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사막을 지나, 축복받은 땅에 도착하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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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을 지나, 축복받은 땅에 도착하기 까지
  • 서진완
  • 승인 2017.02.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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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가족과 함께이기에 더 즐거운 시간들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별론데요?”


노스림에서 바라본 그랜드캐년 ⓒ 서진완


처음 이곳을 여행했을 때 너무나 멋진 풍경을 혼자보기에 아까워서 결혼하면 아내와 함께 꼭 오겠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을 때는 아이들과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가족이 함께 이곳을 왔다가 돌아간다. 나로서는 이제 이곳을 더 이상 오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지나치는 곳마다 마무리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랜드캐년(Grand Canyon)은 그런 생각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데 가장 적합한 곳이라 생각했다. 노스림(North Rim)에서 그랜드캐년을 보기 위해 우리는 좁은 길을 따라 절벽 아래까지 이어지는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협곡 아래가 가마득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럽기도 하다. 그랜드캐년이 내 발 아래 펼쳐진 광경을 보면 누구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별론데요."

아내와 나는 이렇게 감동을 받는데, 큰 아이 녀석이 쿨하게 별로라고 했다.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줘서 그런가?" 아내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그런데 쿨하게 별로라 하더니 큰아이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내와 나는 웃을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전망대가 있는 케이프로얄(Cape Royal)은 협곡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랜드캐년의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노스림을 찾게 된다면 이곳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감히 이곳에서 바라본 협곡과 협곡 아래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은 그랜드캐년의 최고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스림에서 바라본 그랜드캐년 ⓒ 서진완

 

큰아이와 바위 위에 앉아 이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말썽을 부리던 아들과 소원해진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과 함께 그랜드캐년을 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이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나 역시 아들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이런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발 아래 펼쳐진 대자연을 보면서 원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내가 왜 이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이 광경 하나를 보기 위해 이 먼 거리를 달려온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사우스림(South Rim)으로 가서 또 다른 모습의 그랜드캐년을 보고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으로 가는 길은 페이지(Page)와 플래그스탭(Flagstaff)에서 각각 하루를 보내야 할 만큼 오래 걸렸다. 사우스림으로 오는 길에 페이지에서는 말발굽 모양으로 콜로라도강물이 흘러가는 호스슈벤드(Horseshoe Bend)를보았고, 플래그스탭 근처에 위치한 화산지역과 인디언 유적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사우스림 그랜드캐년 앞에서 ⓒ 서진완
 

운전을 오래하지만 저녁마다 큰아이가 해주는 안마가 제법 효과를 발휘한다. 어느 순간부터 덩치가 커지고 손아귀의 힘이 세져서 제대로 된 안마를 받는 것 같다. 큰아이는 작은 아이를 놀리거나 심한 농담으로 우리 부부로부터 주의를 받을 때도 있지만 서글서글하고 때론 능글맞기 까지 한 덕분에 여행이 재밌다. 게다가 동생을 괴롭히는 것을 재미로 삼아 둘이 많이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 덕분에 큰 짐을 운반하거나 트렁크 정리 등을 맡길 수 있어서 든든하다. 키를 반납하고 영수증을 챙기는 일은 작은아이 몫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란다

숙소에 도착해서 인터넷을 연결하자 인터넷뱅킹 사고를 수사하는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통화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와 있다. 은행거래내역을 조사하는 일련의 사항에 대해 동의를 해주고 이메일을 통해 구체적인 질문에 답하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잠시 잊고 지냈는데, 답답해졌다. 아이들도 농담을 삼가고, 아내도 내 눈치를 보게 된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잠을 설친 것은 아니지만 정신이 개운치는 않다. 샤워를 하면서 마음을 추스렸다. “어차피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아이들을 깨워 먼저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풀었다.


