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의 마지막 도시, 칠레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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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서의 마지막 도시, 칠레 산티아고
  • 서진완
  • 승인 2017.04.0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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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작은아이 따라 칠레 박물관 투어!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남미에서의 마지막 일정, 칠레 산티아고


안데스 국경 ⓒ 서진완


안데스(Andes)산맥을 넘을 때 주변 경치를 꼭 봐야한다. 우리는 야간버스 대신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를 선택했다. 안데스의 설산이 눈앞에 펼쳐지자 버스는 국경에 도착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겉옷을 꺼내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추웠다. 세관원들이 버스 안에 실은 모든 짐들을 검색한 후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산맥을 넘어서자 주변은 황량한 대지와 눈 덮인 산 뿐이다.

칠레 국경을 통과해서 산티아고(Santiago)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버스가 산티아고 지역으로 들어서자 잘 정비된 고속도로가 시작되고, 차량통행이 많아졌다. 시내 중심광장에 미리 예약해둔 아파트호텔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숙소의 시설과 위치에 만족했다. 지금까지 배낭여행자 숙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머물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끼리 지내게 되니 상대적인 만족도가 더 크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한 동물이다. 역시 편안한 곳이 좋다.

숙소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을 찾았다. 아내는 물가동향도 살피고 필요한 식재료를 구하는 입장이지만, 아이들에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 칠레의 물가가 남미에서 가장 비싸다는 말을 들었는데, 슈퍼마켓에서 본 식재료 값은 인근 국가와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싼 듯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 물건 저 물건을 살폈다.

작은아이는 엄마 곁에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함께 있어주는데 반해, 큰아이는 엄마와 함께 슈퍼마켓을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번에는 엄마가 장을 보는 사이 지겨워하는 큰아이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떨 것 같니?” “글쎄요!” 이 녀석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제대로 된 식재료도 없고, 잠시 머무르는 상황에서 제한된 음식을 할 수밖에 없지만, 아내는 항상 미안해하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렇게 일정기간 독립된 공간에서 우리만 머무를 수 있는 곳이라면 아내는 여지없이 실력을 발휘한다. 아이들도 식탁에 차려진 특별요리와 어울리게 와인을 준비하고 음료수를 따랐다. 그리고 건배! 이것이 바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닐까 싶다. 살이 쪄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어디에서 듣던 소리인데… 다함께 웃는다.


‘하고 싶은 공부’를 했으면

큰아이는 어제 하루 종일 수능 관련 뉴스를 보더니, 아침 침대에서 나와 “이제 수능이 끝났어요!” 한다. 아무리 부담 갖지 말라고 해도 “제 일이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고등학생으로서의 부담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침에 New York Times에 실린 사설(Asia’s College Exam Mania, Nov. 6, 2013)을 읽었다. 이렇게 힘들게 대입시험을 준비해서, 오직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학생들을 매일 대하는 나로서는 이 사설에 더 눈길이 갔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 자신이 가고 싶었던 바로 그 대학이기에 행복하게 더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사설에서 한국에서는 수능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온 것을 강조하면서, 이로 인한 경쟁으로 젊은이들과 그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 고교생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교육기회가 확장되었지만 경쟁은 더 심해지고 있다면서 대학입시가 일자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결혼까지도 결정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더 나아가 역설적이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입시시험을 치르고 나면 대학생들은 열정적인 사고와 독서, 쓰기 등을 하지 않는다면서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이런 융통성 없는 입시 제도를 없애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하는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의 수능은 ‘잔인하고(brutal), 미친 듯하며(maniacal), 그래서 말도 안 되는(ridiculous)’ 시험제도로 비춰지고 있다.


발파레이소 광장에서의 우리 가족.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 서진완

큰아이에게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해 왔다. 비록 수능을 잘 못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번 보는 수능, 어쩌다 컨디션이 나빠도 어쩔 수 없는 수능 때문에 포기하고 실망하는 친구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페이스북에 아이들이 시험을 망친 것 같다는 얘기가 많이 눈에 띄었다. 입시에 민감한 부모들의 한탄도 섞여 있다. 이러니 잔인하고, 미친 듯하며, 말도 안 되는 시험제도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칠레 대통령궁,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며
 

