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품은 넉넉한 쪽빛바다
상태바
가을 햇살 품은 넉넉한 쪽빛바다
  • 문경숙 박주희 인천섬마을기자단
  • 승인 2013.10.31 1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섬마을조사단] 2013년 마지막편 - 덕적도와 소야도를 다녀오다
<소야도, 가을 햇살 품은 넉넉한 쪽빛바다>
글/사진 : 문경숙

언제나 여행은 설레임이 시작이다. 인천섬마을조사단 마지막 일정은 덕적도와 소야도로 정해졌다. 조사단은 팀을 나누어야 했는데 주저 없이 소야도를 선택했다. 가보지 않은 섬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조사단 일행을 태운 배가 덕적도에 닿았다. 소야도 팀은 다시 작은 배로 10여분을 달려 소야도에 닿았다.
 
첫 느낌은 쪽빛 그 자체였다. 왠지 모를 기대감을 안고 마을 공영버스를 타고 소정방 유래 있는 죽전골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섬을 돌아가는 길은 진초록 그대로였다. 섬 전체가 초록과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빨강 파랑 지붕들이 숨바꼭질 하듯 나타났다. 마치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알프스 풍경이 연상되었다.
소정방 언덕 정자에서 짐을 풀고 하나둘 꺼내 놓으니 왕후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성찬이 차려졌다. 쪽빛 바다, 하얀 뭉게구름, 가슴을 씻겨주는 상큼한 바람 따사로운 햇살. 모든 게 우릴 반겨주는 그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점심을 마치고 본격적인 마을 조사에 나섰다.
길을 걷는데 우릴 반기며 젊은 마을 주민이 살갑게 인사를 한다. 덕분에 급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행운도 얻었다. 엄마와 아이들의 미소는 소야도의 쪽빛만큼이나 싱그럽고 상큼했다. 섬 전체에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해 보이는 것이 다른 섬과 다르게 다가왔다. 버스정류장에 붙여 있는 날짜마다 다른 버스와 배편의 시간표를 보고서야 아! 이곳이 섬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소야도의 모세의 기적

사진1.jpg
선촌(큰 마을)앞 가섬과 물푸레섬은 평소에는 물에 잠겨 있지만 썰물 때면 두 섬이 드러나 연결되는데 그 길이가 800m에 달한다.
 
언덕위의 하얀 집

사진2.jpg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을 인터뷰 하는 동안 잠시 틈을 내어 좁다란 골목길을 올랐다. 걸어가는데 언덕 너머에서 비치는 빛이 마치 천상으로 오르는 듯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사진3.jpg

언덕위에 온통 담쟁이덩굴을 몸에 감은 하얀 집,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소야도 성당이 그 곳에 있었다. 성당의 모습은 양팔을 벌려 소야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 듯 했다. 성당 주변을 거니는데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알밤이 밤송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둘러보니 성당앞 주변이 밤나무 천지다. 섬에서 가꾸는 밤나무 단지였다.
메마른 밭이랑에서 연보라빛 도라지꽃 한 송이가 반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쪽빛 바다와 소나무 숲이 마을과 어우러져 그대로 풍경화다. 서둘러 내려오니 일행은 노인회장님 댁으로 이동해 있었다. 노인회장님 댁인 대성민박집으로 가는 길은 내 고향 제주도의 골목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멈춘 그 곳엔 고목의 긴 그림자만이
사진4.jpg

사진5.jpg

자그마한 나무문이 굳게 잠겨 있는 덕적초교 소야분교를 찾았다.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엔 무릎까지 자란 잡초들이 무성했다. 운동장 한쪽엔 철봉과 그네가 놓여 있고 풀숲엔 오래된 축구공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엔 커다란 고목이 오후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학교 곳곳을 둘러보는데 아이들의 흔적은 사라진지 오래고 월요일 아침 마다 조회시 음악이 들렸을 확성기만이 덩그러니 벽에 붙어 있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오르고 내렸을 계단은 칡넝쿨이 자리한지 오래다.
이곳이 문을 닫게 된 결정적인 이야기엔 섬 주민들의 빠듯한 삶의 고뇌가 녹아 있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학교 옥상에 오르니 소야도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꿈을 키웠을 아이들의 꿈도 저 바다처럼 푸르렀으리라 생각하니 못내 아쉬움이 마음에 자리한다.
빨리 내려오라는 일행의 재촉에 서둘러 옥상을 내려 왔다.
 
섬을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평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하신다는 아주머니도 만났다. 짐을 잠깐 들어 드렸을 뿐인데 언제든 자신의 별장에 놀러오라고 하신다. 소야도가 주는 넉넉한 풍경에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곳이다. 버스는 소나무 숲길을 달려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에선 낚시가 한창이고 고깃배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배 위에선 한바탕 이야기가 오가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코앞이 덕적도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를 소야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오간다. 뚜~우 소리를 내며 배가 출발한다. 한 나절의 힐링을 선물했던 소야도의 쪽빛이 점점 멀어져 간다. 이 아름다운 섬을 언제다시 와 볼까?


