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꽃' - 진실은 꺾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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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꽃' - 진실은 꺾이지 않는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2.09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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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이야기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참가한 김광성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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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2일 폐막된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우리나라 만화가들이 확인한 메시지다. ‘지지 않는 꽃’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작가 19명이 위안부 만화와 애니메이션 25편을 전시하고, 전시회를 찾은 수많은 관람객들로부터 감동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았다. 특별전의 제목 '지지 않는 꽃(I'm the Evidence)'은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일본군 위안부) 내가 그 증거다"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특히 일본 만화계가 ‘지지 않는 꽃’ 기획전을 방해하면서 볼썽사나운 꼴을 보여 더 이슈가 되었다. 12일,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돌아온 김광성 만화가를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22년째 인천서 살고있는 김광성 만화가는 본지 지난해 1월 29일자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번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출품한 ‘나비의 노래’는 어떤 내용인가.
“16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 상처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온 할머니가 수요집회에 참가해 동료들과 일본의 사죄를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100페이지 분량을 그렸는데, 앙굴렘 전시회 때는 솎아서 20페이지만 전시했다. 100페이지 전체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 가려고 하다가, 혹시 생길 불상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만두었다. 일본기자들이 책을 가져가서 문제를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토를 달 수도 있고, 딴지를 걸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아 책 만드는 걸 전시회 이후로 미뤘다. 프랑스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면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책은  없냐?”고 많이 물었는데, 책을 만들어가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아쉽기도 했다.”

프랑스 조직위원회 측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 대신 우리 손을 들어줬다.  
“이제 전시회가 끝났으니까 책을 만들어도 된다. 일본이 위안부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다행히 프랑스 조직위원회 측에서 중심을 잘 잡아줬다. 프랑스 사람들은 인권을 존중하고 혁명정신이 있는 사람들이라, 문제의 진실을 알고 행동할 줄 알더라. 그들이 우리 쪽에 손을 들어준 건, 우리 만화가 쪽에 손을 들어준 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일본에 대해 할 말을 한 것이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리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왜곡하는 일본이 정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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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한국작가 전시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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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함께 참가한 박재동, 이희재 만화가. 맨 오른쪽이 김광성 만화가.

“국제만화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데 50억 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 가운데 일본은 비용의 3분의 1을 댄다고 들었다. 일본 만화 70퍼센트 이상이 유럽으로 출판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프랑스 조직위원회 측에서 그걸 감안하고 진실 쪽으로 손을 들어줬다. 다음에 일본이 지원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다. 개막식 시작 전에 일본 극우단체 한 친구가 뭐라고 하니까 그때 조직위원장이 “Go, go! Get out!”이라고 소리치면서 그들을 쫓아냈다. 참으로 통쾌한 광경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나라 측에서 몇 명 정도가 참여했나.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전시회에는 만화가 19명이 작품을 냈고, 이희재 박재동 백성민 김금숙 등 9명이 전시회에 참석했다. 여성가족부 식구들, 언론사 기자들까지 포함해 모두 61명이 다녀왔다. 6박8일 동안의 여정이었는데, 긴박한 순간도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시골 풍경이 참 독특해서 신기했다. 옛날 돌로 만든 집이 많았는데, 전부 옛날 빌라 3층, 4층짜리가 시골에 참 많더라. 끝없이 펼쳐진 평야, 끝없는 밀밭, 끝없는 포도밭이 보기에 시원했다. 프랑스는 인구 밀도도 높지 않고, 곳곳에서 천혜의 땅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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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는 어떻게 기획되었고, 언제부터 참여하게 되었나.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OECD 회의 참석차 갔다가 프랑스에 갔다가 이야기를 듣고 와서 우리 만화계 측에 알려준 게 지난해 4,5월께였다. 참여작가를 공개적으로 선정했는데, 나도 거기에 선정됐다. 그리고 스토리가 나와야 하니까, 글 작가한테서 9월 초에 스토리가 넘어왔다. 그때부터 11월 말까지 석 달 동안 다른 일은 손대지 않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만화만 꼬박 그렸다. 워낙 민감한 문제라, 이 작품은 자문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을 했다. 동북아재단 관계자들도 있고 위안부 할머니 쪽도 있고, 여성분들이 많았다. 민감한 문제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되도록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건 꾹꾹 누르면서 작업했다.”