'규모가 너무 넓어 뭘 봐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들의 평이 흥미롭다. ⓒ 서진완

사우스림은 규모면에서 노스림보다 볼 곳이 많다. 지도를 펼쳐서 동선을 확인했다. 자동차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동쪽 부분은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전망대마다 버스에서 내려 구경하고 다음에 오는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경치도 구경하고 아이들과 얘기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사우스림의 전망이 더욱 넓고 좋기는 한데, 오히려 너무 넓게 펼쳐져서 무엇을 봐야할지 초점이 흐려진 것 같아요!”

큰아이의 평이 제법 흥미로웠다. 아이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왜 이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작은아이가 대답을 했다. "우리도 자연처럼 멋지게 변하라고요!" 나는 특정한 대답을 유도하거나 기대했던 것이 아니지만 작은아이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요 지점에서 그랜드캐년을 보았다. 그 때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하나하나가 다 예쁘고 웅장했다. 어떤 쪽에서 보더라도 웅장하고 예쁜 이곳의 모습처럼 각자 예쁘고 좋은 면이 있다고 얘기했다. 결국 아름다운 색깔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정도면 족하다.
 


사우스림에서 바라본 그랜드캐년 ⓒ 서진완


사우스림의 서쪽은 자동차를 이용했다. 몇 대의 차량이 서 있어서 우리도 서행을 하는데 길 양옆으로 엘크(Elk) 두 마리가 길 가에서 풀을 뜯고 있다. 머리에 큰 뿔을 가진 엘크는 늠름하게 보였다. 길가에 사람들이 서서 사진을 찍어도 개의치 않고 가끔 우리를 쳐다보기까지 한다. 숲속으로 더 많은 엘크가 보여 차에서 내렸다. 가까운 곳에서 야생동물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사우스림에서 가장 넓은 그랜드캐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전망대를 찾아가는 길이지만, 장엄한 협곡을 보는 즐거움 못지않게 이렇게 동물들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랜드캐년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깔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웅장한 모습들을 보면 스스로 자신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아이들도 동의했다. 협곡 아래로 인터넷뱅킹사고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던져버렸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건강이 더 소중하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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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신용카드로 기름을 넣으려고 했는데, 카드승인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다시 긴장했다. 우선 현금으로 기름을 넣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결제를 하려고 카드를 주었는데, 이번에도 단말기 화면에 ‘승인거부’라는 메시지가 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우선 현금으로 방값을 지불하고 바로 인터넷을 연결한 다음 한국의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했다. “괜찮아요?” 아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카드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제 몇 군데 숙소를 한꺼번에 예약을 하는 바람에 카드회사에서 안전을 위해서 잠시 지불을 정지했다며, 내가 사용한 금액이 맞는 것을 확인하고 지불정지 상태를 해지했다. “휴~” 아내와 나는 떨리는 가슴을 다시 쓸어내렸다. 제발~


라스베가스, 화려한 야경의 도시


후버 댐 ⓒ 서진완

 

창문을 열자, 화사한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왔다. 어제까지 두통에다 심장이 빨리 뛰는 듯한 느낌 때문에 힘들었는데, 아침 햇살 덕분인지 한결 마음과 몸이 편해졌다. 아이들을 깨웠다.

라스베가스(Las Vegas)로 가는 길에 후버댐(Hoover Dam)을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미국의 경제공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에 안성맞춤인 이 곳은 1929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탓에 당시 미국인들에게 이 댐은 가장 큰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경제공황 극복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다. 아이들 역시 ‘루즈벨트와 뉴딜정책’ 등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해가 서산으로 저물기 시작하는 무렵 멀리 라스베가스의 빌딩들이 눈앞에 들어왔다.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차들이 많아지고 조금 전까지 황량했던 사막이 사라지고 화려한 도시가 나타났다. 아이들도 라스베가스를 보고 싶어 했다.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불빛이 더욱 강하게 보였다. 저녁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 내에 있는 카지노를 찾았다. 체크인을 할 때 아이들에게 카지노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더니 직접 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덕분에 내가 의자에 앉고 아이들이 한 번씩 슬롯머신의 배팅단추를 눌러보는 수준에서 이것저것 해보게 했다. 평소에도 경품에 잘 당첨되던 작은아이는 1센트 기계에서 무려 1500포인트가 당첨되어 15불을 받았다. 기계 주변에 불이 번쩍이고 경쾌한 음악도 흘러나왔다.
 


