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 과학기술의 방향을 통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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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 과학기술의 방향을 통찰하는 것
  • 이현식
  • 승인 2024.02.25 15: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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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제고 사람들]
(26) 이태수 서양고전학자(서울대 명예교수) - 이현식 / 문학평론가
인천in이 88년 역사의 인천중·제물포고 총동창회와 협력하여 <인중·제고 사람들>을 연재합니다. 인천중학교 1회 졸업생부터 시작하여 제물포고 67회 졸업생에 이르기까지 기수와 직업군을 망라하여 균형있게 연재합니다. 위인 열전 식이 아닌, 사회 각 분야에서 모범이 되거나 의미있는 삶을 펼쳐온 이들을 인터뷰나 문헌조사 등의 방식으로 취재하여 광역시 인천의 내면에서 살아 숨쉬어온 인천인들의 참모습을 조명합니다. 

 

방송대 소식지와 인터뷰 하는 이태수 교수(출처 : KNOU 위클리)
방송대 소식지와 인터뷰 하는 이태수 교수(출처 : KNOU 위클리)

 

우리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문명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네트워크의 세상에 행복하게 안주하며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숙고하려 들지 않는다. 자극적인 짧은 동영상에 길들여지면서 문자를 읽고 쓰는 행위는 1차원적인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족들이 모여도 서로 스마트폰을 쳐다보기에 바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스마트폰의 대중적 보급을 경계로 그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문학 강의는 ‘열풍’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의 공허를 채울 어떤 지혜와 교양을 희구하고 있다. 깊이 있는 사색을 원하고 세상의 이치를 알고 싶어하며 이를 열망한다. 여기에 정치나 경제의 양극화,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기후 위기나 인공지능 같은 것들도 시시각각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일을 더욱 멀리하려 든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시대가 이럴수록 인간 자체에 대한 고민이 더욱 근원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과연 인류가 이룩한 문명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고전(古典)은 가장 기본적인 길잡이가 된다. 서양이건 동양이건 인류가 문명을 이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스스로 사색하고 설명한 지적 성과가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 평생 매달려 탐구한 학자가 있다.

서울대 철학과 이태수 명예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 고전학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루하고 어려운 서양 고전을 공부해 그것의 가치를 복잡한 현실에 적용해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탐구해온 연구자이다. 서양의 고전, 즉 희랍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원전으로 공부하며 고전에 담긴 철학과 인간 사고의 원류를 캐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태수 교수의 존재가 더욱 값진 것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문헌에만 얽매이는 고루한 문헌학자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가 서양 고전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유발 하라리의 화제작인 <사피엔스>(김영사)의 감수를 맡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과 관련한 이태수 교수가 언론과 인터뷰 한 기사를 보면 이런 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상상 그 이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할 것인가. 예컨대 뇌과학이나 생명공학이 발전해서 인간의 뇌 작용이 작동하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거나 더 나아가 인간에게 새로운 DNA를 주입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면 좋은 일 아닐까? SF에나 등장할 법한 일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이태수 교수는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좋은 것, 우리가 실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의 일이다. 그것은 뇌과학이나 유전공학이 하는 일이 아니다. 이런 분야의 지식을 기술로 연결시키고 기술을 활용할 방향을 결정하려면 인문학적 성찰을 건너뛸 수 없다. 인문학적 성찰 없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장님에게 좋은 지팡이를 장만해주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다.

태어날 아기가 높은 IQ와 큰 키에다 유전적 질병 요인은 일체 없이 태어나도록 하려는 꿈은 차라리 소박한 것이다. 그 정도 일은 뇌과학자나 유전공학자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스스로를 진화시켜 가야 좋은지는 뇌과학자나 유전공학자가 모든 인간을 대신해 결정할 수 없다. 다 같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도 부처님의 깨달음과 그의 사색 내용이 실제로 무엇인지, 그의 품성이 정말 어떤 것인지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한 어떻게 뇌나 유전자를 조작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성인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인문 소양을 갖추지 않은 기술자들에게 뇌 조작을 어떻게 맡길 수 있겠는가?(조선비즈, 석학인터뷰, 2014.10.25.)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그 기초적인 기반에는 철학과 인문학적 물음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요즘 유행하는 AI, 즉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인간 지능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결여한다면, 그 결과는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게 되고 그것이 초래할 미래는 낙관할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AI의 개발이 필요한데 여기에서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결코 과학기술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문제야말로 인문학이 감당해야 할 몫인데 그런 점에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문학의 접합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이지 결코 배척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창시절, 철학과 만나다

이태수 교수는 인천에서 태어나 신흥초등학교,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등학교(7회)를 거쳐 1963년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하나와 단촐한 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그와 함께 중, 고교를 다닌 동기들의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가 수예점인가를 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했는데 그리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조용한 성격에 모범생이었던 학생 이태수는 그러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시험이 끝나고 나면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던 용기있던(?)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집에 드나들던 중고교 동창 김승묵 변호사(1944~2020)가 이태수 교수의 여동생과 결혼을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다. 이 둘은 평생의 지기이자 처남, 매부 사이로 우정을 더욱 돈독히 했다.

