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섬 백령도, 그 땅을 밟다
상태바
멀고 먼 섬 백령도, 그 땅을 밟다
  • 이규원 인천섬마을조사단 1기
  • 승인 2013.09.14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섬마을조사단 2차 탐방 - 백령도
섬마을 조사단이 두 번째로 찾은 섬은 백령도
 
 
백령도는 날씨의 영향으로 쉽게 들어가지도 나올 수 도 없는 섬이라 배를 타고 내릴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다행히도 나를 태운 배는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4시간여의 항해 끝에 무사히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에 닿았다. 백령도에 대한 첫인상이 어떤 모습으로 새겨질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하선을 준비했다.
사실, 그간 백령도를 떠올리면 ‘해병대’ 밖에 좀체 생각나지 않았다. 분단의 현실에서 백령도는 북한과의 거리가 가깝기에 항상 무장한 해병대가 지키고 있는 긴장감이 감도는 섬으로만 다가왔다. 이러한 이유로 선뜻 여행지로 마음먹어지지 않고 내 마음 속에서 머나먼 타국과도 같았다. 적어도 백령도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그랬다.
용기포 선착장에 배가 닿자 많은 여행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박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피켓을 들고 손님을 맞고 주차해 있던 많은 관광버스는 여행객들을 가득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백령도는 이렇게 많은 여행객들이 드나들고 그 안에서 활력이 넘쳐나는 '활력 덩어리' 섬이다.
 
 
시선과 마음을 잡아두는 장군들을 만나다
 
사진1.JPG
[사진1] 두무진
 
백령도에는 문화재가 많다. 천연기념물인 사곶해변(천연비행장), 콩돌해안,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 습곡구조. 그리고 백령도를 찾은 여행객들이 빠지지 않고 손 안에 꼽는, 명승8호로 지정된 두무진까지. 첫 번째로 간 두무진은 여행객들의 찬사를 받을 만큼 멋진 절경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진한 파란빛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고 기암괴석이 해안절벽을 이뤄 바다의 한 쪽을 두르고 있다. 장군들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두무진(頭武津)’. 뾰족한 기암괴석은 장군의 머리와 닮아 마치 장군들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깎아지른 바위벽 틈에서는 쇠가마우지가 다닥다닥 붙어 한가로운 자태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장관을 그늘에 앉아 편히 관람하고 가라는 듯 아주 적절한 위치에 기암이 한 평 남짓의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비로소 두무진의 모든 것을 온 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쇠가마우지와 갈매기들이 내는 소리는 배경 음악으로 훌륭하고, 반짝이는 바다는 무대로, 그 안에 신비함을 뽐내는 기암의 장군들은 주인공이 되어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를 황홀하게 한다. 그렇게 한참 동안 두무진에 빠져 여유를 즐기고 눈과 귀가 호사를 부린 다음에야 시선을 돌릴 수가 있었다.
 
 
백령도 특산물 '까나리'
 
사진2.JPG
[사진2] 까나리
 
백령도에 까나리가 유명한 만큼 곳곳의 식당에서 ‘까나리’를 흔히 맛 볼 수 있다. 섬마을 조사단이 들어간 식당에서도 까나리 반찬을 맛 볼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멸치처럼 생겼고 맛도 멸치와 비슷하여 까나리라는 설명이 없다면 흔하게 먹던 멸치볶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까나리라는 말에 유심히 살펴보니 멸치보다 더 길고 머리 부분이 뾰족하여 더 날렵한 게 멸치와 다르긴 하다. 이 밖에도 백령도에는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한 냉면, 까나리액젓에 찍어 먹는 삼겹살 등 까나리를 이용한 이색적인 음식이 다양하다. 백령도의 까나리 액젓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명물이다. 잡어의 비율이 적고 90%이상이 까나리를 포함하고 있는 최고의 품질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초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잡히는데, 섬마을조사단원이 간 5월 중순은 한창 까나리 잡이를 할 때여서 어민들 모두 분주한 모습이다.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관광버스가 서 있다
 
사진3.JPG
[사진3] 사곶해변
 
이 곳은 모래가 단단하여 천연비행장으로 사용됐던 사곶해변이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이곳은 전 세계 두 곳 밖에 없는 천연비행장 중 한 곳이다. 한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실제 6.25전쟁 당시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나 사격비행기가 뜨고 내렸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휴전선이 설정될 때 백령도가 남한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미국이 힘썼다는 추측도 한단다. 단단한 규조토로 이루어져 버스가 지나다녀도 바퀴 자국이 남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해변이 말랑해져 여러 자국이 남아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어떤 이는 사곶해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담수호를 만들면서 생긴 지형변화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사곶해변을 따라 세워진, 군방어를 위해 세워진 콘크리트 벽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으니 추측만 할 뿐이다.  
 
