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아마존의 산호초 지대 1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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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마존의 산호초 지대 1천㎞
  • 김연식
  • 승인 2017.02.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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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마존 석유채굴을 반대합니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4)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격주(10월부터 3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브라질 아마존 강에 도착한 에스페란자 호. 흙을 잔뜩 머금은 강물은 미숫가루처럼 뿌옇다.>


# 아마존입니다

아우, 덥습니다. 습하기까지 합니다. 브라질 아마존과 우리나라는 12시간 시차가 있습니다. 여기가 점심일 때 한국은 자정이죠. 시간만큼이나 날씨도 반대입니다. 2월입니다. 서울은 강추위라는데 여기는 무더위입니다. 낮이건 밤이건 기온이 30도를 넘습니다. 뭐, 기후변화 때문에 유독 더운 건 아니고, 원래 이렇답니다.

‘아마존에 있다’는 말은 애매합니다. 아마존은 길이가 6천400㎞에 달합니다. 이웃 나라 페루와 기아나(Guiana), 콜롬비아에 걸쳐있습니다. 브라질 땅의 절반이 아마존입니다. 이 넓은 곳에 있다는 말은 ‘아시아에 있어요’라든가 ‘브라질에 있어요’라는 식으로 도저히 위치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브라질에 있는 호날두씨도 아마존에 있다하고, 페루에 있는 마리오씨도 아마존에 있다하고, 기아나에 있는 에듀왈도씨도 아마존에 있다 할 수 있으니까요.

에스페란자는 아마존 하구에 있는 ‘마카파’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하구라지만 바다에서 300㎞를 거슬러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첫 도시입니다. 하구 면적이 우리나라만합니다. 오는 내내 밀물에 올라타서 속도를 얻다가 썰물 때 다시 빼앗기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마존은 우기인 사오월에 강이 부풀다 건기인 구시월이면 줄어드는데, 심한 곳은 강물 높이가 30m나 오르내리고 강폭은 100㎞ 까지 물러납니다. 마침 강물이 빠진 시기였습니다. 이런 때는 강폭이 좁아져 물살이 시속 5킬로미터 정도로 빨라집니다. 배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느라 속도를 많이 빼앗겼습니다.

이곳은 브라질 최북단 아마파(Amapa)주의 중심 도시입니다. 아마파주의 면적은 14만2천 ㎢로 남한 전체 면적(9만9천)보다 1.5배나 크지만 인구는 62만 명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보다 넓은 땅에 고작 62만 명이 산다니 놀랍습니다. 가장 큰 도시 마카파에 20층 넘는 건물이 아홉 동 뿐이라니 말 다했죠.

인구가 적은 만큼 산업시설이 적고 환경오염이 덜합니다. 이곳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없고, 화학단지도 없습니다. 대규모 폐수처리장도 없습니다. 서울 난지도나 인천 수도권매립지 같은 거대한 쓰레기 산도 없지요. 어쩌면 지구의 가장 큰 적은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의 하늘은 여태껏 맑았으며, 지금도 맑습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 텐데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이 먼 땅을 찾은 까닭이 있겠죠?

마카파는 적도 위 도시입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면 멀리서 보이는 높은 탑이 있습니다. ‘여기가 적도요’하고 거창하게 세워놓은 탑인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도탑 바로 앞에 세계 유일 적도 축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축구장 중앙선이 적도입니다. 골대가 남북을 마주봅니다. 여기 브라질에서는 축구장 옆에 무얼 세우든 외면 받을 게 뻔한데, 적도와 축구를 동시에 기념하는 축구장이라니 말이죠. 한낱 시멘트 기둥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무튼, 여기서는 지구의 남쪽과 북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기분이 어떠냐고요? 그냥 엄청 덥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덥다가 해가 저물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집니다. 숲이 깨어납니다. 어디 숨어있었는지 사방에서 온갖 벌레가 튀어나옵니다. 배로 돌아오는 길섶 숲 속에서 수많은 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먼 것과 가까운 것, 소리만으로 그 규모가 짐작됩니다. 어두운 숲 내부가 눈앞에 선합니다. 길바닥에는 볼펜만한 지네가 기어 다니고, 음료수 캔만 한 바퀴벌레 닮은 벌레가 날아다닙니다. 손바닥만 한 잠자리도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일은 그날 밤에 배에서 일어납니다. 선원들이 둘러앉아 오는 길에 맞닥뜨린 벌레 이야기를 꺼냅니다.

