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문자 - 송도 세계문자박물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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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문자 - 송도 세계문자박물관 속으로
  • 이상구 객원기자
  • 승인 2023.07.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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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박물관 탐방]
(2)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가다

20157월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문화관광체육부가 주관하는 세계문자박물관의 유치를 둘러싼 도시들 간의 한판 대결로 한 여름의 태양은 더 뜨겁게 작렬했다. 인천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민선6기 유정복 인천시장은 직접 프리젠테이션에 나서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여주와 세종을 제치고 인천은 문자박물관을 안았다. 이후 약 7년간의 공사 끝에 올 630일 문을 열었다. 인천 최초의 국립박물관이다.

지하 1, 지상 2층 연면적 15,650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렇게 작지만 속 알맹이는 알차다. 전시물 하나하나의 역사적, 학술적인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모두 180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 136점이 진품이다. 현명한 소비자는 좋은 제품의 진가를 금방 알아채는 법, 박물관은 개관하자마자 입소문을 탔다. 주말이면 1만 명 이상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천 박물관 대 탐방두 번째 방문지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늘에서 본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두루마리 모양을 본 떴다. 페이지스(Pages)라 이름 붙였다.
하늘에서 본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두루마리 모양을 본 떴다. 페이지스(Pages)라 이름 붙였다(사진 제공 김태동). 

 

소리에서 문자로

관람은 지하에서 시작한다. 전시실 입구엔 높이 7~8m쯤 되는 탑이 우뚝 서있다. 오디오 스피커들을 켜켜이 쌓았다. 김승영 작가는 이 작품에 바벨탑이란 이름을 붙였다. 작품은 소리,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말()을 상징한다. 말은 인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도구지만 시공간적인 한계가 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즉시 소멸해버린다. 그걸 극복하도록 고안된 것이 문자. 말을 문자로 옮기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에게도, 몇 백 년 후의 후세들에게도 내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가히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바벨탑. 김승영의 2023년 작. 소리, 특히 사람의 말을 상징한다.
바벨탑. 김승영의 2023년 작. 소리, 특히 사람의 말을 상징한다(사진=이상구).

 

상설전시장은 연대기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한다. 문자가 없던 시대, 그림이 그것을 대신했다. 라스코, 알타미라, 천전리 등 세계 곳곳에서 발견한 벽화와 암각화를 한데 모았다. 그 뒤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등장한다. 책이 아니라 커다란 돌덩이에 새겼다. 기원전 3천 년 무렵 등장한 쐐기문자 시절의 대표적 유물이다. 쐐기문자란 말 그대로 쐐기처럼 생긴 선으로 구성된다. 그 이전의 상형문자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 보인다. 그걸 해석해 낸 후세들의 노력이 참으로 가상했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서인 파피루스 에버스도 눈에 띈다. 모두 875개나 되는 처방과 치료법이 두루마리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 애정은 유명하다. 석관에도, 부장품에도 망자의 이력과 애도의 글을 알알이 새겨 넣었다. 이집트 문자를 특별히 성각(聖刻)문자로 부르는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마야의 문자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드레스덴 문서는 신관들이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한 일종의 주술서다. 책이라기보다는 화첩 같다. 기원전 6세기에 발명된 것으로 알려진 라틴문자는 알파벳의 원형이다. 한 개의 문자가 하나의 음을 표시한다.

 

드레스덴 문서. 마야문자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그림에 가깝다. 드레스덴 문서는 일종의 주술서다(이상구 제공).
드레스덴 문서. 마야문자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그림에 가깝다. 드레스덴 문서는 일종의 주술서다(이상구 제공).

 

아람어는 고대 근동의 언어이자 문자다. 기원전 6세기 경, 당시의 초강대국 페르시아가 세계 공용어로 선포하기도 했다. 동방세계로 전파되어 히브리 문자나 아랍문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인도와 동남아 등에도 전파되었다. 인더스 문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고대 태국의 수코타이 왕조의 3대 람캄행 왕의 비문이 전시되어 있다. 수코타이 시대에는 역사를 돌에 새겼다. 비문 속의 역사란 별칭은 그래서 붙여졌다. 수코타이 문자는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형태다. 그런데 다 비슷해 보인다. 역시 어렵다.

 

가장 위대한 문자, 한글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의 전 세계 문자 중 창제 원리를 밝힌 문자다. 그것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이상구 제공).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의 전 세계 문자 중 창제 원리를 밝힌 문자다. 그것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이상구 제공).

 

전시관은 특이하게 지하와 1층 사이에 중층을 두었다. 중층에 오르면 드디어 우리의 한글을 만난다. 안내판에는 한글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의 원리를 밝힌 문자라고 썼다. 그 주장의 증거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유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한글로 쓴 월인석보, 청구영언 등에도 눈길이 간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훈맹정음이 그 다음이다. 이른바 손끝으로 읽는 글이다. 인천출신 송암 박두성이 1926년 창제했으며 모두 63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육필 원고와 함께 훈맹정음 사용법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 전시실의 입구엔 압도적 위용의 인쇄기가 서 있다. 그 유명한 쿠텐베르크 인쇄기다. 문자가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면 인쇄술은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그로 인해 정보의 대량 생산이 가능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극소수 기득권층의 지식과 정보의 독점시대는 인쇄기로 인해 막을 내려야 했다. 1454년 최초로 인쇄된 여호수아서는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자타공인 우리 조상은 가장 선진적인 인쇄술을 보유했던 민족이다. 제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을 보면 그 자부심에 흠씬 젖게 마련이다.

