의 모든 것이 커다란 수수께끼처럼 주어집니다.

그런 의미로 <너의 의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향해 창을 내겠다는 의지를 다시 읽어봅니다. 단 한 단어도 ‘사랑’을 언급하지 않는 이 곡이 사랑 노래처럼 느껴진다면 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지, 낯선 시련 앞에서도 무엇이 슬픔으로 꽃을 피우고, 그를 향해 마음의 성전을 세우게 했을지 생각하면서요.

<너의 의미>는 가볍고 단순한 장조로 흘러가는 곡입니다만, 그 근간에는 쓸쓸함이 깔려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본래 일방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자의 쓸쓸함입니다. 상대방의 의중과는 별개로 ‘너’에게서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던 건 그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너’는 사랑받는 자이며, 화자는 사랑에 빠진 자입니다. 그는 그러나 운명적 사랑의 관계에 대한 환상에 몰입하거나, 터질듯한 정념을 품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사랑이란 다만 ‘너’의 세계를, 그 정답 없는 수수께끼를 홀로 배우고 해석하는 과정이니까요.

세상엔 다양한 관계의 형식이 있을 수 있고, 고로 특정한 사랑의 방식이 더 모범적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너의 의미>를 소개하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 곡이 가진 ‘배움의 태도’가 낯설고 신비로운 타자의 세계를 마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칵테일파티 효과’의 개념은 매 순간 무엇인가에 매혹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원리를 상기시킵니다. <너의 의미>는 그러한 삶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겸허히 배우는 자의 노래입니다. 이 곡이 가진 그런 점이 귀한 미덕으로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  산울림’ <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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