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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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 지용택
  • 승인 2013.09.1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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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택칼럼] 지용택 /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게티즈~1.JPG
 
노예제도를 지지한 미국 남부의 7개주가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인정하지 않은 미합중국 연방정부와의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 남북전쟁(1861~1865) 혹은 시민전쟁이다. 5년간 계속된 이 전쟁은 초기에는 미국 시민들, 백인들만의 혁명으로 비화되다가 전쟁이 교착되고, 장기화되면서 과열되어 멸시받던 흑인 노예들까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정부군인 북군은 전쟁 초기에는 남군에게 밀려 고전했다. 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투는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Gettysburg)에서 벌어진 게티즈버그 전투였다. 남북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혈전으로 치러진 이 전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전사자들은 그들이 죽은 땅에 묻혔다.
 
1863년 11월 19일, 남북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266개의 단어로 된 2분간의 짧은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이 바로 역사적인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연설 내용을 간단히 축약해본다.
 
“우리는 오늘 정부군과 남부군이 내전으로 인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구하려다가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그 전쟁터의 일부를 바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이 일은 너무나 적절하고 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크고, 엄밀한 의미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이 땅을 봉헌할 수도 없고, 우리가 신성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싸운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생존자들이 이 땅을 이미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는 명예롭게 죽어 간 분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해 이루고자 했던 대의에 더욱 더 헌신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그분들로부터 얻고, 그분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함으로써, 우리 앞에 미완으로 남아 있는 위대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처럼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신(神)의 가호 속에서 이 나라는 새롭게 보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승리의 전환점이 된 곳에서 개선에 도취되지 않고 겸손했으며, 둘째 정부군과 남부군 병사의 영혼을 함께 조의했으며, 셋째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완성하지 못한 민주국가를 이룩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 묘지에서 그 뜻을 다짐해야 한다는 거룩한 정신이다. 이것은 전쟁을 저주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2천 6백여 년 전 노자가 저술했다는 유일한 책인 『도덕경』은 5천여 자 81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30장과 31장에는 노자의 전쟁관이 담겨있어 인상적이다.
 
“전쟁은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이기에 슬피 울어 애도해야 한다. 설혹 전쟁에서 승리했다해도 상례로서 처신해야 한다(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以喪禮處之).”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말한 연설과 너무나 닮아있다. 이 근래 일본은 재앙의 단초라고 할 수 있는 병기를 만들고, ‘집단적 자위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며 그 위세가 대단하다. 지난 대선 때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7월 21일 일본을 방문하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했으니 아마도 쾌재를 불렀으리라. 1900년 전후로 일본이 50년간 한국,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끼친 끔찍한 침략의 결과는 상상을 불허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정신으로, 마음으로 사과하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 재무장을 한다면 인접 국가들은 일본을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20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역에 지어진 수많은 나치수용소의 원형인 다하우 수용소(뮌헨 인근에 위치한) 유적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 방문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동서독 통일과 경제적 번영을 통해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이렇게 과거사에 대해 변함없는 반성의 자세와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독일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란 말이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의 다하우 방문길에 동행한 89세의 장 사뮈엘도 당시 이곳에 수용되었던 레지스탕스 출신인데 그는 “기억은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지도자는 내정에 몰두하면서도 아시아, 세계를 바라보고 지평을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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