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넉넉한 섬, 서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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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넉넉한 섬, 서검도
  • 이규원 인천섬마을조사단
  • 승인 2013.09.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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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섬마을조사단 3차 탐방 - 서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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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는 석모도로 들어가려는 차들로 빽빽했다. 조사단 일행도 석모도를 거쳐 서검도로 들어가기 위해 꼬리를 문 대열에 합류했다. 승선을 한 많은 여행객들은 선상에 나가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주며 섬에 들어가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덥고 습한 공기 때문에 차 안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석포리 선착장에 도착한 조사단 일행은 서검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하리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하리 선착장에는 간이 건물로 꾸며진 매표소와 그곳을 지키며 승선, 하선하는 승객들을 검문하는 2명의 해병대 군인만 있을 뿐, 물을 사먹을 만한 매점도, 잠시 앉아 출항 시간을 기다릴 만한 편의시설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배는 미법도를 경유하여 서검도로 가게 된다. 나는 약간의 멀미 기운이 있어 눈을 감고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댔더니 금세 잠이 들어 미법도를 지나쳤는지도 모른 채 서검도에 도착해 있었다.
서검도는 삼산면의 주도(主島)인 석모도(席毛島)에서 서쪽으로 8km 해상에 위치한다. 중국에서 한강상류를 거쳐 서울로 입국하는 중국인들을 감시, 통제하는 기관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강화도 서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서검도라 불렀다 한다.
조사단을 하면서 인천 섬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보다 농업에 종사는 주민이 더 많은 섬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서검도 역시 농업의 비율이 65퍼센트 이상이라고 한다. 서검리 본섬과 솔책(率冊)섬 사이의 내해(內海)를 방제(防堤)로 막아 간척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 곳은 염전으로 쓰다가 대하양식장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논으로 바뀌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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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검도에 도착한 우리는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흩어져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곳곳에 고추, 호박, 가지, 콩 등의 농작물이 심어져 있고 돌배, 천도복숭아, 포도넝쿨 등의 과실나무가 거의 모든 집 주변에 심어져 있었다. 판매를 할 정도로 넉넉해 보이진 않았지만 한 해 동안 노부부가 일용하고 뭍에 나가 사는 자녀들에게 보낼 정도의 양은 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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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전시된 듯 널려 있는 세간 살림에서는 소박한 주민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한 마을 구석구석의 나무, 풀, 돌에서도 정겹고 아기자기한 멋이 풍긴다. 서검도의 소박한 멋에 반 해 돌아다니다 작은 우물을 만났다. ‘이 우물은 식수로 사용 합니다’ 라는 팻말이 붙은 우물이다. 지붕이 세워져 있고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두레박 두 개가 매달려 있다. 메마른 우물만 보다가 물이 담겨 있어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우물을 보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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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숙소로 이동했다. 서검도 마을과 거리가 좀 있는 민박집이자 낚시터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두 세 명의 낚시꾼들이 보였고 주인 아주머니는 그들에게 저녁상을 차려주고 있었다. 짐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우리도 갓 잡은 숭어로 요리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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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아늑한 서검도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우리 일행은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이 듬뿍 들어간 도시락을 싸들고 미법도로 향하였다. 미법도는 서검도보다 더 작고 주민도 적어 슈퍼도 식당도 없다하여 미리 낚시터 주인 아주머니에게 점심도시락을 부탁해 놓았었다.
배가 미법도에 닿자 선착장에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듯 설렘이 가득 묻어난 표정의 아주머니가 보인다. 그 아주머니가 기다린 손님은 택배였다. 반갑게 택배상자를 받아 들고 다시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순박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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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법도의 들판은 초록 물결로 넘실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하얗게 벼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미법도는 서검도와 마찬가지로 군사분계선과 근접해 있어 어업 활동에 제한이 있고 어종도 많지 않다는 것 등의 이유로 어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농업에 비해 적다고 한다. 초록 들판과 경운기, 트랙터 등의 농기계, 농작물들은 농업이 주가 되는 농촌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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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쭉 달리다 보니 미법사라는 절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 곳에서 덕우스님을 만나 미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래 미법사는 다른 곳에 있었으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던 중, 현재 배정웅 노인회장과 도형스님이 2002년 새로운 터에 미법사를 완공했다 한다. 이후 미법사를 지켜오던 도형스님은 건강문제로 서울에 나가 있고 올 4월부터 덕우스님이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우스님의 손길로 가꿔진 고추, 호박 등의 농작물이 미법사의 넉넉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이로 인해 미법사는 생명으로 가득 차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교회만 두 개 있는 서검도와는 다르게 미법도에는 교회가 없고 절만 있다. 미법도는 불국토라 할 만큼 마을 주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라 자연스럽게 교회가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본래의 미법사는 임진왜란 때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한다. 배정웅노인회장의 안내로 미법사 터를 찾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풀과 나무로 무성해 절 터였다는 것을 알아볼 만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멀어지는 미법도와 서검도를 보니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다음번에는 아무 계획도 준비도 없이 조용히 와서는 좋아하는 과실이 열려있는 집 문을 두드려 무작정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무리한 청을 해봐야겠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환한 미소로 내 손을 잡아 주실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상상이 된다. 이것이 서검도, 미법도가 가진 넉넉함이 아닌가 싶다.
-글/사진 : 인천섬마을조사단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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