스스로의 회고에 따르면 고교 시절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개론>을 읽은 것이 철학을 전공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러셀(1872~1970)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사회비평가로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철학개론은 지금도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문제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고 있는, 철학 분야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이다. 수학 점수가 좋지 않았던 이태수는 고3 때 대학 입학을 목표로 정한 뒤에는 무섭게 수학 공부에 매달려 이과생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수학 과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스승 박홍규 교수와 서양 고전학에의 입문

그런데 그가 평생을 서양 고전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한 것은 대학에 진학하고 박홍규 교수를 만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박홍규 교수(1919~1994)는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서 수학하여 희랍철학과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을 공부한 분이었다. 박홍규 교수의 지론이 바로 원전에 대한 학습이었다고 한다. 박홍규 교수의 면모를 술회한 기종석 건국대 교수의 회고담을 소개한다.

대학원 신입생에게는 강독의 책무를 주기 때문에 일주일이 어찌 지나는지 모르게 지났습니다. 강독자는 강의를 여는 안내자의 역할을 맡는 것이지만 개인으로서는 원전에 대한 입문 방법을 습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석사와 박사 과정 모두 원전과의 씨름이었습니다. 선생님(박홍규)은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려면 먼저 플라톤 원전 시험을 통과하도록 하셨습니다. 자신이 대학원에서 강독한 플라톤 대화록의 정리가 곧 석사 학위였고 박사 학위였습니다. 대화편 한 편 읽고 요약한 것이 어떻게 학위논문이 될 수 있느냐는 동료 교수들의 질책에도 선생님은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철학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에요.” 고전 문헌 자체의 엄밀한 천착은 선생님의 학문적 방법이자 교육의 목표였습니다.(기종석, “엄밀한 고전문헌 탐구 강조로 원전 번역 토대 쌓으셨죠”, 한겨레, 2024.01.24.)

 

이태수 교수의 스승 박홍규 서울대 교수(출처 : 한겨레)
이태수 교수의 스승 박홍규 서울대 교수(출처 : 한겨레)

 

이분은 독특하게 평생 공부만 하면서도 남긴 글이 논문 7편밖에 없어 제자들에 의해 생전의 강의록, 강연, 논문 등이 편찬되어 학문적 성과가 사후에 전집 5권(민음사)으로 출간되었다. 서양 고전을 원전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동양의 고전이라 부르는 논어나 맹자를 한문으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듯 라틴어나 희랍어로 서양 고전의 원전을 공부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자 문명권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논어나 맹자를 읽기 위해 한문 공부를 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지만 문화적 기반이 전혀 다른 서양의 옛 고전을, 그것도 원전으로 공부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학 시절 그리스 로마 비극을 전공한 교수님께 라틴어 공부 때문에 대학원에서 너무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는 복잡한 격변화 때문에 단어 하나를 암기하려 해도 외울 것이 많아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스승인 박홍규 교수가 학생 시절부터 원전으로 공부할 것을 강조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손수 원전 공부 모임을 따로 열었고 여기에 이태수 교수도 함께 하면서 지적 세례를 받은 것이 그가 희랍 고전을 전공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이태수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고전학을 처음 가르쳐 주신 분이 박홍규 교수님이셨는데, 학교 강의 외에 집에서 라틴어로 서양 고전을 강독했다. 텍스트는 여러 사람이 토론하면서 함께 읽어야 한다면서. 대학 3학년 땐가 어느 날 내가 라틴어 공부하는 걸 아시고는 와서 같이 하라고 해서 참석했다. 많아야 두세 명이었는데 그때 김우창 선생(고대 영문과 명예교수), 박전규 선생(전북대 철학과 명예교수)이 와 계셨다. 하루걸러 모여 책을 읽었다. 박홍규 선생이 희랍어와 라틴어를 공부하게 된 것은 일제 때 일본 유학 가서 프랑스 신부들한테 배웠다고 했다. 박 선생 자신이 서양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전어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조선비즈, 석학인터뷰, 2014.10.25.)

