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는 지난해 책의 수도 인천을 기념하여 발간한 엔솔로지 시집 『문학산』을 모두 환수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결정이 타당한지, 필요한 조치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시를 읽을 때는 다른 선입견을 배제하고 시 본래의 텍스트에 충실하여 읽어야 한다. 시인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때로는 시인과 함께 분노하고 때로는 비탄에 잠기고 눈물도 흘려야 한다. 화자가 추억에 젖으면 독자도 추억에 젖으며 시를 감상하는 것이 시 읽기의 기본이다. 관용(똘레랑스)을 가지고 읽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관용이란 너그럽게 봐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불순한 의도로 꼬투리를 잡아 매도하거나 센세이션을 일으킬 목적으로 공연히 트집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시를 다루는 언론이 그렇고 사실은 규명하지도 않고 뚝딱 행정적인 절차를 통하여 잡음을 봉쇄해버리려는 당국자의 처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를 읽을 때는 팔십 대 중반의 노 시인이 열 살이었을 때를 회상하고 쓴 것이니 독자도 열 살 소녀가 되어 그 눈높이에 맞춰 그 시절 속으로 들어가 시를 읽어야 한다. 그것이 똘레랑스(Tolerance)다. 중앙의 어떤 신문은 이 시인이 日政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고 있다. 그 표현이 현대적 표현으로 부적절할지 모르지만 50대 이상의 국민은 누구나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일제의 호칭이 아닌가. 먼저 시를 읽어보기로 하자.
詩人의 모습
홍명희
나 초등학교 삼학년
日政때
창씨 개명령이 내려
세상이 술렁거릴 때
어느 날 오후
우리 담임선생님이
창씨개명을 설명하시며
선생님도 이름을 바꾸셨다고
칠판에 靑松波氏(아오 마쓰나미요)라고 쓰셨다
집에 돌아가 우리 선생님이 창시개명해서
靑松波氏 선생님이라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도 당장 말씀하셨다
아 이름 한번 예쁘구나
너희 선생님은 詩人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
나는 詩人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인천 사람이면 누구나 드나드는
인천 앞바다의 흰 모래 사장과
솔 밭 사잇길
거기 하늘한 하얀 치마저고리에
하얀 양산을 받쳐 든 선생님을 생각하고
정말 선생님은 아름다운 詩人이구나 했다
그 후 나는
인천 월미도 앞바다와
靑松波氏란 이름을 품고
詩를 꿈꾸는 소녀가 되었고
지금도 선생님은 나의 詩人이시다
홍명희
1932년 인천 출생. 1978년 현대문학 등단. 1952년 연합신문 전시판 신춘문예 입선. 1992년 인천시 문화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인천문협, 국제펜클럽, 갯벌문학 회원. 시집 : 『범부의 서』『사랑으로 가는 길』『네가 어디에 있느냐』『햇빛과 비바람 천둥 번개』『조용히 그리고 환하게』『사라져 가는 것들을 위하여』『사람과 사랑의 꽃으로』『대숲에서 묻는다』『너그럽고 풍요하고 아름다운』
시가 논란이 된 후 필자는 엔솔로지를 펼쳐 시를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얼핏 창씨개명 얘기가 나오고 개명한 일본식 이름이 나오니까 친일 관련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와는 전혀 무관하고 시인이 열 살 때를 회상하며 쓴 순수한 동심을 표현한 서정시임을 금세 알게 된다.
내용을 요약하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창씨개명령이 내려 술렁이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의 나이 열 살 때다. 학급 담임선생님이 자신도 이름을 바꾸었다며 칠판에 靑松波氏라고 썼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이름이 예쁘다며 선생님은 시인이시구나 하시곤 붓으로 먹물을 찍어 종이에다 靑松波氏라고 쓰시며 감탄하셨다는 얘기다.
시인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소녀는 아버지의 말씀에 힘입어 그 후로 “하늘한 하얀 치마저고리에 하얀 양산을 받쳐 든 선생님”을 생각하고 “선생님을 아름다운 시인”이라고 생각하며 靑松波氏란 이름을 품고 시를 꿈꾸는 소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시가 친일시라면 시인은 열 살 먹은 친일소녀가 되는 셈이다. 일제시대 이긴 하지만 열 살 어린이는 정치는 모르고 오로지 순수한 꿈을 간직한 소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을 회상하며 시가 어떻게 어린마음 속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시인의 꿈을 갖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표현하고 있는 순수 서정시이다.
이 시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담임선생님과 화자인 나와 아버지다. 세 사람 중에 과연 친일 성향이 있겠는가. 먼저 담임선생님을 보자. 담임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다. 자신도 창씨개명을 했다며 칠판에 크게 쓴 것 밖에 없다. 아마 당시엔 공직자에게 창씨개명을 우선 강요했을 것이다. 상부에서 시킨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친일행위가 된다는 것인가.
다음 소녀의 아버지를 보자. “아 이름 한번 예쁘구나/ 너희 선생님은 詩人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 고 한 것이 전부다. 이때 ‘이름 한 번 예쁘구나’ 한 것은 일본식 이름이어서, 創氏改名한 이름이어서 예쁘다고 한 것이 아니다. ‘푸른 소나무 물결‘ 이라고 하는 그 이름의 뜻이 예쁘다고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시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 아버지를 친일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딸이 와서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니까 아버지로써 맞장구를 쳐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를 읽을 때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 순수한 동심의 열 살 소녀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당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창씨개명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일제의 집요한 반도 침탈의 야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식민지의 여교사로써 상부의 지시로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소개할 수밖에 없는 고뇌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딸이 선생님의 개명 소식을 전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빠는 절대로 창씨개명을 안 할 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열 살 딸에게는 열 살 눈높이에 맞춰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아버지를 친일파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열 살 소녀가 친일파라는 말인가. 우리는 일본인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자주 본다. 김대중 대통령도 일본인 스승을 잊지 못해 방일 때 직접 만나기도 하지 않았는가. 동심에 자리잡은 선생님은 이념도 사상도 아니다. 시의 주인공은 일본인 교사도 아니다. ‘하늘한 하얀 치마저고리에/ 하얀 양산을 받쳐 든” 우리나라의 선생님이다. 하얀 치마저고리는 한민족의 얼을 상징한다. 한민족의 얼로 온몸을 감싼 선생님인 것이다.
흰 옷을 입은 선생님이 어떻게 친일파 선생님이 되며 그런 선생님을 가슴에 품은 소녀가 어떻게 일제에 충성하는 친일파가 된다는 것인가. 시 속의 선생님은 그 시대에 보편적인 선생님이고 시 속의 아버지도 딸을 사랑하는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보통의 아버지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의 시인도 순수하고 청순한 열 살 어린이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시로 읽어야 한다. 사상이거나 이념성은 전혀 개입되지 않은 노시인의 동심 어린 회고담을 친일 시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량 회수하여 재 출판하는 것이 평생 시를 써온 노시인에 대한 인천시의 예우인가. 이것은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고 미숙한 행정의 표본이랄 수밖에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