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내가 인천의 모 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나는 내 또래이고 나와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H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H 선생은 감정이 풍부하고 솔직하며 정이 많은 분이였다.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울기도 잘 하였다. 그는 노상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나 과일을 팔고 있는 노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꼭 필요하지 않아도 한두 가지씩 팔아주곤 했다.
그 무렵 가족 중에 육아나 살림살이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여 선생님들은 대개 입주 가정부를 두었다. H 선생도 지인이 소개 해 주었다며 1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앵단이라는 아이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다. 그 아이는 거의 고아와 다름없었다. 글도 모르고 정확한 자기의 생년월일이나 부모에 대한 것도 잘 모르는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그러나 앵단이는 힘이 좋고 부지런하여 집안 청소며 빨래, 부엌 살림 등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말끔히 해 놓았다.
어느 날 H 선생은 오늘 아침에 앵단이가 준 것 이라고 하면서 편지 봉투 하나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H 선생은 그 전날 퇴근하고 난 후의 일을 들려주었다. 그녀가 집에 들어갔을 때 앵단이는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한 그녀에게 “아줌마 이거 하루 종일 닦았는데 아무리 해도 깨끗하게 안 돼요” 하며 희끗 희끗 하게 칠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내밀었다.
“아이구머니나!”
그건 H 선생님이 며칠을 벼르다가 월부로 산 데프론코팅 프라이팬이었다. 그 당시에는 바닥에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데프론코팅 프라이팬은 모두가 수입품으로 주부들에게는 거의 마법의 주방용구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누구나 한 개쯤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었다.
“아니 누가 널더러 이거 닦으랬냐?”
“……”
“이게 얼마짜리 인데……”
“……”
“내가 이거 사려고 얼마나 별렀는데……“
“……”
“뭘 모르면 물어보고 해야지……”
황당한 H 선생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큰 소리로 앵단이를 다그쳤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저녁 내내 앵단이 하고는 말 한마디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하는 그에게 눈이 퉁퉁 부은 앵단이가 “아줌마 이거…… 하면서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봉투 속에는 편지지 두 장이 들어있었다. 펼쳐 보니 거기에는 줄에 맞추어 연필로 꼭꼭 찍은 점이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편지지 한 장을 점으로 채우고도 서러움이 가시지 않았던가? 앵단이의 점 편지는 계속 이어져 편지지 두 장을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태운 것처럼 까만 프라이팬을 반짝 반짝 은빛이 나게 닦으려던 앵단이. 온종일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아픔을 참고 프라이팬을 닦은 앵단이에게 돌아온 아줌마의 무서운 꾸중이 억울하고 서러워 밤새 울면서 앵단이는 점편지를 쓴 것이다. 그 사연을 얘기 하면서 H 선생님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易地思之라는 말은 孟子의 이루(離壘) 下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 처지를 바꾼다 하면 모두 그렇다)”에서 유래하였다. 甲 과 乙의 관계에서 항상 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좀 더 따듯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내가 정년퇴직하기 직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여서 학교는 비교적 한가로운 분위기였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큰 길 쪽에서 우리 학교 학생 세 명이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주 가끔씩 선생님들이 월담하는 학생들을 데려다 지도하시는 걸 볼 때마다 도대체 왜 학생들은 몰래 담을 넘어 학교 밖으로 나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학교에는 구내식당이 있어 점심 저녁을 해결할 수 있고 작지만 매점도 있어 간단한 학용품이나 간식거리를 살 수도 있다. 게다가 양호실도 있으니까 몸이 안 좋으면 양호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약을 먹던가 한두 시간쯤 양호실에서 쉴 수도 있다. 꼭 외출할 일이 있으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외출증을 받아가지고 다녀오면 될 터인데 어째서 몰래 담을 넘어 학교 밖을 나갔다 올까? 나는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그 학생들을 교장실로 데리고 갔다.
점심시간에 몰래 밖을 나갔다 온 이유를 묻자 학생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저희들은 요즈음 학교에 오면 하루 종일 야단만 맞다가 집에 가요. 중간에 잠시라도 밖에 나갔다 오지 않으면 하루를 지내기가 정말 힘들어요…….” 하고 머리를 숙인다. 침울해진 아이들에게 ”아니 왜 종일 야단을 맞는데?“ 호기심을 갖고 나는 묻게 되었다. 시험 기간 중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존재감은 수퍼 乙이 된다는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시험에 출제 되었던 문제를 중심으로 수업을 하신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매 시간이 괴롭다. 이를테면, 1교시 수학시간에 선생님은 수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를 틀렸다고 학생들을 한심해 한다. 2교시 영어시간. 이번 시험에서 60점 이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반성하라며 훈계 하신다. 수학시간에 한심한 학생들은 영어시간에 또 한 번 자존심이 상한다. 3교시 화학, 4교시 국어, 5,6교시…… 기운없는 시간이 이어지다가 종례시간이 된다. 이때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학급평균이 다른 반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하시며 학급평균을 낮추는데 공헌(?)한 학생들은 미안하게 생각하라고 또 주의를 주신다. 선생님들은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도 하고 때로는 꾸중도 하신다. 그러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 시간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비슷한 말씀을 들어야 하니 괴롭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H 선생이 앵단이를 야단치기 전 그 아이의 얘기를 잠시만이라도 들어 주었더라면…… 또 선생님들이 몰래 월담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지도했다면 아니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시험철의 우수한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했다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나는 시험 철의 무기력한 학생들의 일상을 헤아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상처를 받은 그들이 반발해서 일탈행위로 번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곰곰 생각해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