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포도만으로,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연미정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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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포도만으로,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연미정와이너리
  • 김시언
  • 승인 2024.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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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이야기]
(36) 강화도 연미정와이너리
연미정와이너리 건물 모습.
연미정와이너리 건물 모습.

 

강화도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연미정와이너리

몇 년 새 대형마트에 가면 와인 코너가 무척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을 일상생활에서 가깝게 접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와인에서 제법 비싼 와인까지, 입맛과 음식 종류에 따라서 와인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흔히 ‘와이너리’ 하면 외국 와이너리를 생각하게 되는데, 국내에도 이름난 와이너리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강화에도 멋진 와이너리가 있다. ‘연미정와이너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연미정와이너리’는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부근에 있다. 강화읍 연미정길 36번길 48-17. 연미정 앞 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왼쪽에 하얀색 건물이 보였고 ‘연미정 WINERY’라고 쓰여진 건물이 보였다. 검문소를 통과하는 와이너리라니. 짧게 달린 해안도로에는 철조망이 보였고, 그 너머에 북한 땅이 가까이 있었다. ‘연미정와이너리’ 간판에는 제비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연미정와이너리는 제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기 때문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물길 하나는 서해로, 또 다른 물길은 인천 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이 연미정이라 붙여졌다.

 

연미정와이너리 시음장
연미정와이너리 시음장

 

고향에 돌아와 농사짓기 시작해

황우석 대표는 방문객이 와이너리에 도착하자마자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옥상에 오른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세상에나 김포 문수산을 배경으로 연미정이 한눈에 보였고, 그 옆으로 유도가 보였다. 잠섬, 뱀섬이라고도 불리는 유도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섬이다. 1996년 홍수 때 북한 소가 떠내려온 곳. 그때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에 있는 소를 손쓸 수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극적으로 합의해 우리 군이 구출했던 일화가 있다. 그 유도 옆으로 북한땅이 기다랗게 보였다. 비록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땅이긴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분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실감할 수 있었다.

황우석 대표는 조선시대 황형 장군의 후손이다. 황형 장군은 조선시대 삼포왜란 대 전라좌도방어사로 큰 공을 세워서 조선 조정으로부터 연미정 정자를 하사받았고, 현재 연미정은 황씨 문중의 소유로 돼 있다. 그래서 연미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황형 장군 묘가 있다. 황 대표는 하점면에서 태어나 읍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깨가 탈골되는 바람에 요양차 강화에 내려오게 됐고, 그때 아버지가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황 대표는 30년 중반에 고향으로 내려왔으니 이제 20년 넘게 강화에 사는 중이다. 처음에는 읍내에서 인삼도매업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삼농사는 젬병이었고, 땅을 빌려서 인삼 농사를 지었으나 수익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왕 시골에 왔으니 친환경으로 사람들 몸에 좋은 농사를 지을 요량으로 농사 공부를 하러 다녔다. 발효퇴비를 만들고 발효식초를 만들어 병든 식물에 뿌려주고. 그때부터 발효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다.

 

청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연미정와이너리 제공)
청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연미정와이너리 제공)

 

지역에서 나온 과일로 과실주부터 만들어

인삼 일에 뛰어든 지 15년이 됐지만, 인삼은 사양산업이었다.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그만큼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운명적으로 ‘지역특산주’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 이미 오래전부터 발효에 대해 알고 있었고 식초를 만들었으니까 지역에서 만든 과일로 과실주를 만들어 볼까 싶었다. 그 순간 바로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 놓은 게 있었다. 영상을 전공한 터라 영상 관련해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를 지었고, 거기에 영화도 만들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영화 관련 일을 해보자 싶었다. 20대 초에 극단 생활을 했으니 창작활동도 열심히 해보자.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이 있다 보니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농한기인 겨울에는 한두 달 오지여행을 했다. 와이너리를 준비하면서 그때의 경험과 견문은 상당히 도움이 됐다.