-오다 보니 바닥에 볼펜만한 지네가 있더라고. 짙은 검정색에 샛노란 줄무늬가 있는 걸 보니 맹독을 갖고 있을 거야.
-그래? 나는 내 팔뚝만 한 지네를 봤는데? 다리가 얼마나 많던지. 피아노 치는 것 같더라니까.
-그 정도면 새끼 지네 아닌가? 나는 야구방망이만 한 걸 봤어. 날 보더니 길 한가운데에 멈춰 서는데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허허. 지네라고 하면 그 정도는 돼야지.


<전날 밤 고양이 만했던 벌레가 다음날 아침 컵 크기로 작아졌다>


신기하게도 벌레의 크기는 그들이 마신 맥주의 양과 비례합니다. 선원들의 무용담 속에서 볼펜만 했던 지네가 야구방망이 만하게 커지고, 손바닥만 했던 잠자리가 점점 커져서 비둘기로, 나중에는 독수리만 한 놈으로 진화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국의 친구들에게 아마존에는 고양이만한 바퀴벌레와 독수리만한 잠자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말하면서도 머릿속에 떠올리면 오싹합니다. 고양이만한 바퀴라. 방망이로 때려도 후다다 덤벼들겠죠? 아무튼 아마존 강에 있다는 거대한 뱀 ‘아나콘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심각해져 헬리콥터만 한 모기까지 나왔지만 자제하겠습니다.)

 
# 우리가 몰랐던 지구

아마존 강 하구에서 대규모 산호초 지대가 공식 확인된 것은 지난 2012년이었습니다. 여기서 ‘공식’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전에도 산호초가 있어왔고, 여러 경로로 세상에 드러났지만 존재하는 지위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뭐, 산호초가 인간들의 확인 따위를 바라지도 않겠지만요. 사람이 도장을 찍어줘야 산호초가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야기는 거창하게도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세기라고 하니 갑자기 역사학자가 된 느낌이네요. 브라질을 점령한 네덜란드와 프랑스, 포르투갈 등 대항해시대 강대국들은 이곳 아마존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습니다. 대항해시대로 시작해 갑자기 어업 이야기로 가니 조금 어색합니다만, 아무튼 수심 50m 바다에 던진 그물에 산호초가 여럿 걸려 들어옵니다. 당시 그물을 들어 올린 노예 파비오씨는 산호초를 떼어내며 ‘아 이 아래에 산호초가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파비오씨가 글자를 모르니 이 소식은 아주 천천히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졌겠지만, 어디 신문이나 보고서에 적히지 않는 이상 금방 잊혔겠지요.

멀리 브라질의 대도시 상파울루의 어마어마 대학교 으리으리 도서관에 있는 책에서는 이런 사실들을 외면했습니다. 21세기 초반까지도 교과서와 학술서적은 이곳에 산호초가 자랄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마존 유역의 흙을 머금은 강물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바다와 만나 속도를 잃은 강물은 머금고 있던 흙을 내려놓습니다. 이로 인해 하구에 퇴적층이 생기고 수심은 급격이 얕아집니다. 뿌연 강물에 막혀 햇빛이 해저에 닿지 않습니다. 강물과 섞인 물은 염도가 낮습니다. 진흙이 쌓인 곳을 지나면 수심이 절벽처럼 급격히 깊어집니다. 남미대륙 북부를 휩쓰는 기아나 해류가 이곳을 빠른 속도로 스치고 갑니다. 시속 5㎞에 달하는 거센 조수가 매일 네 번 오가며 해저를 뒤흔듭니다. 산호초는 이런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땅땅땅.

이유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산호초들은 그런 곳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저만의 세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산호초와 노예 파비오씨의 만남은 순전한 사실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파비오씨도 저기 산호초가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알았습니다. 어쩌면 대학교 도서관의 책들은 게으름과 외면, 왜곡 투성이는 아닌지요. 우리가 아는 세상이라는 건 다른 말로 우리가 인정한 세상에 불과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입으로만 전해지던 아마존 하구 산호지대가 정식으로 알려진 건 5년 전인 2012년입니다. 속된 말로 못 배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떠도는, 그러나 꾸준하고 신빙성 있는 소문을 실마리삼아 미국의 탐사선 아틀란틱 호가 움직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자들과 함께 이 지역을 조사했습니다.