작업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직접 만났나.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지만, 생각하다가 접었다. 구술자료집을 쭈욱 훑어보니까 할머니들은 여자 기자들이 다가오면 한맺힌 이야기를 다 하는데, 남자 기자들한테는 속내를 다 까발리기가 힘들다고 하더라. 하루에 25명이 닥쳤는데, 그런 이야기를 오는 사람한테 다 하시면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다. 캐리커처 하러 가자고 했다가 여러 사람이 할머니 앉혀 놓고 이야기하게 만들지 말자, 그래서 말자고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료집을 보니까 민감한 내용이 많았다. 구술 자료도 있고, 일본근대사에 대해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쭈욱 읽어봤다. 만화는 아니더라도 시대가 품고 있는 스토리, 일본과 관계된 이야기가 많았다. 그전부터 사놓은 책을 꺼내서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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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기 전과 작업하면서 달라진 점은 뭐가 있나. 내용 중에 놀랍거나 마음아픈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작업하면서 많이 알게 됐다. 만화 작업을 하려면 더듬이가 예민해진다. 위안부 관련 보도 뉴스도 짤막해도 귀가 쏠리고, 구술 자료집이나 근대사를 보면서도 연관성을 찾게 된다. 구술 자료를 보다가 놀란 게 있다. 쇼킹했다. 성병검사를 하기 위해 침대 같은 나무판을 만들어놓고 눕혀 놓고 검사했다. 15살 여자애들한테 확대수술을 하다니 끔찍했다. 생살을 찢고 절개를 해서 넓히는 수술이다. 분노가 인다. <나비의 노래> 만화 속 인물은 특정인물이 아니다. 자료집을 토대로 동선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할머니들 사례가 많으니까, 실존인물을 다뤄야겠다, 할머니 한 분만 다뤄도 100페이지가 넘는 거다, 참으로 마음 아팠다. 앙굴렘 전시회장에서는 관람객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엄청 충격 받았다. 그들은 책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책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곧 나올 것이다. 지금 구상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일본의 방해 작전 때문에 더 화제가 됐다. 한국에 와보니 사람들 반응이 어떤가.
“이번 전시회는 만화영상위원회에서 주관했다. 사실, 어제 공항에서 깜짝 놀랐다. 우리는 현지에 있으니까 우리나라 상황은 잘 몰랐는데, 사람들을 보고 반향이 엄청난 걸 알았다. 전화도 오고, 전시회 상황은 어땠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 일본이 그러는 바람에 더 이슈가 되고, 뜨거운 감자가 됐다. 아침에 전시회를 총괄한 친구가 전화해서는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출연하자고 했다. 나는 임플란트하려고 이도 뺀 상태라 못 나간다고 했다. 사실, 이번에 위안부 만화를 하게 된 건 할머니들이 계시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좀 주목이 돼야 한다. 방송에 우리가 나갈 게 아니라 할머니들이 조명을 받아야 한다. 방송사 쪽에서 차라리 할머니도 같이 모시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프랑스에 가서 일본 만행을 이야기했고, 진실이 승리한다고 확인했지만, 그보다는 할머니들이 주목받아야 한다. 만화가가 중심이 아니라, 평생 한을 품고 산 할머니들이 주목받아야 한다.”

“지난해 6,7월께 프랑스 앙굴렘 시장이 한국에 한 번 왔었다. 문화부 관계자랑 기자회견을 했다. 조윤선 장관이 이러이러해서 만화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라고 설명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이 앙굴렘 시장한테 질문했더니, 협조하겠다고 했다. 어떤 기자가 시장에게 위안부 상황을 아냐고 물었더니, 처음 듣는다며 모른다고 했다. 어느 나라든 침공했을 때 힘없는 사람들, 즉 여자와 아이들이 피해자가 된다. 우리나라는 위안부라는 특이한 상황이 있고, 13살부터 17살까지 어린 여자 아이들이 중1, 2학년쯤 되는 애들을 성노리개감으로 끌고 간 것이다. 그 사실이 외국 사람들한테는 놀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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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이 많이 보러 왔다. 앙굴렘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고만고만한 건물에서 전시회가 열린 거다. 동네는 정말 잘 꾸며놨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나라 역사지만, 어린 아이들을 노리개감으로 삼은 사실에 충격을 받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한참 생각하면서 말없이 보더라. 기자들 말로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고 나중에 전해주더라.”

