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통합적으로 기획하는 독립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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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통합적으로 기획하는 독립서점
  • 공지선
  • 승인 2023.04.20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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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일깨우는, 청년문화예술]
(4) 부평 '라꼼라' 기획자 안지선·한성수
가만히 살펴보면, 칙칙한 도시를 의미있게 채색하고 일깨우려 소리없이 분투하는 ‘문화청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천지역에서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청년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나눠본다. 공지선 청년작가가 그 공간들을 찾아 나선다.

 

부평을 떠올리자면 시끌벅적하고 바삐 움직이는 상업단지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미로같이 얽힌 지하상가와 그 위로 솟아오른 빌딩들, 그리고 벽면에 빼곡히 자리잡은 간판들이 도시의 활력을 대변한다. 쉬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사시사철 소란과 활력이 공존하는 바쁜 곳, 이처럼 수많은 삶이 생동하는 부평에 작은 쉼표가 호흡을 가다듬듯 자리 잡았다.

메인 상업지구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 부평구청과 신트리공원 인근 길주남로 46 2층에 지난해 8월 개관한 라이프 콤마 라이프(LIFE, LIFE/이하 라꼼라)가 바로 그곳이다.

라꼼라는 2012년부터 공공기관에서 문화행정과 기획을 해온 A(에이/ 안지선 기획자)와 축제 분야에서 10년 넘게 기획자 생활을 해온 Q(큐/ 한성수 기획자) 부부가 기획한 공간이다. 오랜 시간 동안 기관에서 일을 하며 자신의 기획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두 부부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안지선, 한성수 기획자

 

2019년 서점이라는 형태로 공간을 기획한 적이 있으나 구체적 계획이 되지 못한 꿈이었다. 당시에는 막막함에 한템포 쉬며 출산과 육아에 집중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이제는 기획을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가 작년, Q가 딱 40이 됐을 때였다.

마흔이 됐을 때는 정말로 해보고 싶은걸 해봐야겠다 싶어 공간을 마련하게 됐고 기획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책방에서 일 보 전진하여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선정해 거기서 나온 주제를 가지고 전시와 프로그램, 혹은 모임 같은 것을 한 결로 보여주자는 거였다.

“기존의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책이 너무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희는 약간 문자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도 많이 되고요. 그리고 책이라는 게 첫 페이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책을 덮게 되면 더 이상 얻어지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책 한권을 전시와 맛 등 다양한 매체로 이해하고 대화와 경험을 통해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획을 해보고 싶어서 열게 되었습니다.”

공간의 위치를 정하는데 있어서는 접근성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초기에는 두 부부가 평소 좋아하는 마음으로 보던 동인천이나 서촌 등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역을 생각했으나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공간도 삶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라꼼라는 두 기획자의 집에서 2분 거리,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5분 거리, 삶의 트라이앵글 구조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자리잡게 되었다.

 

 

공간을 구하고 3개월 간은 두 기획자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노력을 되게 많이 했어요. 창문도 다 가려져 있었고 바닥도 그냥 일반 플라스틱 타일이었죠. 되게 허름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는데 일단 다 걷어내고 바닥, 벽, 천장 하나하나씩 상의해가면서 진행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건 외부에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우리가 하면서 약간 조각하듯이, 식물 키우듯이 공간을 만들어갔어요”

때문에 공간의 소재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조금은 독특하다. 천정은 삼배를 발라 마감했으며 공간에 맞게 직접 짠 가구들과 벽면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간 내부 모습

 

경험의 영역으로 책을 전달하고자 하는 두 기획자의 고민은 다양한 시도로 이어졌다.

“책이 전시가 되고 공간에 울리는 음악도 그에 맞게 큐레이션을 해요. 이번 달부터는 외부에 음악 하시는 분이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어요. 책에 대한 느낌을 받아서 10곡 정도 음악을 선정해 달라고요.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만 국한되는 게 아닌, 몰입을 위해 홀을 어둡게 하고 촛불을 활용하는 등의 책을 읽는 행위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전달하도록 노력했다.

