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작은 온실, 둑실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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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작은 온실, 둑실동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2.06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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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97) 계양구 둑실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둑실 마을에서 바라 본 검단신도시 아파트, 2023ⓒ유광식
둑실마을에서 바라 본 검단신도시 아파트, 2023ⓒ유광식

 

매일 걱정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서게 되는 요즘이다. 올 겨울은 에너지 이야기로 시름이 깊다.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세계 경제가 이에 반응함으로써 이곳저곳 동파 사고가 잦아지는 느낌이다. 부모님 집의 1월 가스비가 처음으로 10만 원대를 훌쩍 넘어갔다. 한편 정성이 덜해 보이는 음식조차 어딜 가나 1만 원대에서 깃발을 흔들고, 논바닥 진흙탕 싸움 같은 정치 밭에서는 실망스러운 소식만 전해지니 새해 다짐이 제대로 서지 않는 것 같다. 이 겨울이 누군가에겐 평온한 방학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화재로 혹은 전세 사기로 집 잃은 처지의 혹독한 시기로 남았을 것이다. 모두의 가슴에 내상을 입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 해의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쓰린 마음을 부여잡고 인근 둑실동으로 산책을 나섰다. 

 

둑실동 아라마루 전망대 휴게소(멀리 계양산이 보인다), 2023ⓒ유광식
둑실동 아라마루 전망대 휴게소(멀리 계양산이 보인다), 2023ⓒ유광식
아라마루 휴게소 맞은편 둑실 마을 입구, 2023ⓒ유광식
아라마루 휴게소 맞은편 둑실 마을 입구, 2023ⓒ유광식

 

정감 어린 이름의 둑실! 둑실동은 검단신도시 아래 선황댕이산을 품고 있는 골짜기 마을이다. 골짜기 따라 층층 논이 많다. 모양으로 보자면 서구 안쪽으로 깊숙이 막대기를 찔러 넣은 것 같은 계양구 구역이다. 한남정맥이 지나는 길목이자 얼마 전 개발 제한이 해제되고 산을 관통하는 도로 개설이 확정된 곳이기도 하다. 마침 입춘과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답답한 시가지를 벗어나 산, 바람, 논이 어우러진 장소를 찾았다. 경인운하 아라마루 휴게소 건너편 아래로 천천히 걷는다. 둑실마을이다. 

잠깐 백구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입구부터는 음식점이 많은데, 가게들의 상호가 연식을 말해 준다. 산골감나무, 산마루, 두메산골, 까치네, 미당, 포도나무, 산들바람이 길 따라 한 집씩 자리한다. 규모가 크며 족구 네트, 야외 탁자 등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식사를 넘어 과거 단합대회 장소로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코 안으로 들어오던 장작 태우는 불 내음이 좋았다. 

 

마을 안 토속음식점 중 하나, 2023ⓒ유광식
마을 안 토속음식점 중 하나, 2023ⓒ유광식
계양역과 둑실동을 오가는 2번 마을버스, 2023ⓒ김주혜
계양역과 둑실동을 오가는 2번 마을버스, 2023ⓒ김주혜

 

마을은 도로와 떨어져 있어 조용하다. 골짜기는 깊다. 더 가면 둑실 안길이 나오며 조금 더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지만 맞은편 검단신도시의 위용을 전부 가릴 순 없어 달라진 시대를 느끼게 된다. 안길 농로로 들어섰다가 순간 낮은 활공으로 논둑을 가르는 꿩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꿩이다. 주변이 온통 산이고 논이 있어 먹이 활동을 하다가 낯선 이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다. 논에는 녹지 않은 살얼음이 겨울 보온을 하고, 논 중앙으로 철새 오리들도 먹이 활동 중이다. 혹시 긴 여행을 위한 회의 중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개체수가 많고 덩치도 야생적이다. 그리고 사람을 봐도 개의치 않는다.

