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의 전설, 엔니오 모리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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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의 전설, 엔니오 모리꼬네
  • 윤세민
  • 승인 2023.09.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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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산책]
(9) 엔니오 모리꼬네 3
- 윤세민 /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시인, 평론가, 예술감독

우리 시대 영화음악의 천재요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는 명실공히 영화음악의 전설이다. 이전 영화산책(7~8회)에 이어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과 음악과 영화를 마지막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시대 영화음악의 천재요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 시대 영화음악의 천재요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영화의 테마와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그만의 독창적 영화음악을 통해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 서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대성공을 거둔다. 그 뒤 이 둘은 필생의 역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를 창작한다.

이 영화는 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유대계 미국 이민자 아이들의 성장기와 아메리칸 드림 특유의 순진무구함과 좌충우돌, 사나이들의 우정, 본격 갱스터로 나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겪는 폭력과 섹스, 부와 권력이라는 일장춘몽의 덧없는 욕망 등을 그렸다. 거기에 주인공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의 어린 시절부터 한 여인을 향한 평생에 걸친 이룰 수 없는 사랑, 모든 것을 잃은 노년에 되돌아보는 어린 시절 추억과 되돌릴 수 없는 회한까지 한 남자의 진심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이런 영화의 테마와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것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OST 넘버들이다. 그 중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는 ‘데보라의 테마’. 이 곡은 어린 누들스와 데보라(제니퍼 코넬리)의 첫 만남, 밀회, 키스신 등에 두루 쓰이는데, 특히 데보라가 발레 연습 뒤 옷을 갈아입는 가운데 누들스가 화장실 구멍으로 몰래 훔쳐보는 것을 알면서도 슬쩍 보여주는 뒷모습 누드 장면은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아찔한 추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아울러 누들스가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의 연방준비위원회 강도 계획을 경찰에 밀고한 뒤,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찾은 아편굴에서 아편을 한 모금 빨고는 슬픈 눈으로 해맑은 미소를 짓는 취생몽사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쓰인 이 테마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물론, 이 장면 촬영도 두 거장의 스타일대로 이 ‘데보라의 테마’를 틀어놓고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했음은 물론이다.

 

불후의 명곡 <미션>과 <시네마 천국>

엔니오 모리꼬네는 1986년 불후의 명곡 <미션>(롤랑 조페 감독)을 창작한다. 18세기 예수회 선교사와 남미 원주민들의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숭고한 순교 정신과 인류애를 그리고 있다.

<미션>의 메인 테마곡 ‘지상에서도 천국에서와 같이(On Earth as it is in Heaven)’는 엔니오의 한국 팬들과 전 세계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음악적으로 보면 두 가지 다른 선율의 테마가 원시적인 봉고 리듬과 유럽의 클래식 화성, 합창과 오케스트라 협연을 통해 한데 어우러져 하나로 나아간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순교를 통해 태어난 새로운 영성과 구원에 이르는 상징적인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합창 소리의 레이어들이 마치 천국에서 아이들이 기쁨으로 뛰어 노는 것과 같은 환상적인 체험을 하게 해준다.

<미션>의 다른 테마곡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 역시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이미 영화의 명성마저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보에로 들려주는 천상의 멜로디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엔니오 자신도 “작곡 작업에 임하기 전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당시 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며 선교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신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엔니오의 영혼을 뒤흔드는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거룩하게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영화 속 추기경의 마지막 독백은 아직도 큰 여운을 남긴다. “신부들은 죽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자는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엔니오 모리꼬네는 미국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 영화 <언터처블>(1987,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주제음악을 작곡한다. 알 카포네 조직을 상대로 한 경찰 내 정예 조직 ‘The Untouchables’의 활약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부와 권력이 정의를 위협하는 세상에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듯한 웅장하고도 박력있는 엔딩 테마곡은 관객의 가슴을 울리고 남는다. 엔니오는 이 영화로 그래미 최우수 영화음악상, 골든글러브 음악상,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영화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엔니오는 1988년 <시네마 천국>(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음악을 맡는다. 이탈리아 시실리의 소극장 ‘시네마 천국’을 둘러싼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성장, 첫사랑, 과거의 회상 등 여러 가지 테마를 추억과 감동의 선율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토토와 알프레도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첫사랑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 재회와 재이별 장면 등에 깔리는 엔니오의 아련하고 우아한 주제 음악들은 작품의 메시지를 영상 이상으로 전하고 있다. 이 주제곡 중 ‘사랑의 테마’는 엔니오가 그의 아들이자 영화음악가요 지휘자인 안드레아 모리꼬네와 함께 작곡한 것으로 돼 있으나, 아무래도 아들 안드레아를 밀어주려고 한 아버지의 부정(父情)으로 여겨지는 것이 정설이다.

 

주옥같은 명곡들, 우리 가슴에 영원히

이후로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햄릿(1990), 벅시(1991), 시티 오브 조이(1992), 사선에서(1993), 러브 어페어(1994), 롤리타(1997),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말레나(2000), 헤이트풀 8(2015) 등의 걸작 영화음악들을 선사해 주었다.

이렇게 세계적인 명곡을 쏟아냈음에도 미국 아카데미는 이 이탈리아 작곡가에 대한 질시 내지는 열등감이었는지, 그 수상을 오랫동안 기피해 왔었다. 그 동안 다섯 번 아카데미 음악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수상은 번번이 불발에 그쳤고, 대신 2007년에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이후 마침내 <헤이트풀 8>(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으로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 그동안의 한을 푸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2020년 자택에서 낙상으로 허벅지(대퇴부)에 골절상을 입은 뒤 병원 치료를 받다가 불과 한 주 만인 7월 6일 이탈리아 로마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러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무려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작곡한 엔니오 모리꼬네는 역대 가장 왕성하고 위대한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여겨진다. 세상의 영화음악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시대 영화음악의 천재요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는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주옥같은 명곡들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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