 

서가

 

모든 프로젝트가 그러하겠지만, 1월에 진행했던 ‘나라면 말이야-나의 라면일지’와 2월에 진행한 ‘나의 꿈 부화기’는 두 기획자에게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의 라면일지는 저희 공간에서 라면을 끓여보는 전시였어요. 라면 3종과 버너, 냄비, 김치, 파, 달걀까지는 제공해드리고 현재 내 삶을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재료를 가지고 와서 라면을 끓여보는 거죠.”

라면은 삶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유한 이들은 차돌이나 채끝 같은 부수적인 식자재를 넣어서 끓여 먹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단순히 끓여 먹거나 부숴 먹기도 한다. 이 지점이 자신의 현재를 반영한다고 Q는 생각했다.

“공간 근처에 분식집이 있는데 거기 사장님이 20년 넘게 라면을 끓여오신 분이에요. 남편을 일찍 여의시고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하셨는데 음식 하나에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어 이분께는 정말 삶이 라면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의 꿈 부화기’는 김혜자 배우의 <생에 감사해>라는 책에서부터 비롯됐다. 60년 배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들려주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기획자 A에게 영감이 되었다.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의 꿈을 실현해주는 그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총 30개의 알 캡슐을 구비하고 거기에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둬요. 그리고 백자 항아리에다가 흙이랑 같이 묻어놓으면 자신의 꿈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거죠. 나중에는 몇 개를 뽑아서 저희가 자력으로 도와드리고자 했죠”

전시가 끝나고 총 12개의 알이 모였고 그 중 세 개의 꿈을 골랐다. 독립서점을 내고 싶다는 꿈, 쌍둥이 엄마인데 혼자만의 쉬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꿈, 라이프 라이프와 같이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쌍둥이 어머님껜 하루 동안 라꼼라의 공간을 온전히 내어드렸어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도 좋다고 말씀드렸죠. 공연하고 싶다는 분은 올해 관현악 팀을 구성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미팅을 통해 하반기에 2회에서 3회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독립서점이 꿈인 분께는 가능한 시기에 조력을 해드리기로 했고요.”

A는 꼭 어떤 큰 조건이나 예산이 있지 않더라도 서로 어떤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며 대화를 통해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알려드린 과정이 뜻깊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이 공간이 저희에겐 꿈이었잖아요. 그런데 누구의 도움 없이 시작했고요. 시작했을 때는 두려움이 커요. 돈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요.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 근데 하고 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저희의 첫 경험이었는데 그런 거를 사람들이랑 공유하고 싶었어요.”

초기에는 운영과 삶의 밸런스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직장에서 공간 관련 일을 했지만 실제로 내가 주인이 되어 있는 건 다른 의미였다. 상업 공간이지만 작업실의 성격이 많이 보이다 보니 사람들이 오지 않는 데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또한 공간의 주인만으로 있는 게 아닌 누군가의 부모로, 자식으로의 역할도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시간적 제약도 있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는 지났죠. 이제 여기는 둘의 결로 나이테처럼 쌓여가는 공간인 것 같아요. 좋은 거는 프로젝트나 책 추천을 통해 동네 친구들을 만나고 재밌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거죠. 요즘 들어서 라이프 라이프를 하길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돈을 주고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결이 맞는 사람 들이 공간에 모여드는 상태이다.

 

 

라꼼라 같은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엔 힘들어도 그 꿈을 실현하고 어느 정도 결과를 보는 시간을 길게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응원했던 공간 들이 짧게 발화했다 사라지는걸 보면서 너무 아쉬웠어요. 방법은 찾을 수 있거든요. 그게 꼭 돈이 아니어도 주변에 도와줄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너무 짧은 기간에 그 성패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도 1년은 만나봐야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공간도 좀 길게 호흡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공을 들였으면 좋겠어요. ”

라이프 콤마 라이프는 올해 7월까지 기획이 완료된 상태이다. 12월까지 체계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올 연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파티를 하는게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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