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시장'의 영화는 빛을 바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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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시장'의 영화는 빛을 바래고…
  • 이병기
  • 승인 2010.09.06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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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발 따라 … 인천新택리지 ⑫ 동구 송현1·2동


동인천 북광장 건설사업이 진행되는 곳.
철거하다 만 건물 뒤로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보인다.

취재: 이병기 기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송현1·2동.

0.34㎢ 면적에 4747세대, 1만3천여명이 살고 있는 송현1·2동은 동구에서 가장 큰 동(洞)으로 불린다.

이곳은 만화로를 중심으로 조성된 중앙시장(일명 양키시장)과 해방 이후 만들어진 송현시장이 위치한 전형적인 상가지역이다. 1999년 송현지구 주거환경 개선사업 이후 대규모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송현1·2동은 1998년 송현1동과 송현2동이 하나로 통합됐다. 동인천역 뒷편부터 수도국산 배수지 부근에 걸쳐 있으며, 주택과 상가의 복합지역이다. 지난 2003년에는 송현근린공원 조성으로 주민 휴식공간이 확충됐다.

철거하다 만 건물과 고층 아파트의 대조


중앙시장 순대 곱창골목

송현1동 동인척역 뒷편 한 켠에선 북광장 건설사업이 한창이다. 한때 주택이 들어서 있던 이곳은 현재 철거하다 만 건물의 흉측한 잔해와 무성한 잡초가 공터를 메우고 있다.

황폐화한 공터 위에는 흰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전국철거민연합의 개발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뒤로 보이는 깔끔한 고층 아파트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텅 빈 공터를 지나면 허름한 건물들이 나온다. '중앙시장'이라는 이름보다 '양키시장'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해방 직전 1940년대 초부터 형성됐다고 알려진다. 당시 축현역(현 동인천역) 앞 채미전거리가 활발해지면서 노점상이 늘고 자연스레 뒷편까지 시장을 이뤘다.

인터넷 블로그 '디비딥의 인천스케치'를 운영하는 아이디 디비딥은 "일본이 패망할 무렵 인천상공협회 창립자인 윤창호씨가 축현역 뒷편 개천가에 야시장(현 포목점 일대)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상권을 형성했다"면서 "일제는 야시장 개설 후 공터에 기둥을 세우고 양철지붕을 씌워 '인천부 일용품공설시장'을 건립했다"라고 설명한다.

현재 양키시장은 문을 닫는 가게가 늘고 있다 디비딥은 "중앙시장 주변에는 바다와 연결된 수문통을 거쳐 배다리로 바닷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면서 "개천을 복개한 후 건물을 짓고 시장을 만들어 아직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길바닥에 소금기가 하얗게 배어 나온다"라고 말했다.

양키시장 한편에는 도화동 제일시장과 더불어 곱창과 순대 골목으로 유명했던 식당거리가 형성돼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이북 피난민들이 토굴을 파고 판자로 나무를 지어 생활했던 곳이라고 한다.

"피난민들은 노숙자와 뜨내기들을 상대로 잠자리를 빌려주거나 순대와 곱창을 팔며 장사를 했다. 그때 생겨난 순대골목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해주식당, 평양식당, 황주집 등의 간판을 남겼다." 디비딥의 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 '양키시장'

"학생 뭐 찾아? 다 있어. 싸게 줄게 보고 가."

아직도 가게를 연 몇몇 상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몇 전 전까지만 해도 어둡고 비좁은 골목이었지만,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상인들의 목소리로 거리에는 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셔터를 내린 곳이 많고 인적이 드물어 쓸쓸하다.

한국전쟁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물건을 밀거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양키시장'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암달러상을 비롯해 미군 군복이나 군용품, 통조림, 담배 등을 파는 이들이 모여 좌판을 열었다. 단속이라도 나올 때면 국산물품으로 바꾸거나 물건을 싸서 도망가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인기가 대단했어. IMF때도 장사가 잘 됐거든. 부천은 가까운 편이고 전국에서 손님들이 다 왔다니까. 근처에 공장도 많았으니 잘될 수밖에 없었지. 내가 장사한 지 35~36년 됐는데 벌어서 애들 다 키웠지."


김만근씨와 선풍기

양키시장에서 작업복과 군복 등을 판매하는 김만근(66)씨는 연신 "예전엔 대단했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단했던' 양키시장의 성세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걱정이야. 적자가 이만저만 아니야. 장사가 안 되니 문을 닫는 집이 늘어나. 막노동이라도 나가면 하루에 6만~7만원을 벌잖아. 세를 사는 사람은 거의 다 나가고 자기 건물 갖고 장사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는 거야. 예전에 비하면 벌이가 10분의 1도 안 돼."


가지런히 정돈된 수입제품들

김씨는 "선거 전 말 많았던 후보자들이 선거가 끝나고 당선됐지만 아직 아무런 얘기도 없다"면서 "무슨 조치가 있겠지"라고 반쯤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김씨 옆에는 25년 넘게 그와 함께 세월을 보낸 낡은 선풍기가 늦여름을 식혀주고 있었다.

