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게 설레임 주는 공간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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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에게 설레임 주는 공간 됐으면”
  • 김경수 기자
  • 승인 2023.01.25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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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공작소를 가다 - 아트 & 숨]
(7) 갤러리밀레 정광훈 대표
지난해 중구 개항장거리에서 갤러리 3곳이 문을 열었다. 동구 배다리거리는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문화공간이 확 늘었다. 이들 공간은 특유의 색깔들을 입히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in은 이곳들을 포함, 곳곳에서 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나 공간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시작한다. ‘예술 공작소를 가다-아트 & 숨’이라는 문패를 달고 매주 수요일마다 한편씩 이어간다.

 

인천 부평 십정동사거리에서 부평아트센터쪽으로 가다보면 대로변 주유소가 눈에 들어온다. 그 주유소 뒤편으로 주차장 넓은 단층 건물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켠에 ‘갤러리밀레’를 품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자 카페형 레스토랑, 장소 이름도 그대로 ‘밀레’다.

“십정동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의욕에서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림에 문외한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보면 즐거워한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차를 마시고 음식을 나누는 공간에 문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그보다 좋은 순 없다고 생각했죠.”

갤러리밀레 대표이자 공간 전체를 운영하고 있는 정광훈 대표는 멋진 문화공간 하나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딱 5년전 일이다.

사실 그의 직업은 문화와는 동떨어진 지점에 있는 듯 보인다. 정유사에서 근무하다 주유업에 뛰어들어 주유소와 충전소 등을 두루 운영하고 있는 그다.

이 대목에서 정 대표의 차별성이 있다. 단순한 주유소가 아닌 복합공간과 결합을 하되, 그 대상이 흔한 편의점과 빵집을 넘어서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주유소와 갤러리, 공연장, 문화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정 대표가 갤러리를 꾸미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다. 조영남 위작 논란으로 사회적 이슈가 뜨거웠던 시기를 지나면서 당시 조영남 그림 대작을 했다는 송기창 화백을 만난 것이 단초가 됐다.

“화백이 논란을 피해 김포의 한 농막에서 숨어지낼 때였어요. 한여름 숨막히는 열기 가득한 비닐하우스에서 열정적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목격했죠. 곧바로 거쳐를 옮겨드리고 후원자가 됐습니다.”

차츰 화가들의 전시 환경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려면 최소 천만원대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전시할 공간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었다.

“송 화백에게 전시를 한번 열어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직접 갤러리를 꾸며보자 했죠.”

 

주유소 옆에서 가게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식당을 발견했다. 물이 질척이던 지하 공간을 갤러리로 말끔히 단장했다. 복합문화공간을 내걸고 ‘밀레’ 문을 활짝 열었다. 첫 전시로 송 화백을 초대, 개인전을 펼쳤다. 드디어 약속을 실행한 것이다.

전시 형식은 초대전으로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두달에 한번꼴 최근에는 매달 작가를 초대, 어느새 서른여섯번에 이른다. “전시공간을 필요로 하는 작가들에게 갤러리를 열어주자는 것이 운영 목적입니다.”

나름대로 작가를 초대하는 기준을 정했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인가, 작업에 대한 열망이 있는가, 작품이 이곳 공간과 어울리는가 등이다.

선정위원회 형태로 화가, 전시기획자, 기자 등을 멤버로 하는 그룹도 만들었다.

“작가 인터뷰에서부터 작업실 탐방도 직접 했습니다. 어느 순간 혼자로는 감당이 안되더군요. 지금은 제 일을 돕는 큐레이터가 있습니다.”

작가들은 이 공간을 반겼다. “대학 작업실을 찾아가 초대했던 한 청년작가가 밀레에서 전시 후 본인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뿌듯했습니다.” 갤러리를 잘 열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밀레’라는 이름에 대해 묻자 정 대표는 애정하는 작가라고 대답한다.

“밀레는 당시 아카데믹하고 귀족적인 세태를 벗고 처음으로 농민과 노동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림이 더이상 특권층 전유물이 아닌, 노동자와 농민이 다가갈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습니다.”

화가 밀레처럼 갤러리 밀레가 십정동에서 문화가 피어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공연도 더했다. 카페 한켠에 공간을 꾸며놓고 목요일마다 재즈와 현악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초창기엔 연주자 초청에 공을 많이 들였죠. 홍대 재즈의 성지로 불리는 클럽 ‘에반스’에 가서 공연자들에게 명함도 돌렸습니다. 이제는 입소문이 나서 SNS 홍보로도 공연 섭외가 가능해졌습니다.”

주민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남고 싶냐고 묻자 대뜸 백범 김구선생 이야기를 꺼내는 정 대표다.

“백범이 진정으로 원하는 우리나라 모습을 문화가 뛰어난 나라라고 꼽으신 대목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문화가 있어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밀레가 사람들에게 설레임과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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