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푸르게 피어난 행복들, 계양산 장미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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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푸르게 피어난 행복들, 계양산 장미원에서
  • 유광식
  • 승인 2024.06.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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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29) 계양산 장미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계양산 장미원 전경, 2024ⓒ유광식
계양산 장미원 전경, 2024ⓒ유광식
계양산 장미원 앞 산책로, 2024ⓒ유광식
계양산 장미원 앞 산책로, 2024ⓒ유광식

 

기온이 상승하는 6월이 왔다. 매년 그랬던 것 같지만, 올 여름은 이상기후 탓으로 보다 뜨거울 것이라 한다. 달 뒷면에 중국의 우주선이 착륙했다는 소식은 설렘보다는 신비 하나가 파괴되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주택 앞 쓰레기도 문제인데 우주에도 쓰레기라니. 며칠 전에는 요염한 우주선 모양의 오물 풍선이 하늘에서 내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정복의 마음을 피워 올리기보다는, 두고두고 볼 장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결심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지러운 마음을 돌돌 말아 계양산으로 향했다. 

 

장미원을 수놓은 장미, 2024ⓒ유광식
장미원을 수놓은 장미, 2024ⓒ유광식
장미원을 수놓은 장미, 2024ⓒ유광식
장미원을 수놓은 장미, 2024ⓒ유광식

 

인천의 명산인 계양산(395m)은 외출하거나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바라보는 등대 같은 산이다. 인천 어디에서든 계양산을 가늠할 수 있기에 큰 위안으로 자리한다. 산 정상의 대기 상태로 그날의 기상 상황을 살피기도 한다. 그 자락의 징매이고개 옆에는 숨겨진 정원이 있다. 볕 잘 드는 비탈면에 심어진 수만 송이 장미들과 수만 송이 시민의 미소가 핀 장미원이다. 평일 오후라서 얼핏 보기에는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주차로 애를 먹었다. 부대시설을 새로 정비했다고는 하지만 좁은 골목길에 주차 면수도 많지 않다. 등산 및 공원 방문객 차량으로 주차장은 평일임에도 숨이 꽉 찬다. 

 

주의 표지판(모두가 자연 친구들), 2024ⓒ유광식
주의 표지판(모두가 자연 친구들), 2024ⓒ유광식
장미원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는 방문객, 2024ⓒ유광식
장미원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는 방문객, 2024ⓒ유광식

 

장미 공원에 오르니 막힌 숨이 탁 뚫린다. 많은 사람들이 장미밭을 거닐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군데군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한정된 장소에 장미를 어마어마하게 심어둔 모습에, 감상을 위한 식재라기에는 지나치게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계양산 장미원의 특징 중 하나라면 장미원과 계양문화회관까지 연결된 넓은 시멘트길(왜 생겼는지 궁금한)이 아닐까 싶다. 느티나무 가지가 숲 터널을 만들고,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기가 압권이다. 자연이 주는, 아니 계양산이 무얼 바라지도 않고 덥석 안겨주는 마음 같아서 어린아이처럼 좋았다. 길 따라 큰 평상이 여러 개 자리하고 있어서 한여름 숲 피서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장미원에 오른 방문객들, 2024ⓒ유광식
장미원에 오른 방문객들, 2024ⓒ유광식
장미원, 2024ⓒ유광식
장미원, 2024ⓒ유광식

 

장미원 내 실버카페는 차 한 잔 마시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때 계양도호부 부사였던 이규보의 시비도 있어 계양의 내력을 잘 보여준다. 장미원에서 출발하면 계양산 둘레길을 2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다니 시도해 볼 만 하다. 장미원은 경명대로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 곳곳의 벤치에서 저마다의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 나들이 온 아주머니들은 캠핑의자까지 챙겨와 정자 하나를 세놓았다. 집에서 싸 온 음식을 내어놓고 새들보다 바쁘게 지저귀고 계셨다. 한편 커다란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가 싸우는 가운데, 토끼가 심판을 보는 모습에 엉뚱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  

 

이규보선생 시비, 2024ⓒ유광식
이규보선생 시비, 2024ⓒ유광식
토끼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조형물, 2024ⓒ유광식
토끼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조형물, 2024ⓒ유광식
실버카페가 바라다보이는 장미원, 2024ⓒ김주혜
실버카페가 바라다보이는 장미원, 2024ⓒ김주혜

 

시멘트길은 1991년쯤에 포장된 걸로 보이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장미원과 계양문화회관을 잇는 오르락내리락 숲 터널(시멘트길)을 걸으면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히 정돈되는 기분이다. 사유의 숲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2000년대 초반, 한 번은 지인의 가족과 시멘트길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길 반대편으로 가지 않아 무엇이 있는지 몰랐는데, 이후 그곳에 장미원이 조성되었다. 길을 걸으니 옛 추억이 떠오르며 지금은 뜸해진 그 가족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계양산 정상에서 업고 내려오기도 했던 첫째 아이가 어느덧 스무 살 턱을 훌쩍 넘었을 것이다.

 

시멘트길 오르막에서, 2024ⓒ김주혜
시멘트길 오르막에서, 2024ⓒ김주혜
시멘트길 내리막에서, 2024ⓒ김주혜
시멘트길 내리막에서, 2024ⓒ김주혜

 

장미원 아래에는 수도원과 수녀원, 복지관도 자리한다. 특히 수녀원에서는 빵을 만들어 인근 로컬푸드 직매장에 선보이기도 한다. 모르고 있던 연결이 뜬금없이 들추어지는 걸 보면, 알지 못할 뿐이지 꽤 복잡하게 이어진 것이 삶이겠구나 싶다. 최근 북부권 문화예술회관 건립 후보지로 계양구와 서구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부디 문화예술의 녹음이 우거질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정해졌으면 좋겠다. 계양문화회관을 돌아본 후, 되돌아오는 길은 터널 위쪽에 자리한 무장애 나눔길을 이용했다. 좀 더 가까이 숲을 마주하며 걷다 보니 땀방울도 나고 개운함도 알알이 박힌다.

 

계양문화회관, 2024ⓒ유광식
계양문화회관, 2024ⓒ유광식
계양산 무장애 나눔길, 2024ⓒ유광식
계양산 무장애 나눔길, 2024ⓒ유광식

 

기타를 맨 한 사람이 장미원 방향으로 걷는다. 이윽고 어느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가 달린다. 계양문화회관 쪽은 막다른 길이라 다시 되돌아 나간다. 처음이었나 보다.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있는 소에게 노동요라도 들려주는 듯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계신 아저씨, 아까 보았던 그 분이었다. 장미꽃 못지않게 만개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휴식이자 생명이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도시를 잠시 주차한 후, 장밋빛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다가올 더위에 불쾌해하지 말고 올여름을 시원하게 일구어 가면 좋겠다. 가까운 곳에 삶의 행복이 활짝 피어 있다.      

 

장미원 입구 표석, 2024ⓒ유광식 
장미원 입구 표석, 2024ⓒ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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