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 선생의 향기, 간절한 마음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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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 선생의 향기, 간절한 마음으로 전합니다”
  • 곽현숙
  • 승인 2017.12.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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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우문국 50년 예술세계’ 와 ‘결혼 방명록’ 전시 / 곽현숙 아벨서적 대표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 길'에서 아벨서점 주최로 ‘한 권의 책’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 전시는 평상시 볼 수 없는 책을 선정하고, 그 책 전체를 복사해 그 내용들을 드러내어 전시합니다.

 

‘한 권의 책’ 전시는 조선 총독부에서 나온 ‘조선어 독본’을 시작으로 해서 ‘순종 장례식 도록’ 조봉암 저서 ‘우리의 당면과업’ 등으로 이어져왔으나 최근 여러 사정으로 중단 되었습니다.

 

이번 7회 전시에는 1998년 6월, 고여 우문국 회고전의 도록입니다.  큰 아드님인 우경복 선생께서 기증해주신 것입니다.  ‘배다리 관통도로 폐기를 위한 천막 집회’에서 매일 만나는 강철 선생에게 책 전시 계획을 말하니 반가워하며 자신이 총무로 있는 문화사랑 회원들께 알려서 작품 5점을 협찬받아 작은 미술전 까지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잇다 스페이스' 관장의 조언을 받아 전시공간을 다시 대폭으로 바꾸면서 미술작품도 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12월9일에는 고여 선생의 제자이신 ‘문화사랑 회’(이기덕 회장이 꾸리는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에 조문환의원 원장님께서 스승을 회상하는 말씀으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말씀 중에,

“선생님 댁에 갔는데 동덕여대생들이 배우고 있었어요. 붓에 먹을 엷게 먹이셔서 화선지에 보일 듯 말 듯 먹이시고, 마르기를 기다려 또 한 번의 붓을 먹이십니다. ‘선생님 무슨 그림 그리는게 이렇게 흐릿합니까?’ 물으니, '그래 보여도 나중에 보면 알게 돼'라고 나직이 말씀해 주셨는데, 살아가면서 붓질과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들 속에 드러나는 선생님의 그림이 4차혁명을 이야기 하는 이즈음에 들어서서 왜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에 전시된 동양화들이 기다림의 德과 드러남의 美로 가슴에 들어섭니다.

 

책 속에는 이경성 시립박물관 관장님과 김길봉 문화원장님, 김인환 조선대 교수 겸 미술평론가 분들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속엔 인천 문화의 중심에 계신 분들이 호명되며 고여의 그림세계가 이어집니다. 검여 유희강 선생의 글에는 죽림에 마주 선 두 분의 교분이 담백하게 드러나 어디서도 보기 드문 글들로 지면이 빛납니다.


<아벨서점 시다락방을 방문한 고여 선생 사모님과 큰 아드님>

자제 분 들과 88세이신 고여 선생의 사모님도 방문하셔서 “고여 선생이 좋아할 만한 곳에서 전시가 되어 좋다”고 위로해 주십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미술사를 연구하시는 홍대 이애선 학예사가 전시장에 들어서서 전쟁 전, 후 경주예술학교 시절의 고여 선생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시며 가족들이 다 모르는 선생에 대한 이야기와 가족에게도 궁금한 이야기를 묻습니다.

 

그리고 큰 따님인 우선덕 작가가 선생의 결혼 방명록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결혼식 방명록에는 소설가, 시인 미술이 서예가 작가들의 직필 축하 글과 그림이 있다고 하는 데, 그 말에 한권의 책으로 드러내 이번 전시와 함께 보면 좋겠다고 청하니 식구들만 보기는 아깝다고 흔쾌히 허락하십니다. 이틀 후 우경복 선생으로부터 받아 든 방명록은 한서처럼 묶은 노란 표지에 표제 칸은 파란색으로 비어있었습니다. 한 장 넘겨보니, 빨간 색지에 축 결혼 1950년 12월 1일 이라고 쓴 글 밑에 대단한 작가 분들의 싸인이 빼곡합니다. 그 다음 장을 여니 김동리 소설가의 따듯한 글과 함자가 노란 색지에 붓글씨로 적혀 있고. 다음 장엔 서정주 시인 순으로 이어집니다... 유희강 서예가의 글도 보이고... 나뭇가지에 참새도 축하 그림이군요.

 

아동문학가 김구연 선생께서는 우문국 선생을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고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도 편안하신 어른이셨다고, 이젠 그런 어른을 찾아볼 수가 없는 세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약력에는 1회 문화원장 3회 시립박물관장을 지내셨고,

17번의 개인전

60번의 초대전과 단체전,

75편의 집필 및 수필.

‘나와 인천’이란 글,

- 네모난 단층집 방이 ㅁ자로 둘러있고 음악실에선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남향한 몇 개의 방은 상설 화랑으로 국내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랑 밖은 반은 노천으로 되어있어 이곳에 앉으면 우거진 노송 사이로 월미도와 오고가는 범선의 돛대가 보이고 선창의 소란한 음성 따라 비린내가 풍겨왔다.- 

에서는 1946년에 보신 올림포스 호텔 자리에 있었다는 ‘시립 우리예술관’ 모습을 그려내십니다.

 

나중에 찾아오신 막내아드님 우경원씨. 이 한 권의 책을 만들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넉넉지 못한 돈으로 책을 편집하고 자료 수집하고, 전문사진사가 그림 한 장 찍는데 5만원씩 이라 자신이 직접 찍어서 그림이 다 드러나지 못한 아쉬움을 이야기합니다. 300장이나 되는 그림을 다 넣지 못했다고. 그래도 6개월 동안 모든 일을 전폐 하더라고, 가족들도 책을 만들어가던 고충은 이해 할 수 없을 거라며 소회를 밝힙니다. 아버님과 많이 닮은 눈가에 단내 나는 노고의 흔적이 회상으로 반짝입니다.

 

한권의 책은, 존재의 빛을 빚어간 사실(삶)을, 그림으로 글로 표현하며 기록한 소산을, 다시 곱게 모아 영혼을 일깨우며 잉태되어 다시 태어납니다.

한 장 한 장 펼쳐 전시를 하면서 책을 빚어낸 마음들이 아릿하게 느껴집니다.

 

고여 우문국 선생은, 격동의 100년을 삭여낸 깊고 온화한 그림과 글 속에서, 막내아드님의 손을 빌어 빚어진 한권의 책으로 배다리에 들어서십니다. 주최하는 이로서 글을 쓴 이유는 전시를 알림에 부족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시를 하면서 느낀 고여 선생의 성실의 향기를 한 모음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입니다.

 

12월 9일에서 31일까지의 전시를 2018년 1월 31일로 연장하여 방명록과 함께 전시하려 합니다. 매주 금, 토, 일요일 정오 12시부터 5시 반까지 엽니다. 


<고여 선생의 제자딘 조문환의원 원장(왼쪽)와 방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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