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에서 드러난 '위험의 이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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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에서 드러난 '위험의 이주화'
  • 허진구
  • 승인 2024.07.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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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허진구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불법파견과 위험의 이주화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아리셀’ 리튬 배터리 제조 작업장 내 적치한 리튬 배터리(1차 전지) 포장팩에서 원인을 알수 없는 연쇄적인 폭열·폭발로 인한 화재로 해당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22명원 전원이 사망(유독가스에 질식)하였고 폭발소리를 듣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온 연구소장 역시 질식으로 사망하였다.

이 화재사고로 인하여 23명이 사망하고 2명은 중상 6명은 경상을 입어 총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사망자수만 23명에 달하는 중대재해이자 참사였다. 언론은 앞다투어 위 참사에 대해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언로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리셀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103명 중 정직원은 50명 나머지 53명은 이주노동자들 이었다. 근무하던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이 이주노동자이며 재해를 당한 사망자 23명 중 17명은 중국인 동포, 나머지 1명은 라오스 국적의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나머지 5명은 한국인). 사망자 중 무려 18명이 이주노동자였던 것이다.

 

아리셀과 메이셀..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고용관계

언론의 또다른 관심은 아리셀과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고용관계였다. 사망자 23명 중 아리셀 소속은 3명에 불과하고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한 나머지 20명은 ‘메이셀’이라고 하는 회사 소속이었다.

아리셀과 메이셀이라는 두회사는 무슨 관계일까? 참사 직후 아리셀측은 메이셀과 도급계약을 맺었다고 이야기했으나 언론보도상의 메이셀 관계자에 따르면 아리셀은 지난 4월까지는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라는 회사로부터, 5월부터는 메이셀로부터 이주노동자들을 공급받아 왔다고 한다.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을 공급해온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은 사업목적을 제조업과 부대사업으로 사업자 등록 및 법인등기를 하고 있으며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업으로 등록을 하거나 파견법상 근로자파견 허가를 받은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은 실제 사무실없이 인터넷(외국인 구인·구직 포털)으로 구인공고를 내고 인력을 모집하여 메이셀에 이주노동자들을 공급해 온 것으로 보인다.

관할 노동청 브리핑에 따르면 아리셀과 메이셀간 도급계약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체는 없지만 서류상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의 사무실 주소는 각각 아리셀의 모기업인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주소와 동일하다는 사실 역시 밝혀졌다.

메이셀측 관계자는 “우리는 파견 수수료만 받고 노동자들을 파견보냈을뿐 작업지시를 한적도 없고 노동자들 얼굴도 모른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결국 위와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보면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은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하청업체로 위장해 아리셀 등에 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이른바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다시 말하면 메이셀은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아리셀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하며 아리셀과 진정한 도급관계(원·하청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셀과 재해 노동자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재해로 사망한 중국인 노동자 A씨는 아리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나머지 재해노동자들의 경우 아리셀과 명시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아리셀과 메이셀의 관계, 아리셀이 재해노동자들을 관리 및 통제(업무지시 등)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아리셀이 재해노동자들과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실질적인 사용자이므로 아리셀과 재해노동자들 사이에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아리셀은 메이셀과 위장 도급형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파견받아 사용하였으므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 따라서 아리셀은 파견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물론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메이셀로부터 파견받은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로서 노동관계 법령을 준수하고 이를 이행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법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에서 위험의 이주화로

노동계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위험의 외주화란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외주화는 원청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고 비용문제 등을 이유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안전과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에 있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 하청업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사업장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에 그대로 방치된다.

이제는 이러한 위험이 내국인 고용이 어려운 영세 및 소규모 사업장에 도급,파견 등의 형태로 간접고용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위험의 이주화’라고 한다. 이번 아리셀 참사는 그간 지적되었던 위험의 이주화가 가시화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안전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는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만이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의미하는데,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권리로서 외국인에게도 인정되며, 건강한 작업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주 노동자들도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할 수 있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유해·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영세사업장 및 일정규모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들이 스스로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구축 내지 체계를 갖출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위험의 이주화 방지를 위한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입법조치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아리셀 참사가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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