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지역이 포용해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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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지역이 포용해주면 어떨까요?
  • 한학범
  • 승인 2018.11.2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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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 한학범 / 인천교육연구소

 
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이 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도 주고, 놀잇감도 주고 부모가 올 때까지 ‘케어’한다. 학부모가 선호하는 정책 1순위이다. 생애주기로 보았을 때 생물학적 부모에서 출발하여 학부모 시기가 지나면 다시 긴 주기의 부모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돌봄은 가정이 원칙이고, 따뜻한 돌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그리고 앞으로는 가정을 넘어 지역에서 돌봄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가정인 지역 말이다. 함께 쓰는 우산역할이라고 하자. 왜 그런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지역의 돌봄은 제도, 정책, 지원 차원에서 기능적으로 수행하고 처치하고 대상화하는 차가운 돌봄이 아닌 따뜻한 돌봄을 지향한다. 제 2의 가정이 되어야만 돌봄 효과가 나중에 드러나므로 자녀 성장 후에라야 확인가능하다는 점이 난점일 뿐이다.
 
부모는 잘하든 잘 하지 못하든 자녀에게 첫 번째 교육자이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이고, 안식이어야 하며, 비빌 언덕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부모님들은 모두 카네이션을 매일 달고 다녀야 마땅하다. 학교에 거주하는 교사는 이러한 부모의 역할을 대리하는 것이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생의 생애 일부분을 하루에 일정 시간이지만, 책임져야 할 공적 책임감이 부여되어 있다. 물론 교사인 동시에 본인 자녀를 다른 학교에 맡기는 학부모 입장이라면, 그이 역시 다른 학부모와 동등하게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만 교사와 학부모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한다. 아마도 부모는 교사에게 좀 더 자신의 자녀교육에 힘써달라는 바람일 것이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관련 뉴스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 역시 앞으로는 자기 역량을 키워야 하는 약간의 부담감이 전국적으로 학교교육 과정을 통해 발현되라고 요청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부모가 자녀교육에 민감해질 수 있고 개별화 지도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 교원은 이러한 학부모 요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교육활동에 적절하게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점차 학부모민원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고소와 고발로 교육권 침해로 이어진다고 한다. 한편 교사는 학생이 보이는 소아우울증, 분노조절장애, ADHD 등으로 인해 교사는 학부모와 국가에 조기상담과 치료시스템 지원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학부모와 교사, 교사와 학생, 자녀와 학부모의 관계는 협력적이어야만 교육적인 정답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당위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협력시스템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로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는 팀워크를 보장하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학부모는 민원에만 의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활동을 진전시켜 유익한 학부모로서의 협력 이미지를 보이도록 하는 건 어떨까? 교사는 학부모와의 거리가 좁아지고, 학부모는 학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교육활동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올해 친구 덕분에 학부모 민원 대응에 대한 정책연구에 참여했다. 교원들의 요구는 학부모 민원을 개별적으로 임시방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공식적으로 대응기구를 통해 처리함으로써 학교교육력을 회복하자고 주문했다. 공식 민원처리를 통해 학부모 민원은 누락 없이 적극 수용되고 교육적인 반영 조치를 보장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망했다.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모두 교육권이라는 이름 아래의 한 몸이다. 교사는 학부모에게서 자녀교육을 대리하는 위임을 받았다. 교사의 교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학생의 학습권 보장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의 인권부터 따져보아야 할 근본적인 물음이다. 교권이 침해되면 학생의 학습권이 보장될까? 학생의 학습권만 보장하면 자녀의 교육활동은 온전하게 전개될까? 일부 학부모 민원의 속성을 보면 학교가 갖는 폐쇄성 때문이거나, 아니면 학부모가 학창시절부터 가져왔던 학교에 대한 낡은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하게 된다.
 
교육권은 교원, 학부모, 학생 모두를 보호해주는 따스한 기본권이다. 요즘 민주시민교육, 또는 인권교육이 확장되고 있다. 별도로 이식해야 할 교육아이템이 아니다. 교육활동에서 필요한 심리적 비타민이다. 교육권이 보호되고 확장될 수 있게 하려면 교육과정에 이러한 마인드를 담아 실천할 인권존중을 지향하는 교사의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앞으로 교사의 전문성의 근간이고 교사가 가져야 할, 그리고 교육활동을 통해 점차 갖게 되는 기본적 품성이다.
 
부모의 민원제기와 대응으로 교원의 감정노동, 그리고 침해사안이 일어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서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의견 갈등이다. 학부모는 생물학적 부모에서 점차 자녀와 파트너로서의 생애주기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자녀교육에서의 부족하고 아쉬운 점을 학교에 요구할 때는 어떤 지점에서 불편한 지를 잘 살펴 학교에 해결을 요청하는 슬기가 필요해 보인다.
 
점차 나라마다 격차가 벌어져 격차사회라고 한다. 지역 안에서도 격차가 생기고 학생끼리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긴다. 대물림이라는 말을 점차 실감하게 되고, 그대로 학생 생애 성장주기에 반영되며 몇 가지 정책처방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여 포용국가라는 비전을 나라에서 제시하고 있다. 단순한 복지사회나 복지국가 개념을 넘어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한다는 절박감 말이다. 물론 성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격차의 벌어짐은 어디론가 사회에 각인되고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차갑게 되돌아 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돌봄지원강화, 3시까지 의무하교, 저녁돌봄연장, 그런데 겉도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점차 부모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증가된다. 학교가 다 케어 할 수 있을까? 지자체에 따라서는 돌봄을 이관하는 지역이 있다고 한다. 예산과 제도로 부모의 따스함을 재현할 수 있을까? 요즘 사회적 경제 기반의 협동조합의 움직임, 지역이 나서서 마을교육과 마을공동체를 꾸리려는 흐름은 새로운 비전이라기보다는 지역격차를 줄이고, 해당 지역에서 나고 계속 자라기를 바라는 지역마다의 염원일지도 모른다. 지역끼리 교류하되, 자기 지역을 갖는 일은 가정마다에 지역마다에 지역성이라는 장소감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지역이 사회적 부모와 사회적 가정이 되어주는 것이다. 학교는 지역기반 아래 진로교육이 일어나도록 교육과정의 지역화가 작동하도록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의 자녀들은 더욱 더 긴 호흡으로 보아야 한다. 저출산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갈 예정이다. 자녀들은 자신의 어깨 위에, 머리 위에, 등 위에 매달리게 될 지금의 성인을 모셔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할 당사자들이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서로 협력하고 교육적 관계를 맺도록 교실과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지역을 살피는 사회적 마음이 필요해 보인다.
 
지역의 자녀를 품어주는 일은 학생마다 고유성을 인정하고 핵심역량을 증진하여 민주시민으로 자라 따뜻한 시민성을 발휘하도록 이끌 것이다. 학생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의식개혁하라고 말하기 보다는 지역에서의 지원을 든든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이 의욕 충만하게 다음 세대로 자라도록 따뜻하게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상이 학교를 이미 졸업한 지역 성인의 생애 과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천평생학습관 동화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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