<사람과 배가가 빼곡했던 섬, 덕적도> 
글/사진 : 박주희

 덕적면은 덕적도, 소야도, 굴업도를 비롯한 유인도 8개, 무인도 34개 등 모두 4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여의도 면적의 4.5배, 1200여명의 인구, 농어가 다수가 민박 등의 관광업을 겸하고 있고 있는 덕적도. 면적이 넓다보니 차를 타고 이동했다.
 
민어파시로 배들이 빼곡했던 북리

사진6.jpg

사진7.jpg
사진8.jpg

조선공으로 일하셨던 강명선(72세)님을 만나기 위한 간 북리. 북리는 과거 ‘파시’로 유명했다. ‘파시’란 어장에서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수확물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연평도가 조기파시로 유명하다면 덕적도는 민어파시로 유명하다. 북리 선착장에 배가 빼꼭히 정박해 있고, 어부와 고객 사이에 고기와 돈이 오가는 모습, 흥정하는 모습 등이 떠오르는 듯하다. 민어파시는 굴업도에서도 성행했지만, 굴업도가 큰 태풍을 만나 어항이 망가지면서 덕적도가 민어파시로 유명해지게 됐다고 강명선님은 전한다. 제2의 인천이라 할 정도로 배와 사람들이 많던 북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샤워실, 휴게실도 설치해두었으며, 창고로 활용되던 건물도 남아있다. 간이 영화관도 있었다 하니 북리가 얼마나 흥했는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북리 성당 옆 연못 위에 있는 사진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민어로 흥했던 북리가, 민어 남획으로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1960년대 파시가 사라졌단다. 금어기가 따로 없다보니 자원이 고갈된 것이다.
 
열여덟 살 때부터 덕적도 조선소에서 일했던 강명선님은 당시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소에서 목수 일을 하면 징용에서 면제되어 많은 이가 목수 일을 했다는 이야기, 일곱 명이 약 세 달에 걸쳐 배 한 척을 만들었고, 그 시가는 현재 1~2억 정도 된다는 것, 한 집에 배를 3~5대 정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목선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일본에서 수입해 왔다는 것, 목선에는 나무 닻을 활용했다는 것, 배를 타기 전에 목욕재계를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 등. 30~40년 전까지는 목선을 만들었지만 이후에 강선, 철선으로 바뀌면서 조선소 일을 그만두고 어업활동을 했다고 한다.
 
강명선님은 과거 성행했던 북리의 자취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농업 관련한 박물관이나 전수방법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알려져 있으나 어업 관련해서 고기 잡는 방법, 그물 치는 방법, 배 만드는 법, 배 다루는 법 등에 대한 방법은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실제 인천에는 170여개의 섬이 있으나 섬 지역 어업문화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곳이 거의 없다. 연평도의 조기박물관, 백령도 심청각이 약간의 역할을 하긴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꼭 건물을 건립하지 않더라도 어업문화를 정리하고 알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꾸려져 가는 으름실 마을공동체
사진9.jpg

과거의 자취를 남겼으면 하는 축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모색하는 단위도 있다. 자립마을구축을 위해 안전행정부 공모사업에 지원해 당선돼 현재 북리 42가구 중 36가구가 으름실 마을공동체 운영에 함께 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산채나물단지’다. 구체적으로는 24km에 달하는 북리 숲 속 양쪽 길에 산채나물이 자랄 수 있도록 손을 좀 대고, 표고버섯 5000주, 느타리버섯을 산 속에 두어 키우는 것이다. 산채나물과 표고버섯은 대대로 덕적도에서 나고 있고 주민들이 재배해 본 것들이다. 그래야 좀 더 자연스럽고 실패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평균나이 70세인 북리 주민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 꾸려나가고 있단다. 마을기업 추진 목적은 삶의 질 향상과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라고 으름실 마을공동체 관계자는 말한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는데, 무언가 일이 진행되다보니 더 많은 주민들이 함께 하게 됐단다. 혹시나 수익이 되지 않더라도 건강한 산채나물을 먹고 마을주민이 건강해 지고, 준비하면서 진행하면서 주민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겠냐고 웃으며 말한다.
 
‘에코 아일랜드’ 태양광 마을
사진10.jpg

북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서포리로 넘어왔다. 서포리는 인천시에서 진행하는 ‘에코 아일랜드’ 사업의 일환으로 태양광이 집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인천시에서 덕적도를 ‘에코 아일랜드’로 지정해 태양광?풍력?조류 발전을 설치하려는 계획이다. 2012년 7월에 서포리 83가구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한 뒤 1년. 석유에너지 사용의 한계를 공감하고, 대안에너지가 부각되고 있는 요즘, 긍정적인 계획과 활동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을주민들의 대안에너지 사용에 대한 뜻에 이해와 공감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전통 어업문화를 정리해 내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축, 마을주민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는 축, 지자체 차원에서 대안에너지 사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축. 이 세 축이 조화롭게 어울려 건강한 덕적도가 되길 바라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