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권리
상태바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권리
  • 김석중
  • 승인 2012.03.30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강칼럼] 김석중 / 평화의료생협 평화의원 원장


평화의료생협에서 올해부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건강관리를 위한 가정간호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3월초 첫 번째 대상자에게 연락이 왔다. 위로 딸 셋, 막내가 아들인데 중증 장애가 있다고 한다. 요즘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들을 많이 바라신 걸까? 그런데 고대하던 아들에게 장애가 있다니!

계양구 ○○동. 논길을 따라 도착한 허름한 단층집. 집으로 들어서니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맞아 주셨다. 병원에 연락을 주신 분으로 장애아의 엄마라고 한다. "아이가 11살이라는데, 늦은 나이에 분만을 하신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방에는 11살이라기에는 너무나 작은, 채 20kg이 안될 것 같은 아이가 누워 있었다. 항문이 없어 장루를 가지고 있고, 골반형성이 되지 않아 앉을 수도 없으며, 청각과 시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수두증이 심해 정상적인 뇌조직이 별루 남아 있지 않고, 씹지를 못해 아직도 분유를 먹고 있었다.

"아이를 몇 살에 낳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추운 겨울날 문밖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데려다 키운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아이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고, 바로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병원에서는 이대로 두면 아이의 생명이 위독하니 아이를 살릴지 말지 결정하라고 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는 출생증명과 보호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이 엄마는 고민 끝에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그 후 11년간 안 다녀본 병원이 없다고 한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의료급여를 받을 조건은 아니어서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친자식도 아닌 중증의 장애를 가진 업둥이를 11년간이나 키워 오며 느꼈던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힘겨운 삶에 찌든, 누군가를 원망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느날 문득 자기에게 와준 천사와 같은 아이(아주머니 표현에 의하면 '우리집 복덩이')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단한 진찰과 장루관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정기적으로 가정간호를 받기로 했다. 비록 아들에게 가정간호가 특별한 도움이 되지는 못 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이 아이에게 아니 아주머니에게 그래도 누군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유지는 사회적 책임이며, 구성원들의 건강을 자유시장 질서에 맡기는 것보다는 국가나 사회가 최대한의 역할을 수행해아 한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동의해야 하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의료와 복지가 가야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많은 사람이 보편적 복지를 외치고 있다. 올해 있을 두 번의 선거가 보편적 복지를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어느 선배의 넋두리가 생각난다. 자신이 죽은 후 홀로 남게 될 아들이 이 사회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가끔 자신보다 아들이 먼저 죽기를 바라는 못된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고 한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가 남겨진 아이를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죽을 수 있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