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고려궁지의 가을 - BGM '11월 그 저녁에'(양희은)
노랗고 붉은 계절이다. 빛바랜 사진 같은 길 위를 걸어가 본다. 고려궁지 근처 길은 칼럼에 여러 번 소개 했지만, 막상 고려궁지 안쪽은 담아 본 적이 없다. 강화도 주민은 무료입장이라 신분증 제시 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회색 계단을 몇 올라 커다란 문을 넘어가면 짙은 노을 색 단풍나무가 떡하니 서 있다. 가을에 가장 화려한 색을 띠는 단풍나무.
고려궁지는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후 1270년(원종 11) 화의를 맺고 개성(開城)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의 왕궁터이다.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松岳)이라 하였다고 한다. 강화의 고려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에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궁궐터에는 강화의 지방 행정관서와 궁궐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 강화의 궁궐은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이 업무를 보던 이방청 등 조선시대 유적만 남아있다.
궁지 안에는 보호수가 2그루나 있다.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옛 건물들은 불에 타 소실되거나 무너졌지만, 느티나무는 약 400년간 고궁터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의 세월을 묵묵히 바라보고 간직하고 있을 나무의 겹이 경이롭다.
넓은 풀밭 끝자락에 홀로 서있는 보호수 나무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416년이 넘은 회화나무이다. 역광으로 인해 하늘 배경에 나무모양으로 큰 그림자가 생긴 것 같다. 길쭉한게 기린이 목을 뻗은 모습 같기도 하다.
해가 지면서 반대쪽에는 하얀 달이 떠올랐다.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던 감나무의 열매가 다 떨어지고 이제 몇 알 남지 않았다. 찬 밤공기도 불어오니 겨울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바닥에는 낙하하여 터진 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양희은 님의 ‘11월 그 저녁에’를 추천하려 한다. 가을과 겨울 사이 마지막 단풍도 모두 지기 마련이다. 나무를 감싸 주었던 무성한 풀들과 또다시 이별하는 계절이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지는 해를 보며 듣기 좋은 음악이다.
“누구를 부르듯 바람이 불어오면
나 홀로 조용히 노래를 불러본다
잊어버린 먼 얘기들을
찾고싶은 먼 사람들을
내 작은 노래에 불러본다
꿈꾸듯 아득히 구름은 흘러가고
떠나간 친구의 노래가 들려온다
산다는 것이 뭐냐하던
사랑이 모든 것이냐던
누가 내게 대답해주냐던
인생 참 어려운 노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