이태수는 이렇게 박홍규 교수 밑에서 공부하다가 서양 고전학을 본고장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할 목적으로 197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근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서양 고전철학을 공부한 그는 1982년 모교인 서울대 철학과의 교수로 임용된다. 서울대 재직 중에는 교무부처장, 교육부 대학정책실장, 서양고전학회 회장, 서울대 인문대 학장과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대학정책실장 시절 인터뷰 기사
대학정책실장 시절 인터뷰 기사

 

인문학을 실현할 새로운 장

그런데 이태수 교수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그가 희랍 고전철학을 전공한 교수라는 통념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컴퓨터나 새로운 기술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제자인 강상진 교수의 회고를 들어보자.

 

행정에 처음 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절, 기숙사의 전 직원이 일주일을 매달려야 해결되던 방 배정 문제를 직접 작성하신 프로그램으로 두 시간 만에 끝내셨다는 전설에서부터 대학본부의 많은 시스템들을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신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본부 직원들은 물론 철학과 대학원생들도 처음 나온 PC의 한글 프로그램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때, 각종 프로그램 언어들을 공부, 직접 프로그램을 쓰시고 당면 과제들을 해결해 가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행정이 한 단계 도약할 때 컴퓨터와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해서 새로운 형식의 합리성과 방향성을 제안하면서도 대학 행정이 인문적 중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논리학과 고전학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선생님의 능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학술지 인간환경미래 창간호
학술지 인간환경미래 창간호

 

이태수 교수가 2008년 서울대를 명예퇴직하고 2009년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한 것도 그의 이런 성향으로 미루어보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환경미래연구원’은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통합적 학문을 지향하고 각종 학술대회와 세미나, 포럼을 열고 인간환경미래 학술지를 발간하는, 인제대학교의 중점 연구기관이다. 요컨대 인문학 기반의 학술적 실천을 하는 곳이었는데, 이태수 교수는 인간환경미래에 인문학에 토대를 두면서도 다양한 주제의 글을 여러 편 발표한다. (아쉬운 것은 그 역시 스승 박홍규 교수를 닮아서인지 여러 편의 글을 썼으면서도 정작 단독 저서를 내지는 않았다. 그의 글은 대부분 쉽게 읽히지는 않아도 인간 사유의 다양한 깊이를 보여주는 지적 탐험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대학 강단에만 머물기보다 자신이 공부한 학문을 보다 적극적으로 학문적 영역에서 실현할 장을 찾은 것이다.

이후 이태수 교수는 대학 강단이 아닌 곳에서도 여러 철학적 주제를 가지고 대중 강연에 임한다. 그의 강의는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몇 편 접할 수 있는데, 사회적 문제나 개인적 삶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주제를 대중이 알기 쉽게 강의하고 있다. 그의 강의를 직접 접하면 이태수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학문세계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의 원장을 퇴임한 이후에는 고향인 인천의 국립인천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대중강연하는 이태수 교수(출처 : 유튜브 캡처)
대중강연하는 이태수 교수(출처 : 유튜브 캡처)

 

그는 스스로 서양 고전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주어진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안주하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어쩌다 이런 제도를 만들게 됐나,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나, 그 이유를 캐는 데 관심이 있어야 인문학을 하게 되는데, 캐고 캐고 들어가면 결국 고전 공부까지 가는 것이 정상적인 경로라고 생각한다. 특히 고전이 내게 매력있었던 것은 근원을 캐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더해, 그 근원이라는 게 알고 보니 사실은 낯선 것이고 모르는 것이었다는 점 때문이다.(앞의 조선비즈 인터뷰에서)”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문명에 길들여지면서 모든 것을 즉흥적이고도 감각적으로 접하는 습성에 알게 모르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왜 그런가’,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가’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오늘 같은 시대에 이태수 교수의 존재가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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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2-25 23:58:09
세계사에서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중국 황하문명, 인도문명과 별도로, 그리스 에게문명을 문명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중국의 한나라 태학(이후 위나라 태학, 그리고 수.당.송의 국자감, 원.명.청.청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이후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대학의 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세계종교로는, 유교, 기독교, 불교를 고대의 3대 세계종교로 보고,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후발 세계종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의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이처럼 중국문화는 근대세계의 지배세력인 서유럽의 종교문화, 사상, 철학, 대학, 과학의 발전만큼 중요한 세계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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