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인천시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남숙, 인구, 연희, 영이의 구술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수필입니다.
남숙은 형우와 혼인하고 인천 송림동에 터를 잡았다. 그 당시 수도국산은 집이 한 채도 없고 처량했다. 다듬어 놓은 터만 있을 뿐이었다. 아래쪽은 땅이 비쌌다. 삼만원, 이만오천원, 이만원, 만오천원… 그렇게 싼 땅을 찾다보니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형우는 새벽에 흙을 버무려 놓고 일을 나갔다. 남숙은 틀 두개에 토담을 딛었다. 하루종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기 힘들었지만 벽돌 말리기에는 아주 좋았다.
한 번은 옆에 낮은 언덕 너머 터를 다듬는데 송장이 나왔다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남숙도 소문을 듣고 낮은 언덕을 넘어 그 곳에 가보았다. 꺼내놓은 널을 보자 너무나 무서워 소름이 돋았다. 다시 집 터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남숙은 동인천역 앞에서 여인숙을 하고 있는 동생 혜숙의 집으로 도망을 갔다. 혜숙은 남숙에게 "성 터 다듬어 놓은 데서는 안나왔잖아 괜찮아 성" 하면서 안심을 시켰다. 혜숙은 남숙을 항상 "성"이라고 불렀다.
널은 곧 주인을 찾았다. 전쟁 때 총에 맞아 죽은 열아홉 먹은 딸을 묻을 데가 없어서 거기 묻었다고. 곧 찾아가더라는 소문이 언덕 너머 남숙의 귀에도 전해졌다. 그 뒤로 자꾸 땅이 나가면서 집이 지어졌다. 그래서 동네가 있게 되었다.
"추억이 상당히 깊은 집이야 그게"
남숙과 형우는 송림1동 181번지에서 2남1녀를 낳아 키웠다. 세 남매는 송림초등학교를 다녔고, 송현교회에서 성가대를 했다.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제법 잘 했다. 특히 딸 도영은 소프라노 음색이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느날 도영이 집에서 기타 반주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날 따라 남숙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남숙은 도영에게서 기타를 냅다 뺏어 마당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딴따라는 절대 안돼" 도영은 밤새도록 울었다.
맏아들 인구는 시은고등공민학교에서 학급회장을 맡을 정도로 영특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용돈을 모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였다. 10살 때 처음으로 현대극장에서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를 보았다. 인구는 이 날을 잊지 못했다. 이후 미림극장, 애관극장, 문화극장, 동방극장, 키네마 심지어 서울에 대한극장까지 가서 영화를 봤다. 거의 혼자 가서 영화를 즐겼고, 그냥 영화가 좋았다. 영화 감독이 꿈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집이 가난해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시계 케이스 공장에서 조각 기술을 익히고는 가구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만지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즐거웠다.
연희는 소개 받은 남자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는 글도 잘 쓰고, 항상 연희의 가족을 걱정하고 챙겼다. 예의바른 말씨에 호감이 생겼고, 편지 봉투에 담겨온 인구의 사진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했다. 하루 빨리 그를 만나고 싶어 경상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금호동에 있는 이모집에 올라왔다. 연희와 인구는 서울과 인천에서 데이트를 했다. 연희가 경상도 집에 내려가지 않는 날이 길어지고 있었다. 동생들과 집안일을 잘 챙겨오던 맏딸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아버지가 소리소문도 없이 서울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대뜸 "도시 남자는 믿을 수 없다"라며 약혼식부터 올리라고 했다.
연희와 인구는 동인천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송림1동 181번지에 살게 되었다. 그 때 그 집에는 4가구 총14명이 살고 있었다. 인생의 고비가 닥칠 때마다 자식과 보따리를 짊어지고 "성~"을 외치며 대문을 열고 들어 온 남숙의 동생들이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화장실은 마당 끝에 하나 있는 게 전부였다. 나무 발판에 두 발을 대고 쪼그리고 앉아 변을 누면 저 밑에서 다른 오물과 함께 섞이는 소리가 들리는 조그마한 변소였다. 매일 똥을 섞으며 지지고 볶고 사는 수도국산 라이프가 연희에게 시작되었다.