 

쿠텐베르크 인쇄기. 1450년 경 최초로 발명 된 인쇄기. 오늘날 이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이것에서 시작됐다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이상구 제공).
쿠텐베르크 인쇄기. 1450년 경 최초로 발명 된 인쇄기. 오늘날 이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이것에서 시작됐다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사진=이상구).

 

인쇄의 시대를 지나면 매체와 서체다. 매체란 문자를 쓰기 위한 물건이나 수단을 이른다. 선조들은 진흙, 바위, 뼈 등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오늘날 펜의 원형이 된 1700년대의 페너나라얌등도 흥미롭다. 글자 쓰는 기계도 등장한다. 언더우드 타자기에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IBM 컴퓨터까지 나란히 전시되어 문자기계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서체는 문자의 예술적 승화다. 많은 나라와 민족이 문자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아랍문자로 장식된 우동 그릇은 화려함의 극치다.

전시의 대단원은 다시 그림이다. 그림에서 진화된 문자가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는 역설의 역사다. 이모티콘과 픽토리얼 등이 문자를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그 모두가 디지털 매체의 산물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대변혁이 기반이 됐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쇄술과 종이는 점차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박물관이 만든 안내 책자에는 기술기반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자는 사라질 것이며 모든 인류가 사용하는 세계 문자가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실려 있다. 과연 그럴까.

 

1% 아쉬운 대목

1층에 있는 기획전시실에서는 긴 글 주의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말 그대로 되도록 짧은 글, 아예 문자 대신 그림이나 기호, 영상 따위로 소통하는 현대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전시다. 어찌 보면 상설전시관의 마지막 섹션을 장식하고 있는 지서(地書)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기획전시는 그 말미에 다시 문자의 운명을 묻는다. 기능을 잃고 점차 사라질 것인가, 오히려 더욱 확장될 것인가. 기획전시실 맞은편에 있는 어린이 체험실에서는 께비와 함께 떠나는 문자여행이 열리고 있다.

2층엔 센트럴 파크 쪽으로 커다란 창을 낸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 아메리카노 3,800원 바닐라 라떼가 4천원이다. 카페 바깥은 야외전시장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상을 한 담벼락이 특이하다. 박물관 건물을 핵심적으로 상징하는 페이지스(Pages). 야외전시장에서는 공명(Walking into Resonance)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문자와 인간이 돌, , 물 등을 통해 회전하고 마찰하고 반사하고 진동하며 공명하는 감각을 표현했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유명한 와이즈건축의 작품이라고 한다.

 

공명(Walking into Resonance),전(展). 2층 야외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빛으로 새긴 감각'이다(이상구 제공).
공명(Walking into Resonance),전(展). 2층 야외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빛으로 새긴 감각'이다(사진=이상구).

 

기념품 매점도 있다. 핸드폰 케이스부터 머그컵까지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판다. 강당과 학습실, 세미나실까지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 놓았다. 개관 초기라 그런지 박물관이 기획한 자체 프로그램이 없는 건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박물관은 시민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생활 SOC이자 사회적 앵커시설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도 읽고, 시민들의 교양과 지식의 저변을 넓혀주는 기능을 다해야 한다. 다채로운 기획프로그램과 강좌 등을 만들어 더 많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박물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문자는 영원하다

너무 흔해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들이 있다. , 공기, 사람 등. 문자도 그 중 하나다. 둘러보면 우리 사는 세상엔 문자 천지다. 하지만 우린 평소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문자박물관은 그걸 새삼 일깨워준다. 특히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난해하고 복잡한 다른 문자들에 비하면 참으로 쉽고 간단하다. 28개에 불과한 기호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없지 않은가. 그런 거룩한 유산은 지키고 가꾸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문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대문자 관의 한쪽 벽엔 비쏘툰산의 절벽에 새겨진 부조가 걸려 있다. 그 옆 벽면에는 비문의 원문과 한글 해석본이 비춰지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왕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문자가 처한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인지, 비문의 마지막은 내가 기록한 것이니 그대가 사는 동안 이것을 보존하여라로 맺음 한다. 우리의 세종대왕도 같은 심정이시리라. 어떻게 만든 한글인가. 그런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신비하고 놀라운 문자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문자박물관으로 가자. 게다가 아직까진 무료입장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안내

 

오시는 길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17(센트럴파크역 3번 출구)

관람시간

10~18(마지막 입장 1730)

휴관일

월요일, 11, 설날 추석 당일

입장료

무료

문의전화

032-29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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