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돌짐승, 해태가 사는 집
상태바
이야기가 있는 돌짐승, 해태가 사는 집
  • 김시언
  • 승인 2024.01.03 0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화이야기]
(34) '해태가 사는 집'을 찾아서
강화군 하점면 신봉리 ‘해태가 사는 집’ (사진: ‘해태가 사는 집’ 제공)

 

세상이 좀 더 정의롭길 바라면서

며칠 전 눈이 엄청 내리는 날,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하지만 눈이 어찌나 내리던지 출발하지 못했다. 결국 눈이 다 녹고 나서야 그 집을 가봤다. ‘해태가 사는 집’. ‘해태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아직 정식 박물관으로 등록하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박물관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개가 짖지만 견사 안에 있으니 안심하고 천천히 둘러보면 된다. 안내하는 사람이 없어도 돌짐승을 감상할 준비가 됐다면 조용히 돌아봐도 좋을 듯하다.

해태는 우리에게 낯익은 상상 속의 짐승이다.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거나, 지리적으로 경계를 나누는 곳에 점잖게 앉아 있기도 하다. 해치라고도 불리는 해태는 중국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뿔 한 개를 가지고 있다고 나온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 그만큼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의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상이 좀 더 정의롭길 바라면서 ‘해태가 사는 집’(강화군 하점면 신봉리)을 찾았다.

 

 

강화에 반해 터를 잡다

‘해태가 사는 집’ 주인장은 황진 작가다. 조각가이면서 사진작가인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했다. 서울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엄연히 강화사람이다. 그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강화에서 ‘해태가 사는 집’을 열게 된 게 자랑스럽다. 박물관을 좋아하고 강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 좋다.

황 작가는 어쩌다 연고도 없는 강화에 박물관을 열었을까.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카페에 방문한 날, 그는 함민복 시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을 읽고 강화에 반했다. 시인의 감성을 좇아 그는 서쪽바다와 갯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시를 통해 강화를 다시 보게 된 것. 시를 좋아하고 시집을 일삼아 읽는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강화땅을 밝으면 마음이 편했다. 강화의 풍광을 온몸과 마음으로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는 점점 강화에 스며들었다.

그러면서 강화에 터전을 마련해 20년 동안 수집한 해태를 비롯한 돌짐승을 살게 하고 싶었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지금 해태박물관이 세워진 터에 초가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땅을 사고 집을 사는 일이 만만찮은 일이건만 신기하게도 운도 따랐다. 마치 오래전에 계획한 것처럼 차근차근 일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일이 되려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죠. 지난 몇 년을 되돌려 보니 그게 다 필연이었어요. 박물관을 열게끔 신이 계획을 세우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해태박물관이 강화에 생긴 건 필연이다.

 

 

‘이야기가 있는, 시가 있는’ 돌조각에 초점 맞춰

황 작가는 전공이 조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돌조각에 관심이 있었다. 돌을 보면 욕심이 생겼고,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다른 일을 미루고 돌짐승을 사들였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그만큼 다른 일을 희생하게 마련이었지만 다행히 경제 사정이 나쁘지 않아 버틸 만했다.

때마침 우리나라가 중국과 교류하면서 수집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돌덩이로 조각한 해태를 모으면서 ‘이야기가 있는, 시적인’ 조형물에 초점을 맞췄다. 그냥 돌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고, 시가 있어야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게 20년 동안 한결같이 해태, 받침대, 물확(돌을 우묵하게 파서 절구 모양으로 만든 것) 등을 모았다.

“기존의 틀에 박히고 비슷한 것보다는 되도록 이 세상에 하나만 있는 것, 작가의 기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조형물을 좋아합니다. 자연스러운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해태도 표정이 다 다른데, 특히 인상 쓰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웃는 해태를 좋아합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작품에는 희로애락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마음이 밝아지는 조각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조각가라는 직업도 돌조각을 고르는 데 한몫했다. “조각 작품은 작가의 생각과 사고방식, 역량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그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진짜 조각가죠. 심플하면서도 재치와 해학이 있는 해태를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작가의 기질이 들어간 작품이 좋아요. 너무 큰 것보다는 사람이 다룰 수 있는 크기가 좋죠.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것, 해태가 하나둘 모이면서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되고, 사람의 마음을 도닥이는 시가 되면 좋잖아요. 돌이 모여 웅성거리는 이야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해태가 나무와 풀과 함께할 때

황 작가는 해태를 전시할 때 중점 둔 부분이 있다. 돌조각은 나무와 풀과 어우러질 때 제대로 멋을 낸다는 것. 어떤 나무와 풀을 어디에 심어야 돌조각이 자연스러울지, 돌조각이 나무와 풀과 어우러져야 더 살아날지를 늘 고민했다.

“해태상은 자연과 교감할 때 더 아름답습니다. 비와 눈을 맞고 나무와 풀이 함께할 때, 바람이 불 때, 맑은 날과 흐린 날 그때그때 자연의 우연성이 탄생하고 자연성과 자유로움이 더해집니다. 해태가 사는 집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질 때 품격이 살아나죠.”

해태는 어떤 동물일까. “해태를 모으다 보니 이야기의 힌트가 보이더군요. 전기가 나오기 전, 그러니까 200년 전쯤 집에서 기르는 개는 호랑이 소리만 들어도 기절했죠. 그때 개 주인은 개 목에 방울을 달아 주어 호랑이로부터 보호했어요. 그러다 모든 동물의 목덜미에 방울을 달게 되고 짐승들은 살아남게 됐죠. 방목도 가능했죠. 방울이 울리면 부르든가 데려오면 됐으니까요. 사람들은 방울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고요. 돌은 시간 속에서 다른 것보다 오래가고, 무심하게 자연이랑 교감합니다. 인간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돌짐승, 해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 많아요.”

‘해태가 사는 집’은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에서 아주 가깝다. 고인돌 탐방에 나섰다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과 함께 ‘해태가 사는 집’도 들러보면 또 다른 재미를 볼 수 있다. 해태를 비롯한 돌조각들이 어떤 수다를 떨면서 웅성거리는지 기웃거리고, 또 해태들이 수런거리는 수다에도 한 자리 슬쩍 끼어들면 어떨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