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아이들에게 다양한 꿈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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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아이들에게 다양한 꿈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4.15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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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날 기념 인터뷰③] 인천혜광학교 민선숙 선생님
오는 4월 20일은 제34회 장애인의 날이다.
 
 
유엔(UN)은 1975년 ‘장애인 권리선언’을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만들자’고 선포했다. 이후 전 세계는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지키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고취˝할 목적으로 1981년부터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해왔다.
 
‘어린이 날’이 어린이를 위한 날, ‘어버이 날’이 부모님을 위한 것처럼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위한 날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장애인들은 이 날을 축제처럼 즐기지 못하고 집회와 시위를 하며 힘겨운 싸움을 했다. 정부의 장애인복지정책으로 점점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인천in>은 제34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장애의 아픔을 딛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삶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 듣는 시간을 갖는다.<편집자주>
 
 
 
비가 내렸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시장에 간 엄마가 비를 맞을까 봐, 엄마에게 우산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 몇 대의 차가 지나가고, 이때쯤 길을 건너도 될 거라고 생각한 아이는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여자아이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택시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여자아이를 꽝. 목격자는 여자아이가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사고 이후 바로 실명한 것은 아니었다. 시력은 점점 떨어졌다. 열여덟 살 무렵, 자고 일어났더니 형체는 없고 색깔만 보였다. 어떤 날 아침에는 벽에 비친 햇살만 보였다. 여자아이의 시력은 1.5였다.
 
“사진기로 말하자면 필름이 없는 거예요. 눈의 구조는 카메라하고 같거든요. 카메라는 필름이 없으면 헛방이잖아요. 눈에 상이 맺히면 그 뒤에서 그걸 뇌로 전달해주는 세포가 있는데, 그 망막이 떨어졌대요. 제 병명이 망막박리예요. 그건 한 번 떨어지면 안 붙어요. 수술로도 안 돼요. 의학이 발달해도 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빛만 볼 수 있다. 정안인은 알아차릴 수 없는 밝기, 혹은 눈부심으로 맑은 날과 흐린 날을 구분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그것도 정말 중요하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계단으로 올라갈 때 점점 밝아지는 그 느낌, 그 기분. “오늘 햇볕이 되게 좋잖아요. 그런 건 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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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년째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민선숙 선생님(50). “사실 저 개인에 관한 건 인터뷰할 게 별로 없어요. 
그렇게 굴곡진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단지 남들은 보면서 살고 저는 못 보면서 사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안 보였기 때문에 잘된 걸 수도 있어요. 보였다면 이보다 못한 위치에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안 보였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산 것도 있으니까.” ⓒ 이재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스스로 기특할 때가 있다
 
인천에 맹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혜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는 집에만 있었다. 형제들이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듣거나), 책을 읽거나(읽어주는 걸 듣거나) 했다. 스물둘에 혜광학교에 입학했지만 몸이 아파 3년을 쉬었다. 당시 유행하던 장결핵에 걸렸고, 병원에서는 3일밖에 못 산다고 했지만 기적처럼 살아났다. 스물다섯에 다시 학교에 들어와 중고등 과정을 마쳤다. 대학(대구사범대 특수교육과)은 서른 살에 갔다.
 
민선숙 선생님은 혜광학교 학생들에게 침술과 안마를 가르친다. 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있는 중복장애는 직업교육이 힘들고, 시각장애 학생이나 지적장애가 있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상이다. 수업은 일대일로 진행된다. 직업교육은 고교 과정에만 있으니 3년을 배우는 셈이다.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서 다른 과목에 비해 단위수가 높게 배정돼 있다
 
“예전에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 일곱 살 쌍둥이가 나왔어요. 한 아이는 시각장애가 있고, 한 아이는 정상이었죠.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하면 각각 다른 학교에 입학해야 했고, 부모는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출연 신청을 했대요. 애들이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누군가 시각장애 아이한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물었어요. 아이가 안마소 원장이요, 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그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설사 커서 안마소 원장이 되더라도 그 나이에는 하루하루 꿈이 바뀌잖아요. 이후에 제가 우리학교에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나의 직업 찾기’라고요.”
 
 
시각장애인은 안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 선생님은 고등과정에서 직업교육으로 안마를 배우더라도 초등과정까지는 일반 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이 같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왜 안마만 해야 할까.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물색했다. 도봉구에 시각장애 판사가 있었다. 전혀 볼 수 없는 전맹이었다. 로스쿨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을 판사와 만나게 해줬다. 판사의 조언에 따라 연세대 사회학과 들어갔다. 일반대를 나와 로스쿨에 들어가는 게 이점이 많다고 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는 맹인 개그맨 이동욱을 만났다. 방송국에 데리고 가서 방송하는 모습도 구경했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꿈을 꾸게 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무조건 안마만 해야 한다는 식으로 귀착돼 있으면 너무 서글프잖아요.
 
