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 사람들의 유쾌한 집들이
상태바
골목 안 사람들의 유쾌한 집들이
  • 이세기
  • 승인 2022.07.08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10) 골목 안 사람들
골목

 

골목 안 사람들

박씨가 이사 온 그날 밤, 골목 안이 발칵 뒤집혔다. 술판이 벌어졌는지 고래고래 소리가 담장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내 집에서 내가 떠드는데 누가 뭐라고 해!

고함 지르는 소리와 함께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평온했던 골목 안이 이 낯선 소동으로 인해 야단법석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동네가 이렇게 됐담.

소란에 나온 골목 사람들 몇몇이 혀를 찼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저녁이었다.

구도심 여느 곳의 풍경이 그렇듯이 사동(四洞)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집에서 키우는 고추나 상추에 물을 주고, 오후 6시 무렵이면 일제히 나와 담장에 주차금지 팻말이나 물통 등을 경쟁하듯이 서둘러 내어놓거나 퇴근하는 가족 차가 오기까지 기다리며 주차 자리를 잡고 서 있다. 그 시간만큼은 마법이라도 걸린 듯이 비좁은 공간에 황금분할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침 퇴근 시간이 되어 덩치가 제법 큰 화물차가 진저리를 치며 거대한 양철통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화물차의 정체에 휘둥그레졌다. 기껏해야 자가용이 아니면 소형트럭이 전부인 골목에 2.5t짜리 괴물이 나타나자 다들 의아하게 쳐다봤다.

화물차에서 내린 사람은 새로 이사 온 사내였다.

아니, 이렇게 덩치 큰 화물차를 골목에 주차하려고 그래요?

내 집에 내 차 대겠다는데, 뭐요?

이 골목에 당신만 살아!

마침 자신들의 오랜 권리가 침해받은 것처럼, 한 무리의 동네 여자들이 화물차의 출현에 이구동성으로 항의하며 시비가 붙었다.

그런데 사내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별 좆도 아닌 계집년들이 지랄이네.

하며 그는 일침을 가하고 철대문을 발로 박차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느닷없는 쌍욕에 어이가 없었는지 웅성대더니 고성이 일거에 터져 나왔다.

야, 나와!

어디 계집년 맛 좀 봐라.

너는 계집년도 없냐.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밑도 끝도 없는 험한 악담이 쏟아져 나왔다.

골목 안 여자들은 급기야 아주머니부대로 의기투합 되어 화물차를 철수시키고 사과를 받겠다는 심사로 기세등등했다.

저런 막돼먹은 인간이 어쩌다 우리 동네와 기어들어 왔을까.

이곳저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졌다.

사내의 집 마당은 기름보일러, 파이프, 사다리 등과 함께 건축 폐자재가 구석마다 쌓여있어 집이 온통 고물상 같았다. 게다가 그가 이사 온 지 일주일도 안 돼, 마당에 있던 자목련 나무를 일거에 싹둑 베어 버리는 바람에 골목 안 사람들은 뭐, 이런 운치 없는 사람이 다 있느냐며, 쓴소리들을 뱉어냈었다.

그뿐 아니었다. 소음도 끊이지 않았다. 마당의 장독대를 부수느라 한 달 내내 함마 두들기는 소리에 진저리를 쳤다. 한나절 일감쯤 되어 보이는 일을, 그는 야금야금 쥐새끼가 고구마를 씹어먹듯 틈나는 대로 해치웠다. 소음 고문이 따로 없었다. 가뜩이나 열대야에 창문이라도 열어 놓으면 여지없이 밤늦도록 고성이 오가는 술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더위에 창문까지 닫고 살아야 하냐며 불만이 터져 나온 터였다.

마침내 소란은 골목 안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여기 여자를 우습게 여기는 짐승이 하나 산다며 소리를 질렀다.

금방이라도 사내의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갈 듯한 기세로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으르렁거렸다. 꾸역꾸역 스무여 명의 동네 아주머니와 두어 명의 사내들이 합세했다.

문 열어, 안 열면 부수고 들어가겠어!

분해서 못 살겠다, 문 안 열어!

사내의 집에서 어떠한 기척도 없었다. 급기야 골목 사람들은 담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으름장과 더불어 철대문을 탕탕 치며 언성을 높였다. 집 안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폐자재 하며, 폐차장같이 음습하고 어수선한 집에 살고 있는 사내의 정체를 알아야겠다는 투였다.

잠시 후 철대문이 열렸다. 작고 꾸부정하니 등이 활처럼 휘어 걸음조차 걷기 힘든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사내의 부인이었다. 곱사등이었다. 부인은 수화로 뭔가로 말을 했지만 알아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묵묵부답의 발길들은 골목 안쪽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일이 벌어진 다음 날 저녁이었다.

사내의 곱사등 아내는 마당에서 손수 삶은 수육과 떡을 돌렸다. 골목 안에는 돗자리가 깔리고, 모처럼 환하게 웃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들려왔다. 골목 안쪽으로 오동나무 잎새가 가로등에 의해 모양 좋게 그림자를 만들었다. 상추쌈에 주먹고기가 구워지고, 구성진 노랫소리도 흘러나왔다. 이집 저집에서 불판과 밥상이 나오고, 걸음걸이조차 힘에 겨운 사내의 아내가 앉은 자리에는 어느 곳보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술이 얼추 들어가고 골목 안 사람들은 비로소 이 골목에까지 오기까지 오십 년간의 살아온 사내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

박씨가 태어난 곳은 산동네인 수도국산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집을 사서 이 골목에 들어오기까지 삼십여 년 동안 하루도 쉴 날이 없이 쓰레기장에서 온갖 오물들과 싸워가며 생활했다는 것과 지금의 그의 아내 역시 어린 시절부터 수도국산에서 죽마고우로 평생을 함께해온 순정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중고 화물차를 구해서 폐자재를 쓰레기장에 옮기는 폐기물처리 일을 맡게 되었다. 수하에 가족은 그의 부인이 전부였다.

늦도록 골목 안은 왁자한 집들이로 잠시 휴전이 찾아왔다. 생목숨을 이어가는 악다구니가 멈춘 자리에 골목을 즐비하게 차지한 차 지붕 위로 물먹은 북두의 별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골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