 
전쟁, 분단의 흔적
 
사진4.JPG
[사진4] 방공호 흔적
 
중화동 포구의 갈림길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백령도 주민이 전시에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방공호의 흔적이, 오른쪽으로 가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인 중화동교회가 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덜해서인지 아니면 백령도 하면 떠오른 것이 NLL이라 방공호가 생각났는지 당연하게 발걸음이 왼쪽으로 옮겨진다.
깎아지른 절벽 중간쯤에 철창으로 막아진 마치 감옥을 연상케 하는 방공호가 보인다. 돌을 밟고 올라 안을 살펴보니 약10미터 정도 파인 동굴 모양의 내부가 보인다. 철창 안으로 손을 뻗어 어두컴컴한 내부의 공기를 느껴보니 축축하고 서늘한 게 전쟁의 공포만큼이나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온 몸이 묶여 있는 천연기념물 무궁화나무
 
사진5.JPG
[사진5] 천연기념물 521호 무궁화나무
 
으스스한 기분을 뒤로 하고, 중화동교회로 향했다. 입구와 연결돼 있는 계단 위쪽을 보면 약 100년의 세월을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521호 무궁화나무가 보인다. 6.3미터의 훤칠하게 큰 키에 무궁화 평균 수명인 40~50년을 훌쩍 넘어 장수하고 있는 이 무궁화나무는 많은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다. 가지마다 연결된 끈이 없으면 쓰러지기라도 할 것인 양 꼼꼼히도 둘러 마치 손발이 묶여 자유가 없어진 것처럼 불편하고 답답해 보였다. 내가 이 무궁화라면 과연 이것을 보호라고 느낄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다. 천연기념물이라 보호하기 위해 세심히 신경 쓴 것 일테지만 무궁화를 한 생명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고민해 본 흔적은 보긴 어려웠다. 만약 정말 저 많은 구조물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실정이라면 여기까지가 100년을 산 이 무궁화 나무의 수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천연기념물이라 해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느껴진다.
진촌리 마을을 지나다 군복을 입고 총으로 무장한 백령도 특색이 묻어나 있는 듬직한 허수아비를 만났다. 백령도는 섬이지만 농업 활동을 하는 인구비율이 30%가 넘는다. 그래서인지 모가 심어진 논이 많이 있다. 그 안에서 갈매기들은 몸에 물을 적셔가며 유유자적 놀고 있다. 바다와 갈매기는 익숙하지만 논과 갈매기는 낯선 풍경이라 한동안 신기하게 바라보다 저 멀리 논 한가운데 바람에 흔들리는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괭이갈매기다. 정확히 표현하면 괭이갈매기 허수아비다. 괭이갈매기가 발에 끈이 묶여 논 한가운데 매달려 있는 것이다. 죽은 줄 알았는데 가끔 한 번씩 '푸드덕' 소리를 내며 고통스런 날개짓을 한다. 아마도 논의 주인이 살아있는 갈매기를 논 한 가운데 매달아 다른 새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려는 의도인 듯하다. 작물을 걱정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지긴 하지만 생명도 한번쯤 생각해줘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깔렸다.
 
 
가슴에 새긴 백령도
 
이 밖에도 백령도에는 파식작용에 의해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는 형형색색의 콩돌이 있는 콩돌해안, 우리나라에 약300마리 밖에 없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점박이물범, 지질변형으로 생겨난 감람암을 포획한 현무암 등 볼거리가 그득하다.
많은 볼거리와 다양한 색깔을 담고 있는 백령도를 그간 '해병대' 이미지로만 떠올렸던 무지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백령도 구석구석을 온 몸으로 느껴보니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백령도가 이제는 가슴 속 깊이 담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