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 수행 : “말을 하지 않은 건 나 혼자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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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 수행 : “말을 하지 않은 건 나 혼자뿐이군”
  • 최원영
  • 승인 2024.11.1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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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83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도 피곤합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중요한 본질은 사라지고 말꼬리에 사로잡혀서 옳고 그름만을 따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럴 때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입니다. 그래야 제풀에 꺾여 조용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스님들의 선문답 중에 법안 스님이 제자와 나눈 대화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장웅연)에 나옵니다.

 

법안 스님이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멀어진다고 했다. 그대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자가 말합니다.

“웬걸요.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보다 더 크게 벌어집니다.”

“그래? 그래서 또 어떻게 되겠는가?”

“저는 여기까지인데 스님께서는 어쩌시렵니까?”

“아무렴.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보다도 훨씬 더 크게 벌어진다.”

이에 제자는 문득 절을 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만큼 멀어진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제자는 이 말에 말꼬리를 붙여 그것보다 더 크게 벌어진다고 말장난을 겁니다. 이에 스님은 그게 맞다고 인정해 줍니다. 그때 제자는 깨달았습니다. ‘그것만큼’이나 ‘그것보다 더 크게’ 벌어진다는 것이 결국은 같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만약 스님이 제자의 얄팍한 말장난으로 인해 화가 나서 마음이 상했다면 스님도 제자와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스님은 웃으면서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라며 받아줍니다. 어쩌면 아무리 설명해도 제자가 아직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얼마나 멀어지는가는 질문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위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훈수를 둡니다.

“입을 열면 먼지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 진짜 평화는 한 사람이라도 섣불리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그런데 침묵한다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스님이나 사제들도 묵언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평화로운 마음으로 침묵할 수 있는 경지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현자들의 철학 우화》(한상현)라는 책에 나옵니다.

 

네 명의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침묵의 경지에 이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스승이 말합니다.

“며칠 동안 절대로 말하지 말고 명상에 잠겨 보도록 하여라.”

첫날입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식사하고 조용히 묵상에 잠겼으며 입을 굳게 다문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둘째 날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시중을 들던 아이가 한 제자의 찻잔에만 차를 따르지 않았던 겁니다.

제자 하나가 말했습니다.

“이봐, 왜 내 잔은 비워둔 거지?”

두 번째 제자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금 자네는 침묵을 깬 거야.”

세 번째 제자가 말했습니다.

“이 멍청이들아, 우린 지금 침묵 수행 중이라는 거 몰라?”

네 번째 제자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말을 하지 않은 건 나 혼자뿐이군.”

 

맞습니다.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고행이고 수행입니다. 그러나 침묵은 때로 너와 나 사이에 신뢰를 심어줍니다. 나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너’를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 침묵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습니다. 그때는 그저 미소로 답하면 어떨까요. 지그시 웃어주는 그 사람의 표정에서 깊은 안도감과 함께 신뢰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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