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잔과 따뜻한 차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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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잔과 따뜻한 차 한잔
  • 이세기
  • 승인 2022.12.23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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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 소설 - 북창서굴]
(22) 갯가마귀 손
자사호
자사호

찻잔을 손에 쥐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봄이라도 왔을까. 새소리가 금방이라도 나뭇가지에서 지저귈 것 같다.

항저우 서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한 찻잔인데, 시원한 청화 안료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량감이 그지없다. 금방이라도 꾀꼬리가 잔에서 날갯짓하며 뛰쳐나와 배롱나무에 앉아 울 것 같다.

내게는 분청 잔이 몇 개 있다. 특별한 골동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소유하게 됐다. 차를 몹시 좋아하는 지인이 선물한 잔도 있고, 차인과 함께 문경요를 다녀갔다가 손수 도천(陶泉) 선생이 내놓은 잔을 묻지도 고르지도 말라며 구한 찻잔도 있다. 잔 중에는 사연 깊은 중국풍 찻잔이 있다.

중국풍에는 묘하게도 풍치미가 있다. 뭐랄까 기품 있는 자태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풍이 있다. 가만 청화백자 찻잔을 보노라면 색감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눈 쌓인 댓이파리를 보는 것처럼 청아하다. 부드러운 남종화 여백은 강골의 북종화보다 눈이 시원하다. 텅 빈 여백의 기운이 더위를 잊기 위해 쥘부채에 묵점으로 그린 물고기 한 점에 비교할만하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이어도 파초와 분청 잔이 있어 여름을 지내기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흰 여백에 푸른빛 청화색을 입힌 잔을 바라보면 은은히 이열치열 더위도 견딜만하다. 겨울이 절로 기다려진다. 차 한 모금이 몸을 데워주기 때문이다.

댓이파리
댓이파리

한번은 어머니가 설거지하다가 잔을 깼다. 중국산 청화 잔이었다. 베이징 유리창(琉璃廠)에서 한나절 발품을 팔아 다닌 끝에 자사호(紫沙壺)와 함께 구한 것이었다. 눈길이 자주 갔던 잔이었다. 잔이 깨지자 순간 나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 비싼 잔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만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엄습해 억제할 수 없는 기분에 버럭 화를 냈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내 성미도 한몫했다. 어머니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심지어 돈을 줄 터이니 다시 살 수 없냐고 했다. 종심(從心)이 넘은 어머니께. 나는 살 수가 없다고 으름장으로 은근히 불편한 심기를 내뿜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틈나는 대로 중국을 다녀올 기회가 오면 반드시 다시 잔을 구하리라 마음먹었다. 마침 중국에 다녀오는 후배에게 똑같은 잔을 사와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후배는 부탁을 잊고 있다가 공항에서 생각이 나 잔을 사려고 했지만 그만 비싸서 살 수가 없다는 답이 왔다. 못내 아쉬웠다.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다가 중국을 다녀오게 됐다. 혹여 그 잔이 없으면 어쩌지? 그새 값이라도 올랐으면 어쩐담? 하며 근심이 앞섰다. 다행스럽게도 깨진 잔과 똑같은 잔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서호를 다녀오는 길에 상하이에서 예전의 잔과 똑같은 잔을 하나 사 왔다. 언제 다시 가면은 기필코 잔을 사 오리라 오매불망 잊지 않고 있었던 잔이었다.

잔이 좋아서 사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컸다.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간혹 집에 들르기라도 하면 여의 그 깨진 잔을 화제에 올려놓았다. 아직도 못 구했냐? 아마도 마음에 몹시도 걸렸던 모양이었다. 서운한 감정이 아니라 안타까운 심정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이유도 있어 똑같은 잔을 하나 더 구하게 된 것이다.

사 온 잔을 어머니가 집에 온 날 반가운 마음에 보여주었다. 이 잔이 그 애지중지하던 깨진 잔이냐? 물었다. 그러면 됐다.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는 이미 여든이 넘어 있었다.

나는 그만 ‘애지중지’라는 말에 덜컥 마음이 쓰였다. 그 말에 위력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후로 잔이 손에서 멀어졌다. 간혹 눈길은 주었지만, 손때는 멈추었다. 손에서 멀어지자 책장에서 먼지만 켜켜이 쌓여만 갔다.

언제 한번 집에 들른 어머니는 책장에 올려진 잔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차 한 잔 줘라, 했다. 나는 비로소 잔을 씻고 따뜻하게 데워 차를 한 잔 내었다. 잔을 받아쥔 어머니는 잔을 요모조모 살피는 눈빛이 천진했다. 물때가 잔뜩 낀 갯가마귀 손에 잔이 쥐어져 있었다. 잔을 쥔 모양이 맞춤이었다.

순간 부끄러움이 밑바닥에서 솟았다. 깨진 마음이 비로소 손때가 묻어 다시 태어나 소생하듯 아물어졌다. 금이 간 것은 잔 주인인 내가 아니고 어머니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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