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새와 승기하수처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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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와 승기하수처리장
  • 이혜경
  • 승인 2015.12.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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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이혜경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저어새가 남동유수지의 번식지를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그런데 저어새들은 스스로를 항변할 수 없다. 단지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저어새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오히려 인천시는 시민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 승기하수처리장을 재건설해야하는데 돈이 없다고... 저어새가 번식하고 있는 남동유수지 일부만 매립하면 재정위기에 처한 인천시 예산을 아낄 수 있어서 경제적으로 가장 타당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인천시는 승기하수처리장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애초에 승기하수처리장을 잘못 설계하는 바람에 거의 모든 항목에서 설계기준치를 초과하여 하수물이 유입되면서 법정 방류수질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한 악취발생 민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승기하수처리장은 시설용량을 늘려서 재건설해야하는 상황이다. 결국 재정위기에 처한 인천시는 시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민자사업으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어새가 번식하고 있는 남동유수지를 일부 매립해 재건설하는 방안이 가장 경제적이라며 민간업체에서 유력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도대체 인천시는 곳간을 얼마나 털어먹은 것일까? 지방행정을 운영하는 자치단체에서 기반시설인 하수처리장 재건설 비용조차 없다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인천시가 자치단체의 기본적인 재정운영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수처리장은 도시주민들의 생활 및 도시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시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반시설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로, 전기, 통신과 함께 하수도, 폐기물 처리시설은 환경기초시설로 필수적인 기반시설이다. 자치단체는 환경기초시설에 대한 비용은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인천시는 주민세를 법적 최대치로 올리며 재정난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더니, 이번에는 필수 시설조차 건설할 비용이 없다며 이해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인천시의 재정난은 모든 상황에서 타당한 변명이자 압력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천시는 재정난을 호소하며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을 남동유수지로 이전하게 되면 부지매입비와 차집관로 신설 등 일천억원 이상의 건설비가 줄어들어 가장 경제성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린다. 남동유수지가 저어새의 중요한 번식지임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고민한다. 이미 알려졌듯이 저어새는 국제적인 멸종위기 조류이자 천연기념물로 반드시 보호해야하는 새이며, 매해 100여 마리의 새끼를 키워내는 남동유수지는 한국에서 4번째로 큰 저어새 번식지이다. 남동유수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은 지역으로 인천의 환경단체와 조류학자들은 남동유수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인천시에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그런데 인천시가 남동유수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지는 못할망정, 매립해서 훼손하려고 하고 있다. 인천시의 재정난과 경제적인 이유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인천시와 민간업자는 남동유수지 전부를 매립하는 것도 아니고 저어새 번식지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것도 아니라며 구차한 변명거리들을 늘어놓으며 동시에 경제적 논리를 들이댄다. 현재 인천시는 승기하수처리장을 재건설할 일천억원의 예산이 없다고 당연하게 하소연한다. 그리고 중립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인천시의 재정난을 걱정하며 대안을 내놓으려 노력한다. 결국 저어새 네트워크 사람들은 인천시를 만나 승기하수처리장 재건설을 위해 부분매립을 할 경우, 저어새는 더 이상 남동유수지에서 번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철새들까지 떠나게 될 거라고 구구절절이 설명했다. 꽤 오랜 시간 간담회를 하며 환경운동가들은 일천억원에 대응하는 남동유수지의 가치를 설명하려 노력했다. 남동유수지가 세계적인 저어새 생태관광지가 될 수 있으며 더 높은 경제적 가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생태적 가치를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가 지배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 인천시의 담당자들은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협조를 요청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을 우선하는 가치는 보편적 원칙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가장 보편적인 판단의 기준이자 지배적인 가치로 순치되며 현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으로 정립되어버렸다. 매일같이 뉴스와 보도에서는 경제성장률을 운운한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모두가 과거의 빌어먹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로 회귀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며 저절로 위기의식을 느낀다. 새만금 갯벌사업을 할 때도 4대강사업을 할 때도 경인운하를 뚫을 때도 경제성은 지배적인 정치권의 가장 타당한 논리로 작용했다. 생물다양성의 가치는 액수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세상을 모르는 한심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사회적 가치, 인문학적 가치, 역사적 가치, 생태적 가치의 기준은 경제적 가치이다. 환경운동가들조차 생태적 가치를 어떻게 경제적 가치로 변환해서 알려줄까 전전긍긍한다. 어느 순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신세계에 판단의 기준은 경제성이 되어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판단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생태는 경제성으로 판단되고 구조적인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인간의 존엄성조차 한국에서 불가능한데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하는 것이 황망한 일일지라도, 누군가는 꾸준히‘생명의 존엄성’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경제성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는 것을 거부해야한다. 자신을 항변하지 못하는 저어새를 위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위한 작은 몸짓이 경제적 판단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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