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준의 마음성형]
[황원준의 마음성형] 40대 초반의 젊은 주부가 동네 가까운 시장에 갔다가 집을 찾지 못하고 1시간 남짓 헤매다가 집에 귀가하였다. 깜짝 놀란 주부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 신경외과에 진료하고 뇌 손상 여부를 알아보려고 뇌자기공명촬영(Brain MRI) 등 다양한 뇌 검사(Brain CT, Brain MRA, PET 등)를 검진 받았다. 이상이 없다는 결과에 오히려 믿어지지 않아 다른 여러 병원을 방문하여 수회에 걸쳐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정상(within normal limit)이었다. 많은 경제적 손실과 시간적 허비를 하고 있던 차에 혹 스트레스 또는 심인성(psychogenic)은 아닌지 정신건강의학과를 의뢰 받고 필자의 병원에 방문하였다.
현대인들에게 건망증은 자주 경험하는 문제이다 눈뜨면 직장에 늦을세라 서둘러 출근하고 직장 내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업무 처리에 정신이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전철에서 졸다가 목적지를 놓치기도 한다. 기억이란 외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보를 뇌에서 받아 들이고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에 꺼내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기억력 저하나 건망증이 생길 수 있다.
진료실에서 40-50대 중년들이 자주 호소하는 증상이 건망증이다. 요즘은 20대에서도, 드물게 10대에서 건망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손에 쥐고 있는 차 열쇠를 찾는다든가, 금방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물컵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데 혹시 치매가 아닌지 진료실을 찾는다.
치매에서 오는 기억력 저하와 건망증은 분명히 다르다. 치매는 여러 원인에 의한 뇌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기질성 뇌증후군(organic brain syndrome)의 질환이며, 건망증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뇌 손상이 없이도 우울증으로 인한 기억력 저하가 올 수는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치매는 자신이 기억력이 저하된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을 모르고, 오히려 가족들의 걱정이 더 크다. 가스 불에 그릇을 올려놓고도 잊어버려 화재나 인명 손상의 위험성이 있다. 초기에는 건망증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금했던 행동들을 잘 잊어버리는 단기기억은 물론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장기기억도 광범위하게 손상된다. 기억력 상실로 인하여 한 얘기를 반복하고 엉뚱한 얘기해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해졌다고 느끼게 된다.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지남력도 손상되어 저녁 식사를 하고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전반적인 판단력도 손상되어 어른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퇴행 행동을 한다. 대부분 갑작스럽게 발병하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인다.
이에 반해 건망증은 스스로 잊어버린 사실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며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다. 일상 생활에서 어느 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잊어 버린다. 지남력이나 현실 판단능력의 손상이 없는 것이 치매와 다른 점이다.
건망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복잡하고 바쁜 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다. 일에 너무 집착하여 주의력 및 집중력 감퇴로 건망증이 온다. 다음은 성격적으로 너무 완벽하고 꼼꼼하고 세심한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갈등이 많은 사람이다. 부부 갈등, 고부간의 갈등, 직장 동료간의 갈등 등이 원인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갈등이 있는 사람은 직장동료나 후배하고는 잘 지내는데, 상사와는 불화가 잘 생길 수 있다. 상사가 시킨 일을 기억하지 못하여 일을 그릇치기도 한다. 즉 간접적인 방법(passive-aggressive)으로 상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건망증은 치료될 수 있다. 심리적 갈등이나 정서적 불안 등의 원인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경우는 환경을 바꾸어 보거나 같은 환경에서도 관심을 다른 부분에 쏟아보는 것도 좋다. 술이나 담배 등은 일시적인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오히려 기억력이 저하시킨다. 자신에 맞는 취미 생활로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게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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