숙소 인근의 언덕을 오르며 ⓒ 서진완
 
작은아이의 안내에 따라 숙소 근처에 있는 언덕(Cerro Santa Lucia)에 올랐다. 산티아고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옛날엔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언덕 꼭대기에는 교회와 함께 전망대가 있고 올라가는 계단이 여러 곳으로 이어져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다.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면 아기자기하게 정원, 연못, 분수도 있어서 시내 중심가에서 산책삼아 이곳을 찾아도 좋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이 언덕은 마치 북경의 자금성 앞에 인공적으로 쌓아놓은 경산공원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언덕에서 이어지는 국립도서관 앞에는 작은 벼룩시장이 섰는데 장신구 등을 파는 사람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몰려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일은 어디에 갈 생각이니?” “La Moneda Palace” 작은아이는 자신 있게 대통령궁을 추천했다. 어느새 우리는 작은아이에게 남미에서의 대부분 볼거리를 맡기고 있다. 여전히 설명도 부족하지만 본인이 책임감을 갖고 하겠다니, 그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아내가 식탁위에 한식으로 아침을 준비해 놓았다. 매일 빵과 커피를 대하다 우리식 아침식사를 보게 되니 참으로 반갑다. 식사를 마친 후 큰아이는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이 설거지 담당이라며 흥얼거리며 손을 걷었다. 남은 우리들은 나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대통령궁(La Moneda Palace)은 피노체트, 아옌데 등 칠레의 대통령이 업무를 보던 곳이라는 작은아이가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칠레의 역사에서 이 두 대통령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부가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산티아고 대통령궁 앞에서 ⓒ 서진완

시내에는 사람들로 붐벼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상파울로 보다 더 활기차다. 대통령궁으로 가는 길마다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찰의 닭장차 같은 버스와 장갑차 같은 특수차량도 보였다. 무엇 때문인지 가늠할 수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궁 앞 넓은 광장에 칠레 국기가 여럿 게양되어 있고, 광장 주변에는 관공서로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황토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광장 주변에도 배치되어 있고, 대통령궁 정문에는 황토색 바지에 흰색 상의제복을 입은 경비병들이 서 있다. 갑자기 주변에 사이렌소리가 울리자 경찰들이 이곳저곳으로 이동을 시작했고, 우리는 직감적으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궁 앞에 섰다. “Rain over Santiago” 1973년 9월 11일 화창한 봄날 칠레 국영라디오방송에서 말한 일기예보를 떠올렸다. 이 일기예보는 사실 쿠데타 작전개시를 알리는 암호였고, 이에 피노체트는 이곳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선거를 통해 칠레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던 아옌데 대통령은 끝까지 이곳에서 저항하다 삶을 마감했다. 아옌데 정권의 국유화조치로 인해 당시 칠레는 미국의 반발을 샀고, 미국은 피노체트를 지원함으로써 이후 17년간 군사독재시절을 맞았던 이곳은 칠레의 비극적인 역사가 서린 곳이다. 


산티아고 시내의 경비가 삼엄했다. ⓒ 서진완


큰 길을 따라 숙소방향으로 걸었다. 거리마다 늘어선 가게들은 화려하고,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걷는 거리를 따라 걸었다. 이 거리는 산티아고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으로 이어졌다. 화려한 이 광장 끝에는 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 솟은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성당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순간 엄숙한 분위기가 압도한다. 아내는 지금까지 남미에서 들렀던 성당 중에서 가장 장엄한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같은 느낌이다. 성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건함이 온 몸을 감쌌다. 광장에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부터, 뭔가를 주장하고 이를 경청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늘이 무슨 집회를 하는 것인지 앞에서 보았던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거리를 걷기에 날씨도 좋고, 다양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많아서 이국적인 볼거리도 풍성했다.

“너무 조금 남았어!” 아내가 매일 남은 여행 날짜를 생각하며 하는 말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265일 되던 날부터 앞으로 100일을 남겨두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남은 날짜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저녁에 식사할 때마다 건배를 하면서 오히려 매일 줄어드는 날짜에 의미를 부여하니, 싫다는 아내의 모습과 놀리는 아이들을 보고 웃을 수밖에 없다.

저녁 늦게까지 아내와 이곳에서 구한 세 종류의 치즈를 놓고 와인 잔을 기울였다. 저렴하지만 맛있는 와인과 치즈를 이렇게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마셨다. 멘도사부터 맥주 보다는 와인을 사는 것이 훨씬 저렴해서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와인을 마시자고 했다. 이러다가 한국가면 그동안 먹었던 치즈와 와인을 아쉬워할 것 같다.


작은아이의 가이드로, 박물관 투어!


아르마스 광장 ⓒ 서진완

작은아이는 일요일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며, 박물관으로 안내했다. 아르마스광장에 있는 안내센터를 들러 지도를 구했다. 그리고 가장 입장료가 비싼 박물관(Museo Chileno de Arte Precolombino)을 찾았다. 광장에는 거리예술가들이 행위예술을 하고, 걸인들은 벤치에 누워있고, 떠들고 싶은 사람들은 뭔가 떠들고, 한쪽에서는 음악공연을 준비하는 등 광장 전체가 산만하면서도 살아있다.

