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존불의 미소, 텅빈 절터... 백제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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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의 미소, 텅빈 절터... 백제를 걷다
  • 양진채
  • 승인 2023.06.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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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차 서산 아라매길 터덜더덜 걷기(보원사지~개심사~ 해미읍성) 후기
- 양진채 / 소설가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

 

인천in 53차 터덜터덜걷기는 서산 아라메길 1구간이다. 38명이 함께 걸었다. 보원사지에서 시작해 용현자유휴양림을 돌아 개심사, 해미읍성까지 5시간 가량 걷는 일정이다. 인천시청역에서 7시에 출발 서산으로 향했다. 5월 걷기 때 소백산자락에서 만났던 황보윤식 함석헌평화연구소 대표(전 우리밀살리기 인천본부장)님이 함께 하셨다. 그동안의 길이 경관이 괜찮은 길을 걸었다면 5,6월 걷기는 문화유적지를 포함하고 있어 황보 대표님이 해설을 맡아주셨다. 두툼한 자료집까지 준비해주시는 정성과 열정이 대단하시다.

두 시간만에 서산에 도착했다. 먼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국보 제84호, 높이 본존상 280cm의 서산마애삼존불을 영접했다. 멀리서 온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아침이슬과도 같은 온화한 미소의 석가모니불을 보니 부처님의 가피라도 받은 듯 마음이 맑아졌다. 바위에 새기는 기법이 아니라 돌을 깨가며 양각한 석공의 불심과 노력과 정성이 닿은 아름다운 삼존불이 이렇게 먼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와 닿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러운 경이감이 들었다. 황보 대표님의 해박한 설명은 석공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예술품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다시 버스를 타고 보원사지(보현사지)로 이동한다. 거기서부터 걷기의 시작이다.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당간지주, 오층석탑 등이 가야산 산자락 아래 넓게 펼쳐진 터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출토된 맷돌, 넓은 터만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였을 절이었을 텐데 세월은 돌고 돌아 초하이고, 보현사는 흔적도 없이 풀만 푸르다.

보원사지
용현자연휴양림
용현자연휴양림

 

걷기를 시작한다. 보원사지부터 용현자연휴양림으로 돌아 개심사까지가 1차 걷기이다. 계곡과 아름답게 보존된 고요한 숲길은 여름으로 질주하듯 저마다 푸르름을 자랑했고, 나무와 나무가 가지를 맞대며 그늘을 이뤄 걷기에 최적이었다. 그래도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오르고 있었고, 약간의 경사까지 있어 개심사로 내려가기 직전 쉼터에서의 점심은 지친 걸음에 휴식과 꿀맛을 선사했다. 그러나 다시 기운을 내 개심사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 폭이 넓어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개심사 앞 사각 못
개심사 앞 사각 못
개심사
개심사

 

개심사는 중생들의 삶을 깨우쳐준다는 의미로 열開 으뜸元의 개원사였으나 이후 개심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웅전, 안양루, 심검당, 해우소, 종에 대한 얘기를 듣는 중에도 나무의 결과 모양을 그대로 살린 기둥, 150년이 넘은 배롱나무, 겹벚꽃나무 등이 눈길을 잡는다. 입구 양 옆 표지석의 洗心洞과 開心寺 入口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살구와 자두를 파는 노점이 일행의 눈길을 잡았다. 한 봉지 사서 화장실 근처에서 씻어 나눠먹는다. 달달하다. 개심사로 내려오는 길이 쉽지 않았고, 더위에 지쳐 다들 해미읍성까지 차로 이동하자는 의견이다. 버스에 오른다.

해미읍성은 외적의 침입 시에 마을주민이 모두 읍성 안으로 대피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장성, 옹성, 치성의 뜻도 듣는다. 울타리의 돌에 새긴 글자도 달리 보인다. 해미읍성에서 자유 시간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거나 차를 한 잔 마신다. 나는 큰 벚나무 아래 기둥 둘레에 만든 평상에 누웠다. 바람이 불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내게 해미읍성은 이 바람으로 기억될 듯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동안 황보 대표님의 아마 다 털지 못했을 한탄을 생각한다. 문화와 관광을 동격으로 바라보는 행정은 늘 보존이 아니라 편리와 눈요기에 맞춰진다. 길을 정비하고, 일주문을 세우고, 주차장을 만든다. 본질이 아니라 외향과 형식에 치중한다. 이러다 주객이 전도될까 두렵다. 이렇게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역사의 숨결도 길을, 삶을 환기시킨다.

 

해미읍성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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