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대공원을 조성하며 백범 동상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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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대공원을 조성하며 백범 동상을 세우자
  • 신현승
  • 승인 2019.02.2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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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신현승 / 영종세계문화 회장·백운산대공원 추진위원장


<영종국제도시 송산공원에서 바라본 백운산>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동시에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너무도 뜻깊은 해이다.
 
높이가 255.5m, 넓이가 104만평인 백운산은 영종국제도시의 주산이요 진산으로서 내륙을 병풍처럼 에워싸며, 인천 앞바다에 우뚝 솟아 중국 대륙을 응시하고 있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 봉우리들이 훤하게 보인다. 영종국제도시(용유, 무의, 북도 포함)는 물론이고 인천,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영종국제도시의 명산임에 틀림없다. 이제 백운산도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이 나라는 물론이요, 전 세계인이 몰려오는 세계적인 공원으로 거듭날 채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지난 1월9일 인천광역시와 영종세계문화회가 세계적인 백운산대공원 조성을 위해 행정절차를 밟아나가 내년 1월까지는 백운산대공원 종합계획을 세워 전문기관에 용역을 발주하기로 합의했다. 백운산대공원이 영종국제도시와 더불어 인천 앞바다 팔미도의 등대같이 세계인을 위해 불을 밝히는 자유와 평화, 화합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본산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러한 백운산이 세계적인 공원으로 조성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분인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을 백운산대공원에 세우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한 배경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이유는 김구 선생이 이 나라가 해방되어 중국에서 환국하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영종국제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무의도에 오셔서 농민, 어민들과 소통하며 계몽활동을 하신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 소무의도, 무의도, 용유도, 영종도에서 독립운동자금을 거둬 비밀리에 김구 선생측에 보내준 것을 고맙게 여겨 답례로 방문하신 것이다.
 
둘째, 김구 선생이 일찍이 백운산의 내륙으로 병풍같이 둘러쳐진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의 품속같다고 술회하며 산의 앞쪽인 동남방향이 이 나라의 굉장한 명당터라고 점지하신 일이다. 김구 선생은 예전에 황해도 치아포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분개하여 일본인을 때려죽이고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조사를 받다가 모친 곽낙원 여사와 함께 보트를 타고 인천항을 향해 항해하신 적이 있다. 인천항에 입항하기 전, 김구 선생은 영종, 용유, 무의, 소무의도를 바라보며 경치에 반하시고, 백운산에 대해 말씀하시며 장차 인천 앞바다에 세계적인 도시가 들어설 것으로 예견하신 것이다.
 
이때 영종이란 지명도 백운산의 능선이 긴 마루같이 높고 아름답게 보여 불리게 된 것임을 깨달으셨다. 그리고 나서 인천항에 입항하여 인천감리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고문도 당하고 모진 징역살이를 하셨다. 징역살이를 여러해 하다가 탈옥하려고 결심하시고 결국 용감하게 결행하셨다. 이후 1911년 황해도 안악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서울에서 징역살이를 하다가 1914년 인천으로 이감되어 두 번째로 인천감리서에서 징역살이를 하셨는데, 징역을 살면서 인천항의 축항 건설에 동원되어 힘든 노동을 하셨다.
 
셋째, 백운산대공원을 조성하는 키워드가 자연생태공원(전체) 문화공원, 평화공원, 통일공원, 만국공원 등인데, 김구 선생이 역설하는 철학과 소신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선생은 일찍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부강한 독립국가를 만듦과 동시에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하셨고, 이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역설하시며 전 세계인의 하나됨을 역설하셨다.

 


<신현승 백운산대공원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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