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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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
  • 서진완
  • 승인 2017.02.01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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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자연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여기에서도 곰이...



록키마운틴 국립공원 ⓒ 서진완

끝없이 펼쳐지던 초원지대가 끝나고 콜로라도 주로 들어오자 주변 환경이 달라지고, 뜨거웠던 공기는 한결 시원해졌다. 록키마운틴(Rocky Mountain)국립공원에 들어서자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눈앞에 험한 산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곰이다!” 

갑자기 앞차가 급정거하고, 그 앞으로 길을 건너고 있는 곰 2마리가 보였다. 지난번 세난도 국립공원에서 본 바로 그 정도 크기의 어미 곰과 그보다 작은 새끼 곰이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길을 가던 모든 차들이 멈춰 섰고 우리도 갓길에 차를 세웠다. 길 아래는 초원이 펼쳐지고 그 위를 곰 두 마리가 여유 있게 걸어간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곰들이 건너 언덕위로 올라가는 것까지 지켜보고 차로 돌아왔다. 

“엄마랑 아기 같은데...” “귀여워!” 
 


이동 중 우연히 야생동물과 마주치게 되면,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진다. ⓒ 서진완

우연히 마주친 곰 가족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연에서 야생동물을 직접 만나면 생각보다 더 기분이 좋아진다. 점차 차는 언덕을 지나 산으로 올라갔다. 3,600m에 위치한 휴게소까지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도로 곳곳에 경치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만나면 잠시라도 쉬어야만 했다. 록키산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열심히 사진도 찍었다. 호흡이 약간 거칠어지고 머리가 어질한 느낌을 받았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나타난 증상이다. 점차 산으로 올라갈수록 여름인데도 공기가 차다. 그래서인지 겉옷을 미리 준비해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내는 차안에 둔 겉옷을 입었다. 큰아이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인지라 연신 춥다고 했다. 이곳을 찾을 때면 한 여름이라도 반드시 겉옷을 준비하시라.  
 


푸른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이다. ⓒ 서진완

산 정상 부근에는 만년설이 그대로 남아있고, 저 멀리 4,345m의 최고봉 롱피크(Longe Peak)가 보였다. 이곳 주변은 모두 3,000m 이상의 산들로 둘러서 있고 높은 봉우리 사이로 펼쳐진 넓은 골짜기, 오색 빛 맑은 호수, 험준한 협곡, 그리고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림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차는 점점 고지대로 올라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보이는 툰드라 지대까지 올라갔다. 이곳에는 산아래에서 본 침엽수와 같은 나무는 전혀 없고 고지대에 살 수 있는 낮은 풀들만 보였다. 산 아래로 펼쳐진 초원의 푸르럼은 눈을 시리게 한다. 

산 아래로 내려오는 가파른 길가에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런 경우는 예외 없이 주위에 야생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무스(Moose)다!” 

우리도 차를 세웠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큰 사슴이다. 넓은 초원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들도 지켜보기만 한다. 이곳에서 사는 동물들은 인간을 경계하지 않아서 좋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과 기대했던 곳... 

평소 아침식사는 모텔에서 제공하는 빵과 커피였지만, 이날 아침은 레스토랑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다. 진한 커피와 함께 나온 음식은 꽤 괜찮았다. “기분 좋은데요!” 아내는 오랜만에 대접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식사를 하면서 오늘 가려는 두 개의 국립공원을 설명했다. “이름을 들으면 블랙캐년이 좋을 것 같은데, 메사 베르데는 잘 모르겠고!” 나는 내심 메사 베르데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다. 기분 좋게 팁을 놓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너희들은 어때?” “...” 아이들은 반응이 없다.  