역사박물관(Museo Historico National)에서 작은아이는 간략하지만 역사박물관에 대해 설명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조사해서 우리들에게 설명하려는 그 노력이 고마웠다. 아이는 멕시코에 이어 남미에서도 자신이 가이드를 하겠다고 자처를 했는데 자산의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찾은 자연사박물관(Museo Nacional Historia Natural)에서도 작은아이의 안내대로 움직였다.


자연사 박물관 앞에서 ⓒ 서진완


작은아이는 이곳에 백 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자연사박물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작은아이를 위해서 모두들 열심히 둘러보았다. “동생과 저는 너무 적성이 달라요!” 큰아이는 과학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에 갔을 때 동생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저는 과학에 관련된 일은 신기하고 좋아요!” 그럴 때마다 작은아이의 표정은 정말 밝아진다.

햇살이 따스한 광장에 앉았다. 아내가 흘린 빵조각 때문인지 비둘기들이 주변에 몰렸다.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자 더 많은 비둘기들이 몰려들었다. 지하철역으로 돌아오자 바로 앞에 또 다른 현대식 건물(Museo de la Memoria)이 보였다. 어떤 건물일까 궁금했지만 어디에도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곳을 향해 그냥 걸었다.

독특한 현대식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까이 가자 넓게 펼쳐진 광장은 더욱 이색적이다. 건물로 들어가 전시된 그림을 보았다. 이곳은 바로 피노체트 독재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권 침해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곳, 기억에 대한 박물관(Museum of Memory & Human Rights)이었다. 우연히 찾았지만, 이곳은 아이들에게 독재가 남긴 이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우리의 역사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티아고 시내는 언제나 흥겹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성악가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기도 했다. 내가 바리톤 한 명과 두 명의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를 정신없이 듣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즉석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스프레이로 그리는 그림을 열심히 감상했다. 가지고 갈 수 있다면 그 그림을 사고 싶다고 했다. 거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다.


언제나 흥겨운 산티아고 시내의 모습 ⓒ 서진완

또 다른 거리 한편에는 피아노가 한 대 서 있고, 그 피아노에는 “Play me, I’m Yours.”라고 적혀 있다. 피아노를 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피아노 연주를 즐길 수 있다. 나도 한동안 그곳에서 멋진 피아노를 치는 어린 친구의 연주를 들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폈다. "내일은 늦게까지 자게 해 주세요” 둘의 요청을 받아들여 깨우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정말 늦게 일어났다. 그 덕분에 모두 아침을 겸한 점심을 함께 했다. 작은아이에게 오늘 일정을 물으니,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휴식이요!” “이런…” 아내의 반응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 재래시장(Mercado Central de Santiago)을 가보자고 했다. 아내도 살 것이 있고, 작은아이 샌들도 하나 구해주었으면 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북쪽 방향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온 길과 달리 서민적인 냄새가 나는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작은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홍색 샌들을 샀다. 아내는 털실가게에 들러서 예쁜 뜨개질용 털실을 구했다. 손으로 뜬 작은 뜨개질 소품은 여행기간동안 만나거나 도와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줄 때마다 받는 사람이 너무나 고마워해서 아내는 미리 털실을 준비해 왔다. 이곳 숙소에서 청소를 하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도 아내는 잊지 않고 털실로 만든 소품을 선물했다. 이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들의 웃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큰아이도 청바지와 반팔 셔츠를 구입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큰 아이는 새로 산 옷을 다시 한 번 입어보았다. "잘 생기고 멋지다!" 아내의 평가를 자기도 듣고 싶은지, 옆에서 작은아이는 새로 산 샌들을 신고 잔뜩 폼을 잡았다. “우리 딸 예쁘다!” 역시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발파레이소와 비나델마르에서 칠레를 마감하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아침준비에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까지 만드느라 분주했다. 오늘 하루 발파레이소(Valparaiso)에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발파레이소는 산티아고에서 190km 떨어진 태평양 해안에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았던 집도 찾았다. 그의 문학적 영감을 주었던 이 곳은 언덕 위에서 발파레이소 시내와 항구 전체가 보인다. 특히 그의 서재에서 바라다보는 전망은 너무나 훌륭해서 이런 곳에서는 공부보다는 와인을 놓고 벗들과 얘기꽃을 나누는 장소로 최적일 것 같다.


