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의 비밀과 고급식당에서의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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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의 비밀과 고급식당에서의 프로포즈
  • 최원영
  • 승인 2024.03.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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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48화

 

초심을 잃지 않으면 사랑도 깊어집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짜증이 날 때마다 화를 내기보다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소중한 설렘과 기쁨을 떠올려보는 겁니다. 저 사람을 만난 것이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던 그 순간을 말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어느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닷가에 한 소년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보며 모래밭에 앉아있다. 엄마가 너무 보고프다. 벌써 3년째다. 가끔 찾아오겠다던 엄마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새 기다림과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봄방학이 끝나던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부터 봄비가 내렸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갔다. 저녁이 되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와 아빠는 오늘 법원에 가서 법적으로 헤어졌단다. 이제 아빠하고 살아라.”

소년은 모래밭에 선을 긋는다. 파도가 그걸 없애면 다시 그렸다. 보름달이 떴다. 보름달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원을 어떻게 그리는지 몰랐다. 그래서 직선만 그렸다. 그때 아빠가 등 뒤에서 말하신다.

“얘야, 동그라미를 그리려면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단다.”

그때 소년은 깨달았다.

‘아, 사랑도 이런 거구나. 사랑하던 첫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사랑의 원을 그릴 수 있는 거구나. 처음과 끝이 서로 만나야 진정 사랑을 완성할 수 있구나.’

 

아름다운 글입니다. 동그라미는 원래 완전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처음과 끝이 서로 만나야만 한다는, 그러려면 처음 만났을 때의 순수했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통찰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마음을 가꾸어주는 작은 이야기》(이도환)라는 책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사랑을 나누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카페의 창가 테이블이다. 혼자 앉아 외롭게 식사하는 중년 부인이 있다. 손님들은 그녀를 보며 저렇게 멋진 여자가 왜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을까, 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쪽 테이블에도 역시 혼자 식사하는 멋진 중년 신사가 보인다. 그는 조용히 웨이터를 부르더니 메모 하나를 건네준다. 정중히 받은 웨이터는 곧바로 혼자 식사하는 그 여인에게 가더니 그녀에게 메모를 전한다. 여인은 메모를 받아보지만 이내 접어서 탁자 끝에 밀어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사를 계속한다.

식사를 마친 신사는 그 여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간다. 중년 신사는 여인에게 상체를 굽혀 뭔가 속삭이더니 곧 옆자리에 앉는다. 드디어 여인이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신사도 조용히 일어나 그녀를 따라 나란히 밖으로 나간다.

이제까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손님이 웨이터에게 농담하듯 물었다.

“이런 고급식당에도 저런 일이 있나요?”

“아닙니다. 손님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손님이 방금 보신 것을 저는 26년째 계속 보고 있습니다.”

“26년이나요?”

“네. 혼자 앉아 각자 식사를 하시던 두 분은 26년 전, 방금 손님이 보신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처음 여기서 만났는데, 나중에 결혼하셨어요. 그리고 해마다 같은 날이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이곳을 찾아와 처음 만났던 그때의 상황을 재현한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부부입니다. 살다 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그때마다 ‘나’의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곤 할 텐데, 저 부부는 그럴 때마다 처음 만난 그 날을 떠올렸을 것이고,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만이라도 그곳에 가서 26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벅찬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서로는 서로에게 말할 겁니다. “여보, 사랑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쌓였던 불만과 불평들을 모두 불태워버렸을 겁니다.

동그라미를 그리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듯이 우리네 사랑 역시 힘겨울 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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