블랙캐년(위)과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아래). ⓒ 서진완

블랙캐년(Black Canyon)국립공원은 메사 베르데(Mesa Verde)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가보자고 했기 때문에 큰 기대하지 않고 찾았다. 날씨는 화창하고 오히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다니기에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협곡과 가파른 절벽이 펼쳐졌다. "우와~"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아내와 아이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바로 차문을 열고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장면을 보기 위해 나갔다. 블랙캐년은 무척이나 가파른 협곡으로 인해 협곡 아래쪽엔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둡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직접 와보니 그 이름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벽의 끝 부분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절벽 끝에 도착하자 협곡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협곡과 그 사이를 흐르는 구니슨(Gunnison)강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협곡은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가장 높은 바위 위에 설치된 전망대 위에 올라서서 보면, 절벽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강물과 협곡의 날카로운 바위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자연은 정말 위대하다. 아내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었는데, 생각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블랙캐년을 보고 있자니,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 ⓒ 서진완

메사 베르데국립공원은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역사 유적지로 미국의 국립공원 중 문화적인 중요성이라는 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큰 기대를 가졌지만 아이들에게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다. “제 말이 맞잖아요!” 이곳은 아메리카 인디언 푸에블로(Pueblo)족의 주거유적과 선사시대 유적지로 이들이 절벽 아래에 흙벽돌로 지은 다층구조의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었는데, 아이들 눈에는 그 문화적 가치가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그래... 알았어!” 문화적인 중요성을 이성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주변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빠도 인정!”

포코너스. 미국 네 귀퉁이를 한 번에!


포 코너스. 네 개 주 위에 한번에 발딛기! ⓒ 서진완

포코너스(Four Corners)는 콜로라도, 유타, 뉴멕시코, 아리조나의 경계선이 한 곳에 만나는 곳이다. 황량하고 거친 들판 한가운데 오직 표지판 하나만 서 있으며. 미국의 4개 주를 단 세 발자국만 움직여도 모두 돌아볼 수 있고, 동판 표지석 가운데 부분을 밟고서면, 4개 주를 동시에 딛고 서게 되는 곳이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리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땅은 모뉴멘트밸리(Monument Valley)와 더불어 나바호(Navajo)족들이 살고 있는 자치지역이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이런 곳에서 물을 어떻게 구하며, 무엇으로 살아왔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주변은 더 넓은 들판이 이어졌지만 그 들판에는 어느 누구든 살아가기 힘든 거칠고 메마른 땅이 이어졌다. 서부영화에서 자주 보는 모뉴멘트밸리 주변은 부드러운 모래가 바람에 흩날려  샌들을 신고 있는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들어왔다. 햇살은 뜨겁고 숨이 막힐 정도로 온도가 높아서 이런 곳에서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런 사막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모뉴멘트들이 눈앞에서 멋진 모습으로 우뚝 서 있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해가 지면서 다른 색깔을 만드는 이곳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모습 그 자체다. 

“인상적이네요!” 
“그래. 이곳은 자연이 만든 화려한 색깔의 인상주의 작품 같구나!”


국립공원 뿐?
 


브라이스 캐년 ⓒ 서진완

미국 서부를 여행하면 국립공원을 통해 자연의 위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내와 서부여행을 계획하면서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동선을 정했다. 유타주, 아리조나주, 그리고 캘리포니아주로 이어지는 국립공원 나들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지혜도 함께 가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캐년랜드(Canyonlands) 국립공원은 기암괴석이 촛대 모양으로 평풍을 드리운 듯 도열해 있는 곳으로 남쪽 출입구로 들어가는 길은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태초에 하느님이 이 세상을 처음 만들 때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아내는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내일 아치스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거야." 

아치스(Arches) 국립공원 내에 무려 2,400여개의 아치가 있다고 했는데, 다시 보아도 그 오랜 기간동안 이런 모습으로 자리잡은 각종 바위와 지형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나 다양한 천연 아치와 기암괴석이 만들어졌을까? 고도가 높은 사막에 위치한 이곳은 1억년 동안 극단적인 기온 차와 물과 바람의 끊임없는 침식작용으로 인해 각종 사암이 아치모양으로 형성되었다는 과학적인 설명을 들으면서도 감성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이다. 
 


