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가 갖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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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가 갖는 힘
  • 양준호
  • 승인 2010.04.2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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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양준호 (인천대 교수 / 경제학 )

필자는 인천에 온 뒤로 지역화폐가 활성화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이는 지역화폐가 잘 되고 있는 곳 치고 경제가 침체되어 있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인천에 오니 지역경제에 대해 이렇다 할 이론적 대안을 내놓는 선배 교수님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든 내가 세금내고 있는 인천의 경제가 잘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과 인천대학교에 근무하기에 인천에 적용할 수 있는 모범 사례 정도는 소개해야겠다는 내 나름의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한 것이기도 하다. 또 시니어 교수가 아닌 내가 인천 지역경제를 위해 어떤 고상한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사례를 많이 소개하는 것이 건방지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역을 위한 애절하고도 내 나름대로 처신을 위한 철학(?)을 동기로 ‘지역화폐 여행’을 취미로 삼은 셈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인천 사람들과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는 욕심을 먼저 밝히면서, 인천 언론 여기저기서 거론했던, 지역화폐가 갖는 힘에 대한 얘기를 여기서도 또 한 번 늘어놓고자 한다. 

 

2007년도 여름에 일본 에히메현에 있는 야와타하마(八幡浜)시의 지역화폐 유통실험을 보고 왔다. 이 유통실험을 주관한 단체는 금융의 공공성과 재래시장 보호 등을 강조하는 시민사회단체도 아닌, 이 지역의 젊은 사업가들로 구성된 청년회의소였다. 지역화폐 도입을 위한 노력이 법정화폐에 비판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벌이는 무슨 ‘붉은’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 이 사례를 통해 명확해졌으리라 본다. 야와타하마시 청년회의소가 건 현수막에 쓰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시민의 자립적 대응 수단, 지역화폐’라는 글은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왜냐하면 ‘지역화폐’ 개념이 폭 넓게 대중화하여 있다는 점이 인천의 사정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리라.

지방분권이 지상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지역화폐’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아래서 지역사회 재생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자립형 지역개발을 위한 수단이다. 이는 지금 세계의 수많은 도시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지역개발을 위한 유력한 방법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지역화폐의 형태나 유통방식은 그 목적이나 규모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는 2000개 이상의 지역화폐가 유통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도입되고 있다. 일본만 해도 약 300개의 지역화폐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역화폐 또는 지역통화는 ‘비시장적 거래(시장경제 시스템 하에서 가격이 책정되지 않은 자선활동 등의 행위)’만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 머니(Community Money)형'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 역시 교환대상으로 설정하는 ’경제활성화형‘으로 크게 구분된다. 당시 야와타하마시 청년회의소가 유통실험을 시도한 지역화폐는 이전까지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다지 많이 도입하지 않았던 ’경제활성화형‘ 지역화폐였다.   

