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교의 기교' - 고유섭이 한국미술에 바친 최상의 찬사... 그 이유는
상태바
‘무기교의 기교' - 고유섭이 한국미술에 바친 최상의 찬사... 그 이유는
  • 송정로 기자
  • 승인 2024.06.23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현미학연구소 창립기념 학술제 22일 동인천 북카페 ’개항도시’에서 열려
‘우현 고유섭 서거 80주기 및 우현미학연구소 창립기념 학술제’에서 발표하는 한상연 가천대 교수(사진=개항도시 제공)

 

우현 고유섭(1905~1944)에 의해 오늘날까지 한국미술의 근본특징으로 제시한 ‘구수한 큰맛’, ‘무기교의 기교’, ‘무작위성’ 등의 표현들이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예술론과 통한다는 연구결과가 학술토론회에서 발표됐다. 미술 작품의 제작에 사용되는 기교에서 결정적인 것은 제작 기술의 셈세함이나 정교함이 아니라, 그 무엇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드러내도록 할 역량이라는 것이 우현과 통한다는 것이다.

‘우현 고유섭 서거 80주기 및 우현미학연구소 창립기념 학술제’가 22일 오후 5시 동인천 북카페 ’개항도시’에서 열렸다. 토론회에는 이원규 ‘고유섭 평전’ 저자가 ‘문화독립운동가, 우현 고유섭’을 주제로, 배일동 명창이 ‘판소리의 미학’을, 송성섭 우현미학연구소 소장이 ‘고유섭의 우현 미학’을, 김지영 한국춤협회부회장이 ‘한국춤의 특질’을, 한상연 가천대 교수(한국현대유럽철학회 회장)가 ‘우현 고유섭 예술철학의 원류’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한상연 교수는 이번 발제에서 고유섭이 자신의 학사 논문에서 다룬 독일의 예술철학자 콘라트 피들러(1841~1895)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 역시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이자 철학자 슐라이어 마흐(1768~1834)의 예술철학과 고유섭과의 연관성 등에 대해 발표했다.

 

 

고유섭의 학사 논문은 주로 피들러의 주저(主著) 『예술활동의 근원』(1887)을 다루었다. 미에 대한 고유섭의 관점은 피들러의 예술철학을 반영한다.

피들러에게 예술활동은 일종의 인식적 활동이고, 그 근원은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시지각적 인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지이다. 피들러는 “美가 예술의 목적이라는 것은 자의적이고 증명되지 않은 가정으로, 예술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 편견 없이 숙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했다. 어느 한 부류의 만족을 아름다움으로 규정함으로 다른 부류의 만족과 구분하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묻는 미학적 방식은 예술에 대한 근거 없는 선입견에 토대를 두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유섭은 ‘아름답다’를 ‘알음과 답다’가 합쳐진 말로 보았다. 즉, 美란 참되게 앎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의 저술들은 그가 아름다움을 일종의 앎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린다. 고유섭에게 미학과 미술사의 美는 우리말 아름다움이 암시하는 일종의 앎이며, 그런 점에서 미학은 개념적 앎과 감각적, 지각적 앎을 추구하는 학문을 뜻하고, 미술사는 감각적, 지각적 앎을 표현하는 방식과 기술의 변천사에 관한 학문을 뜻했다.

고유섭은 「미학의 사적(史的) 개관」(1930)에서 현대 미학의 기원과 발생과정을 약술한 후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학 사상 및 예술 사상의 전 과정을 약술하여 발표했다. 이 글에서 고유섭은 ‘최근의 미학 경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현상학적 미학’이라고 밝혔다.

고유섭이 말하는 미학이란 피들러의 예술철학 및 현상학적 미학에 가까운 의미를 지난 것이라고 한 교수는 짚었다. 현상학적 미학에 대한 고유섭의 진술 속에는 그가 추구하는 미학이 순수체험의 영역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현상 그 자체의 인식과 표현을 지향하는 것이지, 예술 작품의 작용과 효과의 부산물인 美의 해명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구수한 큰 맛’, ‘무기교의 기교’ 등 한국미술의 근본 특징에 대한 고유섭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보는 연구자들은 대개 한 나라의 미술에 어떤 초역사적 특징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라고 본다. 하지만 고유섭은 「조선미술문화의 몇 낱 성격」에서 자신이 두 가지 경험을 거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문화를 물리 사물을 규정하듯이 감각적 명료함만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거부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항구적이고 불변하는 관념성을 문화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을 거부한 것이다.

 

콘라드 피들러(Konrad Fiedlier, 1884)
콘라드 피들러(Konrad Fiedlier, 1884) - 한상연 교수 발제 자료

 

한편 한 교수는 ‘구수한 큰 맛’은 고전적 미술의 엄격한 이상성이나 섬세하고 정교한 기예의 활용을 통해 구현될 수 없는 삶의 존재의 무한성과 유장(悠長)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무기교의 기교’란 사실 고유섭이 한국미술에 바친 최상의 찬사다. 오직 지나치게 섬세하고 정교한 기예를 추구하지 않는 예술, 섬세하고 정교한 기예의 구현물을 통해 도리어 가리어지는 삶과 존재의 역동성을, 그 본래적 무한함과 유장함의 양태 속에서 드러내는 예술만이 예술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테크닉)의 근본 의미를 ‘그 무엇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드러나도록함’이라고 제시한다. 다시 말해 ‘테크네’란 본래 제작기술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그 무엇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드러나도록 할 실천적 역량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미술(예술), 즉 아트(art)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테크네’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미술의 본질은 존재론적 진리를 드러냄인 셈이다. 즉 미술은 일종의 앎의 현상이며, 미술 작품의 제작에 사용되는 기교에서 결정적인 것은 제작기술의 섬세함이나 정교함이 아니라 그 무엇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드러내도록 할 역량으로 작용함이다.

한 교수는 이 대목에서 고유섭의 ‘구수한 큰 맛’, ‘무기교의 기교’ 역시 이와 유사한 사상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보았다.

한교수는 고유섭과 피들러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힌 연구 결과는 아직 나온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한국미술에 대한 고유섭의 해석을 현상학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조망한 연구 역시 전무한 형편이라며 이번 학술토론회를 통해 한국미술 연구에 전환점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