논에는 하우스 시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논농사보다는 하우스 안에서 사계절 작물을 수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최신형인 스마트 하우스도 한 동 있었다. 한번은 부모님 댁에서 쌀 한 포대를 가져와 생산지 주소를 찾아봤더니 둑실동이었다. 간혹 생산처가 멀 거라 예상했다가 가까운 거리임을 알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사실 집 가까운 지역 농산물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생명인 법이다.

 

둑실안길 마을의 논, 2023ⓒ유광식
둑실안길 마을의 논, 2023ⓒ유광식
낮에도 영하의 날씨 탓에 생긴 살얼음, 2023ⓒ유광식
낮에도 영하의 날씨 탓에 생긴 살얼음, 2023ⓒ유광식

 

어느 검정 하우스 안에서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오래된 기와집, 새로 지은 창고 건물 및 사회복지시설도 길가를 따라 들어서 있다. 길은 좁은데 차라도 지나갈라치면 가장자리로 바짝 붙어야 하는 민첩함을 요한다. 둑실동 경로당 앞으로는 두꺼운 얼음길이 음지에 둥지를 틀었다. 겨울철 낙상사고가 어르신의 응급실행 절반을 넘는다는데 제발 미끄러지는 일 없기를 바랐다.

좁은 길이어도 마을버스가 다닌다. 기사 아저씨가 혼자 운전 연습하는 것은 아닐진대 승객 없이 통통거리며 지나간다. 어느 빈 집의 은행나무 옆 양지바른 곳에서 고양이 가족이 흡족한 표정으로 볕을 쬐고 있었다. 일본 어느 지역에서는 겨울철 추위를 피해 온천에 입욕하는 원숭이가 있다는데, 순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네! 라는 생각이 든다. 참새들이 짹짹~ 공감을 표시한다.

 

둑실동 경로당(농사철이 되면 조금 북적일 것이다), 2023ⓒ김주혜
둑실동 경로당(농사철이 되면 조금 북적일 것이다), 2023ⓒ김주혜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농촌은 한 차선으로도 충분하다), 2023ⓒ유광식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농촌은 한 차선으로도 충분하다), 2023ⓒ유광식

 

둑실마을과는 떨어져 있지만 바로 옆 갈현동 아람산 자락에 정려각(旌閭閣)이 하나 서있다. 바로 세종대왕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후손인 이찰ㆍ이율 형제 정려이다. 원래 부평구 갈산동에 있다가 부평의 도시화에 따라 이사를 온 정려각이다. 시대에 따라 옮겨 다니느라 바쁘기 그지없다. 올여름이면 나도 또 한 번 이사한다.  

 

인근 갈현동 아람산 자락, 2023ⓒ유광식
인근 갈현동 아람산 자락, 2023ⓒ유광식
이찰ㆍ이율의 정려각(정려각 우측으로 계양산이 보인다), 2023ⓒ유광식
이찰ㆍ이율의 정려각(정려각 우측으로 계양산이 보인다), 2023ⓒ유광식

 

드디어 마스크 의무 착용이 몇몇 장소를 제외하곤 권고로 바뀌었다. 꽉 막힌 공간에 산소를 공급받듯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비록 각박하지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돋움하려는 바람을 담아 연을 날려볼까 싶다. 送厄迎福(송액영복). 나쁜 기운은 멀리 내어 날리고 새롭게 복을 불러올 시기다. 상점의 진열대에 순번 돌아온 땅콩과 호두, 밤 등의 부럼을 깨물며 새 마음을 충전해본다. 둑실마을의 논이 더는 뭉개지지 않기를, 황금 들녘까지는 아니더라도 88번의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 쌀이 계속 수확되었으면 좋겠다.

둑실마을은 산 안쪽에 너른 들판이 있어 정신 건강에 좋은 장소다. 어디 내어놓을 모습이라기 보단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네 심정을 꽉 붙들고 있는 그런 곳들이 몰래 남아 주면 좋겠다. 토지 및 건물 매입 연락처 전단이 붙은 전봇대가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누구를 불러 더위를 팔아 볼까?

 

작은 밭 비닐하우스엔 무얼 심어 두었을까?, 2023ⓒ유광식
작은 밭 비닐하우스엔 무얼 심어 두었을까?,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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