전시회 주최 측에서 우리나라 손을 들어준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데 드는 돈 가운데 3분의 1을 일본이 지불한다는데, 프랑스 측에서는 물주의 뜻을 거스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일본 만화계 측에서 계속 주장하는 건, 너희가 한국 정부한테 돈을 받고 일을 하고 여기까지 오고, 장관까지 온 게 아니냐, 순수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곧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만, 다른 나라들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 나라는 없다. 작가가 무슨 돈으로 오겠나. 일본은 그런 걸로 따지기도 하고, 니콜라 피네라는 총괄하는 사람이 일본이 하도 ‘위안부는 없다’를 불어로 영어로 막 갖다 붙이니까 무슨 짓이냐고 막았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거친 사람들로서 어느 게 정의로운지 알았다. 그들은 우리가 진실이고, 일본은 사실을 왜곡해서 만화를 그리니까 오히려 그게 정치적이라고 판단한 거다. 결국 진실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긴다는 걸 보여줬다.”

이번 전시회가 열린 앙굴렘 도시는 어떤 곳인가.
앙굴렘은 인구 4만명이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니까, 앙굴렘이라는 도시는 옛날 때가 묻은 건물이 많았다. 유럽 도시들을 보면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성이 있고, 그 아래도 집들이 쪼르륵 있는 식, 그런 식이었다. 건물 안을 현대식으로 꾸며놓긴 했다. 무엇보다 프랑스 국민들이 하염없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걸 보고 많이 배웠다. 일본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슈가 바로 됐다.”

6박8일 동안의 여정이 피곤했을 것 같다. 힘들지 않은가.
“앙굴렘에서 돌아온 지 하루밖에 안 됐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 파리에서 작품설명회 겸 간담회가 잡혀 있었다. 박재동 화백과 먼저 프랑스에 도착한 것이다. 조윤선 장관도 오기로 했고 아침에 간담회를 하려는데, 프랑스 쪽에서 취소됐다고 알려왔다. 사실, 프랑스에 온 중요한 목적이기도 한데, 일본이 프랑스에 압력을 넣은 거다. 일본은 대회 때마다 재정을 도와주는데, 기자회견을 하면 한국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밝힐 게 아니냐, 전시회에 일본 자기네들이 자금을 대서 하는데, 기자회견을 하면 전시회 자체를 취소시키겠다 하고 나온 거다. 일본 기자들이 포진한 상태여서, 어떤 상태가 벌어질지 프랑스 쪽에선 난감했다. 한국 측에서 연락이 와서, 어떻게 할까 회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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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밀고 나가면 어떤 불상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전시회만 하자고 결정했다. 강행할 입장도 아니고, 취소합시다 하니까 프랑스 쪽에서 우리 쪽한테 고맙다고, 잡음을 일으키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다. 전시회 당일날, 일본이 또‘위안부는 없다’고 하니까 프랑스 쪽에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 피네라는 총괄이면서 아시아 담당이고, 진실이 뭔지 알고 있었다. 전시회 그 과정에서 박수 칠 뻔했다. 그것 때문에 전시회가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했다.”

100페이지 되는 만화책을 빨리 읽고 싶다. 책은 언제쯤 나올까. 또 전시회 다음 기획은 무엇인가.
“책은 서둘러서 깔아야 한다. 큐레이터 총괄 담당한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조선일보에서 한 번 전시회 하자고 연락이 왔고, 국회에 만화를 사랑하는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선일보사나 국회에서 전시회를 할 것 같다. 위안부 기획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중국, 위안부가 설치됐던 싱가포르 등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얘기가 있었다.”

이번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을 다녀와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픽션이 논픽션을 능가하지 못한다. 진실은 훼손한다고 해서 퇴색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반드시 다뤄야 할 문제고 풀어야 할 숙제다. 소명감 같은 걸 느꼈다. 보편적인 자유나 여성 인권이 서로 소통되는 나라에 많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에서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파장이 크다는 걸 느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이런 사람들과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화가로서 긍지를 느꼈다. 일본이 처음부터 예민하니까 괜히 주눅이 든 면이 있었다. 진실은 이기는 건데, 개막일 전부터 긴장되는 일이 많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진실’이라는 핵심 코드가 유럽에서 통한다는 걸 알았다. 우리 생각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것이 많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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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 전시관 입구에 관람객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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