화려한 야경의 도시, 라스베가스! ⓒ 서진완


큰아이가 해보고 싶다는 포커와 블랙잭도 한 번씩 경험하게 했다. 큰아이는 동생에게 “이제 그만하자!”며, 절제를 강조했다.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고층빌딩 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조명이 압도하고, 밤하늘을 향해 움직이는 레이저가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멋있는데요!” 우리 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네바다를 지나 죽음의 계곡으로...


데스벨리로 가는 길, 흙먼지가 온 사방에 날린다. ⓒ 서진완

 

라스베가스 시내를 빠져나오면 다시 황량한 사막이 시작된다. 데스벨리(Death Valley)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척박한 대지와 풀 한포기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벌거숭이산들이 이어진다. 바람이 불 때면 흙먼지가 온 사방에 날리는 이곳은 가장 덥고, 가장 건조하고, 가장 낮은 최악의 자연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곳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극단적인 환경조건을 가진 이곳을 이번 여행에서 꼭 보여주고 싶어 했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단테스뷰(Dates View)를 먼저 찾았다. 아내는 데스밸리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을 잊지 못하고 이번 여행기간동안 다시 보기를 소원했었다. 계곡을 뒤덮은 하얀색 소금을 멀리서 보면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다. 다양한 무늬와 색깔을 띈 자브라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에 들렀을 때는 햇살이 뜨겁다는 표현만으로는 도저히 부족할 정도로 기온이 높아졌다. 섭씨 43도까지 올라갔으니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 때면 체감온도는 이 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평상시에도 이곳에 오면 뜨거운 온도를 조심하고, 충분한 연료와 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경고를 실감하게 한다.  
 



데스벨리 샌드 듄(위)과 소금밭(아래) ⓒ 서진완

 

계곡의 가운데 부분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특이한 형태의 소금밭(Devil’s Colf Course)이 있다. 물결치는 듯한 소금덩어리들이 그대로 계곡 전체를 뒤덮고 있다. 바로 단테스뷰에서 호수처럼 보였던 바로 그곳이다. 이곳 데스벨리에서 가장 낮은 지점(Badwater Basin)은 바다 밑 85m의 높이로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햇살이 소금에 반사되어 눈을 뜰 수가 없을 만큼 눈이 부신데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몇 발자국을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에어컨을 최대한 강하게 틀었다. 새 차가 아니라면 반드시 차량점검을 하고 오길 추천한다. 아이들은 차에 두었던 물을 모두 마셔버렸다. 공원 내에는 꽤 큰 규모의 모래언덕(Sand Dunes)도 있다. 모래사막 위에서 샌들을 벗고 모래에 서는 순간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뜨거워서 이번에도 서둘러 차로 돌아왔다.

“왜 죽음의 계곡이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뜨거운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와 어쩌면 제대로 데스밸리의 모습을 확인한 셈이다. 어쩔 수없이 한여름에 데스밸리를 갈 예정이라면 충분한 물과 연료, 그리고 먹을 것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축복받은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 서진완

사막에서 자고 난 다음날 우리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지났다. 어제까지 사막이었던 지형이 이제는 나무숲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자연을 만나게 된다. 데스밸리를 경계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서면 캘리포니아가 시작되는 이곳은 네바다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가 다르네요!” 아이들은 벌써 차이를 인식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를 보게될거야!” 지금까지 사막을 건너서 황폐한 곳을 보느라 제대로 된 나무들을 보지 못했다면 오늘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걸쳐 있는 두개의 국립공원에서 수령이 무려 2,000년에서 3,000년에 이른다는 거목들을 보러 가는 것이다.
 