야와타하마시의 사람들은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고, 또 전철과 같은 대중 교통수단이 확충된 이후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자 시내 상점가보다는 시외에서 소비하는 경향이 강했다. 조금만 시외로 멀리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식사도 하고 쇼핑도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지역 내 소비수요가 교외로 빠져나가기 쉬운 야와타하마시에서 지역 내에서만 유통될 수 있는 ‘돈’을 매개로 사람들에게 지역 내 자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또 이렇게 해서 지역 내 상점들에 대한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지상과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이 지역의 사정으로 인해 시민단체는 물론이거와 주로 사업가들로 구성된 청년회의소 멤버들 역시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 내 경제순환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에히메 대학 한 연구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유통실험을 거치고 본격적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하게 되었다. 2008년 이후로는 이 지역에서 단순히 지역화폐의 지역 내 소비 진작 효과뿐만 아니라 엔화만이 유통되는 단일 시장경제 하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사업자 간 교류에서부터 서로 다른 업종 및 산업 간 새로운 교류와 연대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지역경제에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영혁신과 신규사업 창출을 촉진하는 효과까지 보이고 있다. 또 지금은 자립형 지역개발 활동이나 지역 내 사회공헌 사업마저 연결한 지역화폐 순환 방식 역시 디자인되고 있어, 지역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참가의식과 주체의식을 환기시킬 정도이다. 사실 지역화폐의 이 같은 추가적 파급효과는 야와타하마시 청년회의소 멤버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지역화폐의 기대효과나 가능성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이 중심이었던 야와타하마시가 순환형의 내부 지역화폐를 활용하여 지역의 농업 및 어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밀감과 생선의 지방’으로 불린 야와타하마시는 2007년도까지만 해도 주요 산업이었던 농업과 어업이 크게 침체하여 당연히 시내 상업 역시 불황의 파급으로 위기 국면에 직면해 시 전체의 경제 활력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또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입지환경으로 인해, 1차 산업에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서, 2002년도에는 유명 잡지 ‘닛케이비즈니스’가 발간한 ‘일본의 쇠퇴도시 랭킹’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힘든 처지였다. 농업이나 어업이 쇠퇴하는 원인은 산업구조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특정화할 수는 없으나,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생산자들은 주로 수익을 시장거래(판매)에서 적용되는 시세에만 의존하여 얻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즉 이들 스스로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계획적인 투자, 생산, 매출확보가 매우 곤란한 것이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생산자들의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야와타하마시의 경우, 주요 산업이 소비지에서의 시세가 수익을 좌우하는 농업과 어업이었기 때문에 물건을 사는 사람들 쪽 시장의 소비동향으로부터 지역경제가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야와타하마시에서 생산되는 생선이나 밀감을 소비하는 마츠야마시와 같은 에히메현 인근 대도시 역시 지역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니, 결국  이 곳의 경제사정 역시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던 야와타하마시가 지역화폐를 본격적으로 유통하기 시작한 이후로 빠른 속도로 경제를 회복시키고 있다. 이곳 시민들은 농업과 어업 경영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물건을 사는 사람, 즉 소비자의 수요를 그들의 생산활동에 반영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또 지역사회 전체가 지역의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공동시스템의 구축 및 지역의 산업 간 강한 연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불가결하다는 점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야와타하마시는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나 ‘산소협력(産消協力)’ 운동과 같은, 다른 곳에서도 오랜 전부터 시도되어 온 대응이 아니라 바로 지역화폐를 도입하여 경제 활성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농업과 어업은 생산활동이 늘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즉 농번기가 특정 시즌에 집중되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농촌에서는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하여 봉사자나 연수생 등을 모집하여 농업생산을 돕게 하는 경우가 많다. 야와타하마시는 바로 이처럼 농업생산에 대한 노동지원의 대가를 지역화폐로 지불하였는데, 이로 인해 농업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고용주와 고용자와 같은, 형식적이고도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신뢰에 의거한 매우 따뜻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봉사자나 연수생 등의 모집방법에 따라서는 다양한 유관 기관과 단체, 그리고 교육기관 등의 지원마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농촌의 생산을 돕는 것을 매개로 주민이 하나가 되어 주요산업인 농업과 어업을 살려낼 수 있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함과 동시에, 그 도움의 대가는 그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받기 때문에 그 지역의 상품과 서비스 순환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농번기의 농촌 일손 부족 문제도 해결했고, 나아가 농업과 그 지역의 상점가 등과 같은 다른 산업과의 교류 역시 활성화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지역화폐를 매개로 한 지역 내 서로 다른 업종 및 산업 간 새로운 교류와 연대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이종 산업 간 교류가 지역경제에 매우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창출해낸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또 야와타하마시는 지역화폐를 소액 증권화하여 가까운 장래의 생산물 구입을 위한 권리(상품구매권)로 소비자에게 부여(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1차 산업은 수요(시세)를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매출에 맞는 계획적인 투자가 매우 곤란하다. 그러나 야와타하마시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지역통화를 활용함으로써, 생산자들은 생산에 필요한 경비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농업이 본질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웠던 계획적인 투자 및 경영조차 가능해졌다. 동시에 소비자들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식생활에서 안심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서는 물류기술이 워낙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가까운 지역의 생산자-소비자 관계뿐만 아니라 동경 쪽 수도권 소비자와 야와타하마시 농업 생산자들 간 거래 관계도 구축되고 있다. 나아가 지역화폐는 소액화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수량의 지역통화만을 이용함으로써, 수요에 딱 맞는 거래가 실제로 가능하다.

일본 야와타하마시 지역화폐의 성공사례는 지역화폐의 무한한 가능성과 기대효과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지역화폐와 관련한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구축되는 것도 아니고 또 시민사회와 지자체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 간 협력체제도 필요하다. 지역화폐는 도입된 후에 그 운영과정에서도 지역 전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만, 이를 사전에 협의하고 또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전 주민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역화폐는 본질적으로 ‘시민적인 정책’일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와 지역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거버넌스 주체가 바로 ‘시민’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 많은 시민들의 고민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역화폐의 실험은 이제 더 이상 선택지일 수 없다.

인천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가하는 지역화폐위원회를 구성해 보자. 지역화폐가 법정화폐 시스템을 교란시킨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을 배제한 위원회를 말이다. 지역화폐는 어디까지나 지역개발을 위한 유효한 방법론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 같은 위원회가 인천지역의 여러 환경, 자원, 산업, 나아가 시민사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뒤에, 이러한 특성 조건을 가진 인천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지역화폐는 어떤 것인지를 제안해 보자. 그런 숙고를 거친 뒤에 제안된 지역화폐가 인천에 도입되고 또 운영된다면 이것이 지역경제와 지역개발에 미치는 기대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지역화폐는 인천지역의 여러 사정에 정합적인 형태로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지역화폐위원회에 참가하는 멤버 전원이 그 이념과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공유’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인천의 ‘민주적 지역개발’을 위한 지역화폐 사업의 첫걸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뭏든 올 여름에는 그동안 나 혼자 다닌 ‘지역화폐 여행’에 많은 인천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거대담론을 좋아하거나 중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곧잘 ‘지역’ 자가 붙는 것만으로 이를 예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앙의 큰 연구용역을 받고 있는 이들의 참여는 포기했다. 그러나 계급적 차원의 진보적 운동이 갖는 거대담론적 경직성을, 또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여기며 미시적 지역정책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이들의 참여를 지금부터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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