<에스페란자 호는 최근 발견된 브라질 아마존 하구 산호초 지대를 탐사한다. 노란 부분이 산호초 지대>


그 결과 길이 1천㎞가 넘는 산호초지대가 발견됩니다. 생각보다 거대했습니다. 그 중에는 길이 2m가 넘는 거대한 산호도 포함되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이지요. 거기 존재하는 게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이 산호초는 다른 곳에 없는 아주 독특한 종입니다. 특수한 곳에 살다보니 저만의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지요. 파비오 씨와 그의 동료를 비롯한 수천 명이 알고 있던 사실이 공식 사실로 인정받는 아주 뒤늦은 조사였습니다.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 사실로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해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실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파비오 씨처럼 문자라는 세상의 수단을 갖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개발 의도나 어떤 목적에 의해 엄연한 사실이 감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팩트(fact)’라고들 많이 합니다. 진범일지라도 검사가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판결은 무죄가 됩니다. 죄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무죄가 팩트입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체계적으로 밝히지 못하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린피스의 역할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실제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는 사실이나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사실을 팩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기 힘든 곳,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사실을 밝힙니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사실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사진으로 남겨 세상에 알립니다. 먼 바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행되는 불법 어업 현장을 고발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 앞바다의 오염된 해저를 조사합니다. 바다 속에 있어서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버려진 어망을 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 굴포천에 맹꽁이가 서식하고, 새만큼 수라갯벌에 저어새, 화성 장지저수지에 원앙과 황조롱이, 한강에 수달이 사는 사실을 ‘팩트’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냐. 이건 법정에서 만큼이나 무척 중요한 사안입니다.

 
# 석유채굴을 반대합니다.

2012년에야 세상에 존재를 알린 아마존 산호초 지대는 금세 다시 잊힙니다. 일부 과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해왔지만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이곳 산호초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6년 4월입니다. 과학자들이 그간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이 분야 학회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에 발표합니다. 논문은 “이 지역의 산호는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제한된 태양빛과 물리적으로 독특한 바닷물에서 자라는 특수한 종(Species)이다. 처음 세상에 알려진 만큼 향후 연구 가치가 높다”고 말합니다.

헌데 아마존 하구 거대 산호초 지대는 알려지는 동시에 위험에 처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British Petroleum)과 토탈(Total)같은 다국적 석유기업에 채굴권을 판매했습니다. 채굴지역은 산호초 지대 근처 여든 곳입니다. 석유기업들은 이미 스무 곳에서 석유 20만 리터를 채굴했습니다. 브라질 정부와 영국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지난 2010년 4월 20일에 터진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를 벌써 잊은 걸까요. 당시 기름을 캐던 딥워터 호라이즌 호가 폭발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의 62배에 달하는 7억7800만 리터가 바다를 덮습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은 멕시코만 뿐 아니라 지난 2016년 10월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9만5천 리터의 원유 유출사고를 냈습니다. 해면 갯솜 해양보호구역이 기름으로 뒤덮였습니다. 사고가 난 멕시코만과 스코틀랜드 해안은 모두 유엔(UN) 산하 국제해사기구가 지정한 특별해양보호구역이었습니다.

그린피스는 이 지역에서 원유를 채굴하는데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호초 지대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대형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여기 마카파에서 연구자와 사진사, 활동가, 소형 잠수함 조종사를 태우고 근처 바다로 갑니다. 유인 잠수정을 수심 100m까지 산호초 지대에 보냅니다. 최초로 산호초 지대를 촬영해 세상에 알립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마존 산호지대 최초 촬영 작업에 동참하는 셈이죠. 선박이 있는 그린피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연환경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영국의 방송사 비비시(BBC)보다 먼저 이 소식을 전하게 되어 김씨 가문의 대대손손 무한영광입니다.

이 일을 위해 에스페란자 호는 지난 두 달간 바삐 움직였습니다. 카리브 해 연안 네덜란드령 섬까지 달려가 잠수정을 싣고 여기 브라질 마카파로 왔습니다. 이 항구에서 캐나다, 프랑스, 미국, 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서 온 활동가와 조종사, 언론인 등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날씨 예보는 대체로 좋습니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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