미제, 일제 식료품을 비롯해 잡동사니 가게를 하는 한 아주머니는 "장사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요즘은 너무 안 된다"면서 "반찬값이나 벌어보려고 나와 앉아 있다"라고 했다. 그 가게 앞에는 처음 보는 다양한 수입 제품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시네마 천국' … 오성-미림극장


구 오성극장

양키시장에서 송현2동 방면 큰 길가로 나가면 또 다른 추억의 장소를 볼 수 있다. 바로 시장과 붙어 있는 오성극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미림극장이다.

한때 동인천 인형극장, 애관극장, 피카디리 극장과 더불어 중구 '시네마 천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두 극장이지만 이제는 간판만 남아 있다.

두 영화관이 한창 운영되던 당시는 지정 좌석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표만 사면 아무 자리에서나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미림극장은 1957년 창업자인 고희성씨가 중앙시장 진입로에 천막을 치고 16mm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문을 연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인천의 중심 영화관으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주안과 관교동 등에 복합상영관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었고,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오성극장은 시네팝, 애관극장 2관으로 운영되다가 2003년 4월부터 휴관에 들어갔다. 미림극장은 오성극장이 문을 닫은 이듬해 지속적인 경영난으로 장기휴관에 들어갔다. 

양키시장이나 영화관 모두 동인천 구도심의 상권이 몰락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주민 65% 거주하는 신도시 '솔빛마을'


솔빛주공 2차 아파트

동인천 북광장 조성 부지를 등지면 정면에 왕복 6차선의 송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송현시장 주변으로는 4~5층 짜리 건물도 있지만 그 이상의 고층 건물도 보인다. 뒷편으로 언덕에 위치해 더욱 높아 보이는 솔빛마을 1차 아파트는 하늘에 닿을 듯하다.

송현2동의 경우 수문통 하천을 통해 배다리까지 배가 들어옴에 따라 조그만 항구를 이루면서 만들어졌다. 중구 일대 일본인과 중국인 등 외국인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가난한 한국인들이 수도국산 중턱을 중심으로 주거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제물포'로 불리다가 일제치하 시 통감부 설치로 송현정으로 됐다. 1956년 6.25전쟁 이후에는 삼육동이라고 잠시 불렸으나 1962년부터 4개동으로 분동돼 송현2동으로 칭하고 있다.

1999년 송현지구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시행되면서 송현로를 가운데 두고 솔빛주공 1차와 2차가 들어섰다. 두 아파트 단지에만 송현1·2동의 총 4747세대 중 65%인 3097세대가 살고 있다. 솔빛주공 1차와 2차는 지난 2003년 4월과 12월부터 입주를 시작했으며 23층~25층으로 지어졌다.


송현시장

중구나 동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송현1·2동 역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이 많다. 이에 동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여러 시책을 진행하고 있다.

송현1·2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들이 봉사단체를 만들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들에게 야채를 배달해주거나 직접 방문해 어려운 점을 듣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 자생단체인 깔끔이봉사대와 새마을부녀회, 통우회 등은 힘든 이웃에게 농산물을 직접 배달하는 '사랑의 야채배달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야채배달 일은 삼산농산물 도매시장의 농산물 가운데 거래가 끝난 야채를 지원받아 이뤄진다. 야채가 도착하면 봉사자들이 직접 다듬고 포장해 이웃에게 전달한다. 야채는 매주 한 번씩 전달되며 2007년부터 지금까지 약 4천세대를 찾아갔다. 월 3만원이 드는 추진비용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맡는다.

'통·반장과 함께하는 저소득 가정 방문' 역시 매주 1회씩 진행된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활동은 지역의 기초수급자와 장애인, 독거노인 166세대를 대상으로 방문을 통해 인적·물적 연계서비스를 제공하고 복지대상자가 요청할 경우 '멘토링'도 지원한다.


양키시장 내 수선집

동 주민센터에서는 이밖에 행정오류를 줄이고 출생을 장려하기 위해 '출생기념 주민등록등본 무료발급'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부터 시작된 무료발급 서비스는 출생신고 후 1통을 무료로 발급하며 발급 수수료는 주민자치위원회 회비로 지원된다.

또 도·농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충남 서산시 음암면과 자매결연을 맺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 등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농산물 직거래 장터는 현재까지 세 번 열렸으며, 기능성쌀 등 7개 품목에 대해 2천200만원 어치가 판매됐다. 또 송현시장 배송센터를 활용해 택배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농산물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작년 9월에는 음암면 주민들을 초청해 주민행사를 열었으며, 지난 6월에는 송현동 주민들이 찾아가 친환경 감자캐기 체험행사에 참여했다. 또한 7월에는 아이들을 위해 음암면 '나비아이' 체험장에서 여름방학 일일생태체험교실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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