‘와이너리(winery)’는 ‘포도주를 만드는 장소’. wine(포도주)+ery(장소)의 합성어로,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한 곳이다. 포도밭, 포도즙 짜는 곳, 발효실, 숙성실, 병입실을 갖추고 있으면서 와인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까지 통틀어 말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와이너리는 관광지로도 인기가 많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와이너리 투어를 하면서 와인 제조 과정을 견학하고 시음하기도 한다. 연미정와이너리에서도 와이너리 일련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연미정와이너리 황우석 대표.
연미정와이너리 황우석 대표.

 

우리나라 최초로 인삼열매와인을 만들기도

와이너리는 그냥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장인정신이 없으면 포도주 한 방울도 만들 수 없다. 좋은 포도를 고르는 데서부터 분쇄, 발효, 숙성, 병입 단계에 이르기까지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서 열정과 창의성은 중요하다. 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집어들고 와 마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와인 제조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와인 한 방울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연미정와이너리 황우석 대표는 와인에 미친 것 같았다. 돈이 되지 않지만 와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묵묵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삼열매로 와인을 만들기도 했다. 인삼 열매에는 껍질에 과육이 아주 조금 있는데 그걸 바구니에 대고 문지르면 한두 방울 나온다. 그걸 모아서 발효해서 식초를 만들고 와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식초보다 와인에 관심을 보였다. 연미정와이너리에서 나오는 와인은 모두 강화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다. 양도면에서 나오는 포도와 고려산 자락에서 유기농으로 키우는 열매로 만든다. 황 대표는 “술은 대규모 자본을 가진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동안 만들어 본 와인은 열 가지 정도 되지만 현재 상품으로 판매되는 것은 네 가지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서너 가지를 추가할 계획이다.

 

연미정와이너리5_연미정와이너리에서는 철조망 너머 북한땅이 보인다.
연미정와이너리에서는 철조망 너머 북한땅이 보인다.

 

연미정와이너리의 역사를 만드는 중

연미정와이너리에서 현재 시판되는 와인은 연미정여름, 연미정가을, 연미정노을, 연미정꼬리별. 연미정여름은 청포도로 만들며, 여름에 수확해 제비의 기상을 라벨에 담았다. 연미정가을은 가을이 되면 제비가 전깃줄에 앉았다 돌아가는데, 추석 즈음에 강화도 양도면에서 수확하는 포도로 만든다. 연미정노을은 철조망에 앉아서 북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았다. 제비 시리즈는 인기가 좋고, 앞으로 연미정겨울도 나올 것이다. 그다음에는 별시리즈가 있다. 진생베리는 양이 많지 않아 시판하지 않지만 “저와 좋은 인연이 되는 분께 기분 좋은 선물로 드린다”고. 이 점만 봐도 황 대표가 돈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재 시판 중인 연미정와인
현재 시판 중인 연미정와인

 

“와인은 돈 벌려고 접근하면 안 되더라. 돈 벌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정말 좋아서 한다. 와인은 이것저것 들어간 재료비 빼면 얼마 남지 않는다. 들인 공력과 시간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돈이 안 된다. 하지만 와인을 만드는 일은 정말 재미있고 신기하다. 가까운 장래에 수익이 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길게 보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우리 연미정와이너리만의 노하우도 조금씩 쌓이게 되면 우리만의 와인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와이너리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공무원을 비롯해 회사에서 단체로 교육 차원에서 찾아왔다. “알고 보면 제가 일타강사다.(웃음) 30분만 들으면 와인의 핵심적인 것을 다 알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와인을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시음도 하고, 시음할 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내놓는다. 모두 실비 차원에서 운영하는데, 이는 오로지 연미정와이너리와 와인을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연미정가을이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해가 갈수록 연미정와이너리는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황 대표는 해마다 만든 와인을 연차별로 먹으면 와인이 나이를 먹으면서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변화를 보는 중. 연미정와이너리는 지금 이 순간도 연미정와이너리만의 역사를 만드는 중이다.

 

와이너리에 있는 포도밭.
와이너리에 있는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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