발파레이소 ⓒ 서진완


발파레이소는 해안가 주변을 제외하고 대부분 언덕이 많고, 가파른 언덕 위에 계단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일본의 나가사키와 내가 태어난 부산과도 비슷한 항구다. 이렇게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한 집은 전망은 좋을지 모르지만 이곳까지 오르내려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든다.

언덕에서 항구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미국의 골드러시 시기(1848~1858)에 미국과 유럽을 드나드는 배들의 중간기착지로서 전성기를 맞았다고 한다. 언덕에 세워진 집, 가파른 언덕위로 올라가는 리프트, 그리고 19세기의 지워졌다는 각종 건축물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유럽문화가 이곳에 전해진 결과이고, 이들은 교회와 학교 등을 자신들의 나라 형식으로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이 이곳 건축물에 독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한다.

200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한 이곳 거리 곳곳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낡고 칠이 바랜 소박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힘겹게 이민생활을 했던 유럽의 이민자들이 살았던 그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항구로 내려오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어지럽히고 좁은 골목길과 건물 벽은 각종 벽화로 칠해져 있어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했다. 건물들 사이로 조금 전에 보았던 가파른 경사면에 들어선 집과 그 사이를 오고가는 리프트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광장의 모습은 남미의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가파른 언덕위에 서 있는 집들과 조화를 이루며 발파레이소만의 특징을 만들었다.

버스가 발파레이소 시내를 빠져 해안가를 달리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느낌의 깨끗한 해변도시가 나타났다. 비나델마르(Vina del Mar)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도시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조금 전의 발파레이소와 너무나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훨씬 깨끗하고 잘 정리된 것으로 보아 심각한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다.


폰크박물관과 모아이 석상 ⓒ 서진완

해변도로를 따라 잘 정리된 해변에 서자 높은 파도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백사장에 선탠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시내에는 폰크박물관(Museo Fonck)에서 이스터(Easter)섬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모아이(Moai)석상을 볼 수 있다. 이스터섬이 행정구역상 발파레이소주에 속하기 때문에 이곳 기념품가게에서는 이런 석상을 테마로 한 각종 기념품들이 많다.

이곳 비나델마르 언덕 위로 올라가면 발파레이소가 멀리 보이고, 눈앞에 비나델마르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정말 장관이다. 남미에서 보는 마지막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자 더 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를 떠나며


이제 남미를 떠날 때가 되었다. ⓒ 서진완

아파트 창을 열었다. 멀리 안데스산맥이 보인다. 아내와 그동안 남미에서 보냈던 곳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아내와 와인을 한 잔하고 나서 보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아이들에게 자라고 하고 우리도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이외로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뒤척였다. 이제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버스를 타고 오면서 아내와 얘기했지만 남미에 대해 막연한 설렘에서 여행을 시작했는데, 이제 남미를 떠날 때가 되고 보니 남미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남는다.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펴보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도 침대에 올랐다. 아내는 벌써 깊은 잠에 빠졌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지 않았던 현대미술관을 들러 아르마스광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시 성당에 들어갔다. 아내는 성당 안 의자에 앉아 기도를 올렸다. 어느 곳에서나 같은 성당을 두 번씩 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곳 성당은 아내도 마음에 들어 했다. 평소보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기도했다.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함 때문에 아내는 이번 남미여행을 통해 많이 놀라고, 많이 좋아하고, 많이 힘들어 했다.


아르마스 광장 성당 내부 ⓒ 서진완

성당을 나오자 햇살이 눈부시게 비쳤다. 이름 모를 남미특유의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거리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그 뒤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리듬에 맞춰 조금씩 엉덩이를 흔들고 있다. 이들 모두가 자연스럽다. 트럼펫의 경쾌한 멜로디와 기타 반주 그리고 더해진 타악기 소리는 가슴을 움직인다. 처음 들어본 음악이지만 나도 저들과 함께 어깨 정도는 흔들 수 있겠다 싶다.

아내와 나는 이 나이에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은 배낭여행을 이번 세계 일주 기간 동안 마음껏 하고 있다. 페루의 리마에서 시작한 우리의 남미 배낭여행은 볼리비아,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거쳐 다시 아르헨티나를 통과해서 이곳 칠레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남미여행의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있다.

전체 여행일정에서 보면 317일을 보냈고, 남미에서만 72일을 보냈다. 건강하게 지금까지 여행을 잘 해준 아내가 너무나 고맙다. 묵직한 배낭을 다시 메고 지하철에 올랐다. 아내의 말처럼 언제 다시 이곳 산티아고를 찾아올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다. 다시 산티아고 공항행 버스를 타자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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