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서구 오류왕길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예년보다 쉬웠다는 수능이 강추위 없이 무사히 끝났다. 이제부터는 연말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한해 사업들도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 동시에 끝은 다시 시작을 부르기에 나태해지지 말고 다음 해 있을 씨앗 뿌리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어수선한 국정을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마음이 그리 고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카페와 의류 매장은 이미 겨울 낭만을 위한 치장에 돌입했다. 반소매 티셔츠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나, 예년보다 높아진 기온으로 기후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인천지하철 2호선 따라 서쪽 끝으로 가 보았다.
서구 검단의 서쪽에는 수도권 쓰레기매립장이 있다. 오류왕길동은 그 넓은 부지(매립)를 포함하고도 더 넓은 구역으로, 검단천 아래 인천지하철 왕길역과 검단오류역 사이는 오류왕길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세찬 바람 양탄자에 기분을 얹어 걸어간다. 오류왕길동 일대는 인천지하철 2호선의 끝 지점으로, 해안 쪽에 검단산업단지가 있고 남쪽에는 수도권 쓰레기매립장과 과거 쇳가루마을로 불리던 사월마을과 더불어 안동포, 대왕마을 등이 있다. 공장이 많아서인지 곰 같이 육중한 덤프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개발 호재 주거 단지 건설로 곳곳이 공사판이다. 다시 말해 과격한 환경 탓에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마을의 중심엔 백석산이 있다. 과거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과거 인천상륙작전 시 포탄에 맞아 쪼개어진 흰 바위가 있다고 알려진다. 고도 200m가 채 되지 않지만 이 지역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에는 봉황이 머물렀을 긴 역사(1955~)의 단봉(丹鳳)초등학교가 있다. 이곳에서 매해 ‘백석산 문화예술제’(올해 8회)와 올해 2회째인 ‘검단농협 로컬푸드 축제’가 열린다. 검단오류역은 산업단지로 가는 종착역이라 그런지 역사 건물 아래로 노동자들의 자전거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산업단지의 깔끔한 도로 양편으로는 공장들이 즐비하다. 잠시 층고 높은 검단산업단지 우편취급국에 들러 소포를 부쳤다.
오류동(梧柳洞)이라는 지명에서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마을에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으나 실제로 쉽게 찾아볼 수는 없었다. 왕길동(旺吉洞)은 현재 주변 개발로 인한 기대감 상승으로 이름값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동차가 오가는 다리 아래로 트럭의 발소리와 소설(小雪)을 앞둔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노래 한 곡조가 만들어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은행나무의 짙은 노랑과 단풍나무의 짙은 빨강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거리 위로 아이들이 뛰고 어르신들은 좀 더 움츠리며 걷는 걸음에서 가을 둔덕을 넘어 겨울을 읽어보게도 된다. 봉수가 지나는 길목이라 산자락이 시선을 따라 이어지기는 했지만, 나무 연기보다는 시큼한 쇳내가 이곳의 분위기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한 달 전쯤에는 왕길동 기계 공장에서 난 큰불이 주변 공장 30개 동 이상을 태워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인명 피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검단천 주변의 농경지가 더는 매립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백석산 주변으로 시민들의 휴식처가 정비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도 같다.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유입되고 산업시설이 확충되는 과정에서 그래도 남겨둬야 할 것들은 노출이 될 것이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며 개발을 앞세우기 보다는, 자연의 본 모습으로 돌려놔야 할 당위가 커지고 있는 현 시대의 요청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백석산은 이미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마치 홍시 모자라도 쓴 것처럼 달콤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아이들의 마음도 빨개지고 있을 것이다.
왕길역 인근에는 단풍나무 시럽처럼 달큰하게 육개장을 내어놓는 집이 하나 있다. 대파 줄기를 큼지막하게 넣어 주는 모양이 좋아 가끔 찾는다. 마을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맛의 기억으로 정의되는 부분이 생기곤 한다. 쓰레기매립장 위에 설치된 골프장에서도 오동나무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혹자는 몰래 골프를 치더라도 오동나무의 기개는 꺾이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과거 풍부한 수량과 일조량으로 많은 나무가 자라며 일궈진 땅이니만큼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 수액을 듬뿍 머금은 공간으로 오류왕길동이 흥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