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과 가까운 군사요충지, 30가구 거주
상태바
연백과 가까운 군사요충지, 30가구 거주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9.14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섬마을조사단, 서검도 미법도를 다녀오다
 
IMG_4899.JPG
 
 
 
‘인천녹색연합’과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인천in'이 함께 꾸리고 있는 <인천섬마을조사단>이 8월 17일, 18일 1박2일로 서검도와 미법도를 다녀왔다.

<인천섬마을조사단>은 2013년 한해동안 다섯 차례 인천에 있는 섬을 둘러보는 일정을 세웠고, 이번이 교동도, 백령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들은 섬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자료를 공유한 뒤, 직접 섬에 들어가서는 시간이 닿는 대로 둘러보고 현지 주민을 만나 인터뷰한다.

이번에 찾은 서검도, 미법도는 민통선 안에 있는 섬들로 외부와 왕래가 적다. 민간인이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북한의 황해도 연백과 가까운 이 섬들은 지금도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군사 요충지다. 서검도, 미법도를 가려면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건너간 뒤, 다시 하리포구로 이동해야 한다.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 들어가는 여객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IMG_4833.JPG
서검도 본섬과 솔책섬 사이를 막아 간척한 농지.
 
 
 
IMG_4849.JPG
 
 
IMG_4876.JPG
서검도에서 나고 자란 김창렬씨.
                           
 
서검도는 강화도 삼산면에 있으며, 석모도 서쪽 2km 거리에 있다. 섬은 대체로 삼각형 모양이며 구릉이 낮다. 넓은 간척평야가 있어 주민 65%가 농사를 짓고 있으며, 수산, 양식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군사분계선 상의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자유롭지 못해 교동도나 석모도 주민들처럼 쌀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섬 중앙에는 대규모의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염전이 있었다. 이때는 전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이 많아 섬이 북적거렸으나, 현재는 30가구 정도 살고 있으며 대부분 노인들이다. 중국에서 한국 상류를 거쳐 서울로 입국하는 중국인들을 감시, 통제하는 기관이 있었으며, 강화도 서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서검도라 하였다.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가까운 거리에 동검도라는 섬이 있다.

섬에는 고라니가 많아 침입을 막기 위해 밭에는 울타리가 많이 쳐져 있다. 주민들은 한 해 한 번씩 고라니 사냥을 통해 개체수를 줄이지만 금세 번식해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북한이나 강화 본섬 등지에서 헤엄쳐 오는 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는 탓이다.

미법도는 삼산면에서 가장 작은 섬으로, 현재 11가구가 살고 있다. 서검도와 함께 외국에서 온 배를 검문했다. 외국 선박들이 항해 중 사망한 이들을 매장하고 떠난 까닭에 섬에는 후손 없는 묘지가 많다. 가까이 있는 다른 섬들처럼 어업이 주업이었으나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고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갯벌 출입이 제한되고 농업이 주업이 됐다. 미법도는 특히 먹는 물이 좋다고 알려졌다.

미법도는 미법사라는 절이 있었고, 여기에서 보물이 나온다는 설도 많았다. 이에 대해 주민 한 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도굴됐다고 전했다. 미법사는 터만 남아 수풀이 우거져 있고, 그 옆쪽으로 똑같은 이름인 ‘미법사’가 아담하게 신축돼 있다. 미법사터 앞으로는 초등학교가 건물은 없어진 채 흔적만 남아 있다.
 
 
IMG_4912.JPG
조사단이 미법사가 있던 곳을 살펴보고 있다.
 
 
IMG_4901.JPG
배정웅씨가 조사단에게 미법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1965년 10월 29일, 미법도 주민 109명이 비무장지대에 있는 황해도 은점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다가 11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1976년, 납북됐던 어민들은 고정간첩 혐의로 줄줄이 감옥에 갔다. 마을의 민방위 소대장이었던 한 어민은 ‘인천제철 폭파 공작’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주민 정씨는 1982년, 고문 끝에 북한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취지의 자백을 했다.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된 정씨는 1984년 무기징역을 받고, 15년 복역후 199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후에도 감시가 끊이지 않았다. 그후 정씨는 무죄로 판결났고, 2012년 9월 대법원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검도와 미법도 현지 주민 인터뷰는 각각 섬에서 이루어졌다. 서검도에서는 이 섬에서 나고 자란 김창렬씨(82)가, 미법도에서는 배정웅씨(78)가 ‘살아온 이야기’와 ‘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천섬마을조사단>은 서검도와 미법도를 다녀온 내용을 정리해 <인천in>에 게재할 계획이다.
 
 
IMG_4871.JPG
서검도에서 바라본 북한 모습. 저수지 너머 가까운 거리에 연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