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사람들'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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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사람들'의 여름나기
  • 이혜정
  • 승인 2011.08.22 1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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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폭염에 시달리며 '곰팡이와의 전쟁' 치러

만석동 쪽방촌 모습.

취재 : 이혜정 기자

장마가 끝나자마자 전국은 폭염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서 일반 시민들도 힘들겠지만, '쪽방촌 사람들'의 삶은 더 고통스럽다. 그들이 겪는 한여름 생활은 어떨까?

지난 5일 오후 인천시 동구 만석동 쪽방촌. 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와 폭염이 더하면서 쪽방촌 사람들은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너비가 1m 가량 되는 골목길을 따라 촘촘히 박힌 허름한 집들은 내리는 빗소리만 고요히 울릴 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에 들어섰다. 천으로 덕지덕지 뒤덮여 있는 문. 그곳에는 정모(72) 할머니가 살고 있다.

두 평 남짓한 방에는 들어서기 전부터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니나 다를까 천장 한켠에는 곰팡이가 피어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방바닥에는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습한 방을 조금이나마 건조하게 만들려고 불을 지핀 때문이다.

"요 며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천장에 물이 새고 곰팡이가 많이 피어서 하루에 2~3번씩 온풍기를 돌리고 있어, 보일러는 기름값 많이 들까봐 걱정돼 틀지는 못하겠고, 이렇게라도 해야 곰팡이를 좀 없앨 수 있지." 정 할머니의 하소연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걸레로 곰팡이를 닦고, 온풍기를 틀어 말리는 게 일과라고 그는 말한다.

다락방 같은 2층으로 올라가 봤다. 2층에는 겨울옷, 소쿠리, 옛 그릇 등 오래된 물건이 쌓여 있다. 역시나 그곳에는 천장과 벽이 눅눅히 젖어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아주 습하다. 숨이 막힐 정도다.

"빨리 날씨가 개야 할 텐데. 다락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은 밖으로 꺼내서 말리기도 힘들고 어찌해야 될 지 모르겠어. 올해는 왜 이리 비도 많고 더운지 살 수가 없네."


만석동 쪽방촌.

다른 주민인 오모(65)씨 집 상황도 마찬가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집안에는 눅눅함이 느껴진다. 

"요즘 날씨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는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비가 와서 습하니까 집안에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들어. 집안이 어둡다 보니 형광등을 켜놓고 있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감전될까 겁나."

나무로 된 오씨 집 천장은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이 떨어져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몇 년 전 천장에 비닐을 씌우고 프라스틱을 덧대기도 했지만 워낙 집이 낡아 소용이 없다.

"나뿐만 아니야. 집들이 다 낡아서 이곳저곳 고쳐도 올해처럼 비가 많이 오거나 덥거나 하면 다 소용없어. 건너 집에 사는 노인네에는 비가 새 방이 다 젖었어."

오씨가 말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가 보니 쾌쾌한 냄새와 함께 한 할머니가 앉아 있다. 방바닥과 천장에는 며칠 전 내렸던 장마비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바닥에는 물이 고였다 마른 자국이 남아 있고, 천장에는 검은 곰팡이들이 뒤덮고 있었다.


효성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황모(77) 할머니 집.

같은 날 계양구 효성동 쪽방촌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낡은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동네에 들어서자 빗소리가 스산하다.

야산 중턱쯤에 낡은 건물 한 채가 보인다. 한 사람 지나다닐 만한 통로를 가까스로 들어가면 방 6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이 나온다. 여기서 황모(77) 할머니를 만났다.

방안에 들어서니 비가 내리는 바깥과 달리 무더위로 숨이 턱턱 막힌다. 방안에선 곰팡이 냄새와 화장실 냄새가 역하게 풍긴다. 방안에는 낡은 선풍기가 '덜덜덜'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방안 습한 더위를 물리치기엔 역부족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약봉지와 온갖 종이를 주섬주섬 한쪽으로 치우더니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비가 오니까 온몸이 쑤셔서 몸을 가눌 수가 없네. 더울 때는 더워서 못 살겠고, 비가 오면 몸이 쑤시고. 얼마 전엔 집에 물이 차서 빼내는데 혼 났어. 교회 청년들이 와서 물을 빼주고 청소도 하고 갔어." 할머니는 간신히 힘든 몸을 일으켜 세운다.

천장에는 아직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방 여기저기에는 대야와 냄비를 받쳐놓고, 서너 개 수건이 벽에서 흐르는 빗물을 막아주고 있다.

"계속 비가 오니 살 수가 있어야지. 더우면 집안에 못 있겠고, 비가 오면 물이 새서 못 있겠고. 아이고 어쩌겠어. 곰팡이 냄새에 머리가 아파도 비라도 피할 수 있으니 집안에 있어야지. 박스나 종이라도 주어서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날씨가 이러니 일도 못하고 몸만 쑤시네. 내가 빨리 가야지. 늙으니까 날씨가 변덕스러우면 몸만 아파."

비가 잠시 그치고 나서는 냄새가 더욱 진동을 한다. 습한 기운에 벌레들도 많이 생겨 아예 다른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황씨는 말한다.

"요 밑에 사는 한 할머니는 기관지가 약해서…. 더웠다 비가 왔다 하니까 온 집안에 곰팡이가 핀 거야. 계속 기침이 심해지니까 약을 먹어도 좋아지지도 않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동네 찜질방에서 잔다고 하더라고. 그 할머니 딸이 하나 있는데, 사위 눈치 보여서 거기 가지도 못해. 나도 그러고 싶지만 찜질방 비용도 만만치 않아 이러고 있어.."

황 할머니는 가끔 교회에서 나와 집안일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장마와 폭염에 올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쪽방촌 사람들'은 추운 겨울 뿐만 아니라 한여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을 위한 한시적 지원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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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면 2011-08-09 16:18:49
인천in에서 곳곳을 다니며 취재하는 모습은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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