세콰이어 국립공원에서 ⓒ 서진완

이들 나무들은 세콰이아 산림지역에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킹스캐년(Kings Canyon) 국립공원과 세콰이어(Sequoia) 국립공원에 있다. 이곳에서 아내에게 나무 냄새를 그것도 수령이 최고로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냄새를 듬뿍 맡게 해 주고 싶었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령이 3,500년이 되었다는 나무(General Grant Grove)가 있는 곳으로 연결된 트레일 코스를 택했다. 숲속에서 맡는 나무 향기는 진하고 풍성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마음껏 들이켰다. 아이들은 숲속에서 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수령을 가늠하기 힘들만큼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하다! ⓒ 서진완


하늘을 치솟아 서 있는 나무는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되었고, 쓰러진 나무는 그 규모가 커서 사람들이 그 밑을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아내는 걸으면서 열심히 심호흡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General Sherman Tree) 앞에 섰다. 나무 향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좋다! 아내의 얼굴도 화사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요세미티계곡(Yosemite Valley)으로 향했다.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골짜기를 지나 터널을 통과하자 세계 최고라는 화강암 절벽(El Capitan)이 나타났다.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요세미티의 첫 번째 장면이다. 두 번째로 찾은 장소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는 739m의 요세미티 폭포였다. 아쉽게도 폭포에 물이 흐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웅장한 모습만으로도 압도된다. 강 옆에 차를 주차하고 강물에 발을 담갔다.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둘러본다. 그 순간 갑자기 아내가 소리를 쳤다. “저기 봐요!”
 


사슴 가족이 물을 마시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는 곳! (요세미티 국립공원) ⓒ 서진완

세 마리의 사슴 가족이 물을 마시러 강가로 내려온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사슴을 보러 물살을 헤치며 걸어갔다. 사슴은 사람들이 다가와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태연하게 강가에서 우리를 쳐다본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차로 돌아올 때까지 사슴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계곡을 빠져나와 또 다른 전망대(Glacier Point)로 향하는 길에 이번에는 여우를 만났다. 서성거리는 여우는 우리 차가 옆으로 가까이 접근해도 오히려 우리를 빤히 쳐다만 보았다. 조금 전의 그 사슴처럼 여우도 이곳의 주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요세미티계곡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요세미티공원을 찾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2,199m 높이에서 위치해 있는 이곳 전망대에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높이 때문인지 아찔해서 멀미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요세미티폭포와 하프돔(Half Dome)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하는 것 말곤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쳐다보았다. 20년 전에 이곳에 혼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역시 가족이 함께 오는 것이 좋다.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아내는 아쉬워했다. 요세미티폭포에 물이 떨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을 때 다시 오자고 했다. 이곳에 며칠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아쉬움을 뒤로 했다. "자연이 눈에 들어오면 나이 든 거라던데…“
 


요세미티 하프돔의 모습을 보면, 감탄이 나올 수 밖에! ⓒ 서진완

 

프레스노(Fresno)에서 아침을 맞았다. 방값을 지불하고 숙소의 영수증은 오늘도 작은아이가 챙겨서 아내에게 주고, 큰아이는 방 키를 반납했다. 매일의 비용을 정리하는 아내를 위해 작은아이가 영수증을 제법 꼼꼼히 챙긴다. 여행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 여행을 결심하면서 지인들이 내게 물었던 가장 많은 질문이다. 아내는 여행을 하면서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열심히 아끼면서도 아끼지 말아야할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출했다. 여행이 끝나면 정산을 하겠지만, 부지런한 아내는 매일매일 가계부를 쓴다. 내가 여행일지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아내와 다운로드 받은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시사문제를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담은 방송을 가능한 챙겨서 듣는다. 아내는 큰아이에게도 시사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함께 듣길 권했다. 한국뉴스를 들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얘기해야할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나 오늘은 두아이 모두 관심이 없다. 작은아이는 뒷좌석에서 꿈나라로 갔고, 큰아이는 풀고 있는 수학문제가 어렵다면서 투덜거리기만 했다. 햇살이 차창 안으로 가득 들어오자 아내는 큰아이에게 신문지로 창을 가리게 했다. 작은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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