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내가 인천이라고 말할 적에 그것은 대부분 동인천역 아니면 인천역 부근이라고 할 수 있는 구도심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그 지역을 방문했을 때 나는 거의 철저히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해 나는 1년 반의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대학을 그만 둔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른 계획도 없었고 막연히 호기롭게 지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유일한 비전이었다.
2013년 여름 동인천역 23번 출구를 지나 신포문화의 거리 어귀에 자리한 청년플러스에서 모임을 가졌다. 청년플러스, 줄여서 청플은 인천문화재단에서 청년 기획자들을 모은다는 취지에서 마련했던 공간이다. 재단에 지원을 받아 동네 가이드북 제작 인원을 모집한다는 공모를 보고 찾아 갔다. 당시 청플에서 진행한 가이드북을 프로젝트는 동네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부평과 중구로 팀을 나눠 취재형식으로 각자의 콘텐츠를 제작했다. 다함께 취재를 나갔고 술을 마시며 떠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를 누볐다. 그곳에서 보이는 모든 골목들이 생경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새로웠다.
<2013년 1월25일 청년플러스가 중구 내동에 커뮤니티 공간을 열었다>
“한 장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방에서 그 장소를 향해, 또한 그 장소로부터 동서남북 사방으로 다시 가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장소는 우리가 파악하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통해 서너 번은 우리에게 달려든다.” 벤야민이 모스크바에 2달간 체류한 기억으로 빚어낸 문장이다. 그때 벤야민은 되는대로 모스크바의 모든 예술 활동을 감상했다고 한다.
청플을 중심으로 매일 길을 잃고 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관계가 다양하고 넓어졌다. 부유하던 정체성 위에 장소의 획이 그어진 것이다. 그때의 경험은 그대로 도시를 사유하는 관점이 됐다.
문화와 예술은 도시를 헤매는 사람에게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경험하고 우리의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의 삶은 (아마도 평생) 도시 안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도시를 상상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많은 문화예술 인프라가 필요한 이유이다.
사실 청플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분명 행정의 한계와 청년에 대한 시혜적인 관점이 드러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플이 나에게 남긴 교훈, 청년이라는 개념은 정해져있는 게 아닌 적극적으로 만들어지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청년’ 혹은 ‘청년 문화/예술’이라는 이정표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의 개념을 주체적으로 돌려 세우는 일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