우리나라에서 마사지는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이 나온다. 1990년대 말 금융 위기 당시 노동부에서 실직자들한테 마사지 교육을 시켰다. 그 인원이 여기저기서 수료증만으로 일했고, 현재는 암묵적으로 불법을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사렛 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졸업생도 있어요.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안마를 해주는 거죠. 우리는 인체의 구조를 배우고 치료하는 거거든요. 작년, 재작년까지 계속 노크한 게 정형외과랑 요양병원이에요. 그리고 기업체. 대기업 위주로요. 기업체는 직원들의 복지후생을 위해서도 괜찮거든요. 구월동 롯데백화점에 저희 아이들이 이료봉사를 가요.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아이들을 직원으로 고용하라는 거죠. 대부분 경증 지체장애를 쓰더라고요. 주차요원 같은 거요. 중증장애는 취업하기가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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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고3 학생들이 인천보훈지청에서 이료봉사 하는 모습. 
“지역사회인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시각장애 안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이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인천혜광학교 제공
 
 
 
더불어 살면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조카애가 어릴 때 같이 살았거든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이불 위에 누워있는 세 살짜리 조카애의 배를 밟은 거예요. 딱 밟았는데 애가 안 울어요. 다빈아, 미안해. 괜찮아요, 고모는 안 보이잖아요. 세 살짜리 애가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며칠 뒤에 그런 상황이 또 생긴 거예요. 제가 밟을 뻔하니까 다빈이가 내 발을 딱 잡아요. 고모, 저 여기 있어요. 같이 살면 그렇게 돼요. 장애가 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더불어 살아야 해요. 다빈이가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백 날 가르쳐줘도 소용이 없어요. 같이 사니까 몸에 터득이 되고 자연스러운 거예요. 단 한 번도 고모는 안 보이니까 이때는 이렇게 하고 이때는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더불어 살면 굳이 설명할 것도 없고, 기사 낼 필요도 없는 거예요. 장애인의 날 특집도 필요 없죠.”
 
민 선생님의 엄마는 창피할 정도로 그녀가 시각장애라는 것을 드러냈다. “우리 딸은 앞이 안 보여요.” 누구한테나 그런 말을 했다. “한번은 장애인 택시를 타고 아파트 앞에 내렸는데 엄마가 아직 안 나온 거예요. 아파트 청소하는 아줌마가 너 몇 호 사는 딸 아니니? 그러면서 절 데려다줬어요. 엄마가 늘 말하니까 제가 어디 사는지 아는 거죠. 엄마가 오픈을 했으니까. 그거는 엄마한테 고마워요.”
 
 
동정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복지다
 
근로지원인 제도라는 게 있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장애인을 고용하면 공단에서 장애직원을 서포트할 수 있는 근로지원인을 보낸다. 이 제도가 생긴 뒤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부담금을 지불하던 학교도 일자리사업을 창출했다. 민 선생님은 지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일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했다. 한 학생은 지금 산곡중학교에 취직해 레슬링 선수들을 안마해준다. 보조공학기, 컴퓨터 등도 공단에서 지원해준다. 제도만 잘 활용하면 어느 곳에서도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다.
 
민 선생님은 장애가 있을수록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움직이고 행동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도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장애연금을 주는 게 다가 아니다. 그건 동정심일 뿐이다. 사정이 딱하니까 우리가 베풀어준다는 인식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맞다. 그게 복지다. 그런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게 사회가, 나라가 힘써야 한다. 그런 기반은 없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라, 같이 가라, 수단을 이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그녀는 야구와 쇼핑 그리고 영화를 좋아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누가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각각 최고의 파트너가 있다. 동반자가 야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문학경기장에 함께 간다 한들 도움이 안 된다. 그녀는 요즘 영화가 스토리보다 영상 위주인 것이 못내 서운하다. 대사가 별로 없으니 도무지 스토리를 상상할 수가 없다. 쇼핑은 미술을 전공한 둘째 언니나 동료 교사와 함께 가면 좋고, 영화는 남동생이 기 막히게 설명을 잘한다. 남동생과 함께 본 김기덕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학생들한테 들려줬더니, “선생님, 선생님이 그 영화 진짜 본 것 같아요!” 아이들도 무척 즐거워했다.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봄이 좋아요. 봄에는 막 들뜨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기 위해 햇살이 머문 벤치에 그녀를 앉혔다. “여기, 괜찮아요? 시선은 이쪽으로 할까요?”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녀는 소녀 같았다. 말간 얼굴이, 밝은 미소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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