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향기 머금고 자라는, 경신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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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향기 머금고 자라는, 경신마을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4.17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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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02) 남동구 구월2지구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배꽃 향기 발원지, 2023ⓒ유광식
배꽃 향기 발원지, 2023ⓒ유광식

 

중국발 황사의 영향인지 먼 산이 황톳빛으로 달아오른다. 동해 쪽에서는 큰 산불로 산림이 불타며 이재민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또한 비상식적인 사건ㆍ사고는 뉴스 랭킹에서 좀처럼 내려오질 않는다. ‘국민 안전의 날’(16일)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요 며칠 웃을 수 없는 일만 많다. 안전을 염려한지 오래되었건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에 핀 진달래 따라 외출이 늘면서 전시와 공연장을 찾는 따듯한 일상이 되살아나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교실에서는 다시 웃음꽃이 핀다. 회복된 봄의 향연이 행여나 다칠까 싶기도 한 날들이다. 주변의 변화를 소중히 보듬으며, 바라보는 것들에 새삼 감사함을 품는 오늘이다. 구월2지구 배꽃길 따라 드넓은 평온을 바라본다.

 

하얀 배꽃이 핀 밭에서, 2023ⓒ유광식
하얀 배꽃이 핀 밭에서, 2023ⓒ유광식
과수원 사잇길, 2023ⓒ유광식
과수원 사잇길, 2023ⓒ유광식

 

구월2지구는 구월동, 수산동에 걸쳐 있는 곳으로, 언덕 따라 과수 농업이 한창이다.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배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현재 ‘해풍단 배’라는 브랜드로 품질 좋은 배가 출하되고 있다. 일명 배꽃 향기 가득한 마을, 경신마을이다. 옛날에 개성이나 서울, 수원으로 향하는 역참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떠나지 못해 잠시 머무는 장소로 낙점된 곳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한글 점자 창시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의 묘소가 수산동 공설묘지에 있다.   


제2경인고속도로 남동IC 북쪽 지역인 경신마을은 도심 속 한적한 시골처럼 보이지만, 사방으로 둘러쳐진 아파트 병풍이 조만간의 변화를 준비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도 같다. 현대에 개발제한구역이었으나 도시 구역의 팽창으로 개발 해제가 되어 애써 기른 배나무의 향방이 머지않아 위태롭게 되었다. 중간 중간 배를 판다는 현수막 사이로 뒤숭숭한 개발 관련 현수막이 눈에 띄는데, 정작 배나무만 이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밭에서 땅을 일구는 모습 속에는 한 해 한 해 편치 않은 마음도 함께 있을 것이다. 

 

오래된 간판과 포장길, 2023ⓒ유광식
오래된 간판과 포장길, 2023ⓒ유광식
반갑지 않은 현수막, 2023ⓒ유광식
반갑지 않은 현수막, 2023ⓒ유광식

 

배꽃이 흐드러진 오솔길을 걸으니 마음이 호젓해진다. 언제부터 궁둥이를 붙이고 있었는지 모를 커피, 웨딩, 식사 등을 위한 시설도 언덕 위에 자리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누그러진 지금, 도심 인근에서 즐길 수 있는 봄 동산이 따로 없다. 하얀 배꽃 도화지가 된 경신마을 곳곳에서 흙을 고르는 주민 한 분 한 분의 움직임이 곧 자연 색칠이다. 

 

꽃 피는 수산, 2023ⓒ김주혜
꽃 피는 수산, 2023ⓒ김주혜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도시(구월동 방향), 2023ⓒ유광식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도시(구월동 방향), 2023ⓒ유광식

 

때마침 4~5명이 배밭의 풍경에 매료되어 야외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또한 한 풍경이었다.) 한 분은 풍경에 과하게 취하셨는지 화판은 뒷전이고 몸짓 손짓해가며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 장면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강아지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숨은 배경이었다. 모퉁이에서 등장한 가볍게 차려입은 커플의 모습에 설레고, 두 사람이 손잡아도 두르지 못할 커다란 느티나무는 강한 봄바람 정도는 우스운 듯 미동조차 없다. 체험객인지 배밭을 둘러보는 움직임이 마치 기분 좋은 백구의 산책처럼 그려졌다. 어딜 보나 새하얀 배밭 도화지가 따뜻한 햇볕에 코팅 되는 기분이다. 

 

과수원 봄 풍경, 2023ⓒ유광식
과수원 봄 풍경, 2023ⓒ유광식
어떤 나무인지 몰라도 좋은, 2023ⓒ김주혜
어떤 나무인지 몰라도 좋은, 2023ⓒ김주혜
경신마을 힐링 둘레길을 알리는 안내판, 2023ⓒ유광식
경신마을 힐링 둘레길을 알리는 안내판, 2023ⓒ유광식

 

북쪽으로 좀 더 걸어 올라오면 남동문화공원이 자리한다. 이 옆에는 인천의 대표 도서관인 미추홀도서관(2009년 신축 이전)이 지난 100년의 시간을 품은 채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서 보유량만 60만 권에 이른다니 그 규모를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꼭대기인 3층 일반자료실부터 조금씩 살펴보았다. 지역 자료 및 신간 도서, 간행물 등 도서를 포함해 교육 및 시청각 자료가 세련되게 구비되어 있었다. 배꽃의 달큼한 향기가 도서관에 기록으로 입고가 된 듯 온화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1층 로비의 원화 전시와 어울림터의 기획 전시, 부모와 함께 책보기 등 도서관은 과즙 듬뿍 애정 넘치는 장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남동문화공원에서 쉬고 있는 부모와 아이들, 2023ⓒ유광식
남동문화공원에서 쉬고 있는 부모와 아이들, 2023ⓒ유광식
미추홀 도서관 입구(인천시립도서관 역사에 곡절이 많다), 2023ⓒ유광식
미추홀 도서관 입구(인천시립도서관 역사에 곡절이 많다), 2023ⓒ유광식

 

밭고랑에는 딸기 모종도 새파란 잎사귀를 뽐내며 빨간 인생 달리기를 준비 중이었다. 까치들은 무슨 신호를 주고받는지 바쁘게 울어 댔고 참새들이 쫑알대는 가운데 묘지 옆 늙은 염소 한 마리가 고즈넉한 경신마을 배밭의 풍경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안내 표지판에도 적혀 있지만 힐링 둘레길이 따로 없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도서관 옆 배밭 풍경도 머지않아 소실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무얼 탓할 것은 아니지만 평온한 풍경을 너무 위태롭게 대하게 되는 불안이 우리 주변 곳곳에 많아지고 있다. ‘안전’이 특별한 게 아닌 것 같다. 우리 가까이의 경험을 잃지 않는 것 말이다. 부디 2023년에 안전이라는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며 하얀 배꽃에 마음 하나를 묻혀 본다. 올가을엔 배뿐만 아니라 안전도 열릴 것으로 소망한다.

 

잠시 빠져 보는 창밖의 잔잔한 파도, 2023ⓒ유광식
잠시 빠져 보는 창밖의 잔잔한 파도,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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