아치스 국립공원 입구에서 가족들과 함께 ⓒ 서진완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이런 아치가 2천 4백여개나 된다고 한다. ⓒ 서진완
 

아치스 국립공원을 나오면 다시 캐년랜드(Canyonlands)국립공원의 북쪽 입구로 이어진다. 이곳은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캐년을 마주하자, 16년 전 처음 이곳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금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땅이 갈라지고, 깊은 계곡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수식어로도 이 감동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느꼈는지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아내와 나는 이곳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유타(Utah)는 정말 다양한 색깔을 가진 것 같아요.“
 



브라이스 캐년(위)와 캐년 랜드(아래) ⓒ 서진완

아내의 평가대로 길을 가는 내내 놓치기 아까운 경치가 눈앞에 펼쳐지며 서로 다른 색을 보이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캐피톨리프(Capitol Reef)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길은 유타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도로다. 다양한 형태와 색채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절벽, 그리고 좁은 협곡으로 이루어진 곳을 따라가면서 국립공원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브라이스캐년(Bryce Canyon)국립공원을 만나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전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았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평범해 보이지만 반전은 바로 언덕 너머에서 나타난다. 언덕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순간 수 백 만개의 기묘한 돌기둥이 협곡에 가득 차 있는 장관을 보게 된다. 아내와 나는 이전에 이곳에 서서 경치만 보고 간 것이 아쉬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 직접 돌기둥을 만져보기로 했다. 

햇살이 잠시 사라진 틈을 타,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가팔랐고 맨 아래 부분까지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협곡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니 까마득하게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땐 몰랐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돌기둥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아 보인다. 돌기둥은 흙이 아니라 단단한 암석이었다. 이 많은 돌들이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깎여서 기둥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돌기둥 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돌기둥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늘이 만들어져 걷는 내내 햇살을 피할 수 있었다. 언덕 위에서 보았을 때는 돌기둥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지만 협곡 안으로 걸으면서 보니 생각보다 돌기둥 간의 공간이 넓다. 

“이제 올라가죠!” 큰아이는 아랫부분까지 왔다가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내와 나는 이렇게 멋진 길을 더 걷고 싶었다. 아이는 하는 수 없이 우리와 함께 트레일 코스를 완주했다. 걸으면서 돌과 흙도 만져보았다. 높게 뻗은 나무들도 만져 보고, 야생동물이 뛰노는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언덕 위에 올라올 즈음에는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 밝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가리자, 주위가 어두워졌다. 마지막 계곡 위로 올라갈 때는 힘이 들었지만 아내는 너무나 좋아했다. 

"역시 브라이스캐년이 최고야!" 

브라이스캐년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이언(Zion) 국립공원으로 이어진다. 자이언캐년(Zion Canyon) 지역은 일반 차량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들어갈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협곡사이를 다니며 주요 지점에 버스가 정차하면 사람들이 내리고 탈 수 있다. 협곡 내부에 충분한 주차시설을 갖출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환경 친화적인 측면에서도 이렇게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아보였다. 
 


자이언 국립공원 ⓒ 서진완

우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트레일 코스를 선택했다. 버스에서 내려 평탄한 길을 따라 협곡사이로 이어지는 트레일 코스는 꽤 긴 거리였지만 좁은 협곡으로 그늘이 져서 뜨거운 날씨에도 부담 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지난 번 브라이스캐년 이후로 절대 트레일을 걷지 않겠다고 했던 아이들도 이번엔 아무 말 없이 기분 좋게 걸었다. 고개를 들면 암벽과 높이 솟은 나무들 때문에 하늘의 일부 밖에 보이지 않고, 쭉쭉 뻗은 절벽 사이로 아이들이 앞서고, 우리 부부는 여유롭게 뒤를 따랐다. 길가에 놀고 있는 다람쥐와 강가에 있는 노루도 지나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여유롭게 걸으며 이들과 함께 하니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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