연희는 동네 여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뒷산에 여럿이 몰려가 쑥도 캐고, 쑥떡이니 쑥버무리니 같은 것들을 해먹었다. 여름에는 고추 말린다는 핑계로 새벽까지 골목 가로등 밑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화투도 치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한 집에 모여 볼펜, 빗, 라이타, 악세서리를 만드는 부업을 하다가 어느 날에는 현대시장에서 도라지를 가져왔다. 아침에 가져와서 낮에 까가지고 저녁에 사람 몰리기 전에 갖다주면 돈을 꽤 받았다. 그 돈으로 무 사고, 파 사고, 콩나물 사고, 생선까지 사도 남을 정도였다. 연희가 동네 여자들과 어울리는 동안 연희의 딸 영이는 눈에 보이는 언저리에서 동네 여자들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영이는 비오는 날이면 꼭 우산을 갖고 집 밖으로 나갔다. 달팽이를 잡으러 간다고 했다. 영이는 인구의 러닝샤스 종이상자 같은 데 달팽이와 초록색 풀잎을 넣어두고는 투명필름이 있는 덮개를 덮어두었다. 달팽이가 지나가 촉촉해진 바닥을 보는 것도 좋아했고, 달팽이 눈을 찔러서 긴 눈이 짧아지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달팽이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연희는 영이가 잡아오는 생명체들을 대체로 집에 둘 수 있도록 해줬다. 달팽이, 잠자리, 올챙이, 개미 등. 하지만 한 가지 연희가 허락하지 않는 동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송림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이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영이는 학교 앞에서 파는 연노랑색 털에 까만 눈을 달고 짹짹거리는 병아리를 두마리 사왔다. 그 날 연희는 호되게 다그쳤고, 영이는 울면서 학교까지 되돌아갔다. 병아리 두마리를 되돌려주고 집에 와서도 계속 울었다. 그런 영이를 달래준 건 영이의 할머니 남숙이다. 남숙은 영이의 손을 잡고 현대시장에 갔다. 현대시장에는 병아리도 닭도 아닌 것이 참 많았다. 병아리보다 몸집이 있고, 갈색 털이 자랐고, 날개를 퍼덕이려고 노력하고, 튼튼해보이는 어린 닭들이었다. 남숙은 이것들을 중닭이라고 부르며 두 마리 샀다. 집에 도착해서는 쌀을 빻아 중닭에게 모이로 주었다. 영이의 아빠 인구는 나무로 된 사과 괴짝으로 중닭들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중닭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 닭이 되었다.
인구가 영이에게 말했다. "닭이 다 자랐어" 라고. 우리는 이제 닭을 계속 키울 수 없다고 했다. 영이는 계속 닭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영이는 이별이 아직 어려운 나이였다. 인구는 집 마당에서 직접 닭을 잡았다. 영이는 울었다. 밤새 울었다. 키운 닭을 먹는 인구와 연희를 원망했다. 그리고 다시는 병아리도 중닭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식의 이별은 싫었기 때문이다. 영이가 인구와 연희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이는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를 생각한다. 남숙도 인구도 연희도 그 곳을 떠올린다. 남숙은 백세가 가까워져 가끔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고, 또 가끔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나기도 한다. 이제는 "성~"하고 불러주는 동생이 없어 그 단어가 잊혀질까 두렵기도 하다. 인구는 그런 남숙의 숟가락 위에 가시를 바른 생선 한도막을 올려드린다. 그리고는 "꼭꼭 씹어드세요"라고 말한다. 영이는 그런 인구를 이십년 넘게 매일 밥상자리에서 봐왔다. 그래서 인구가 없을 땐 영이가 고기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남숙 앞에 놓아드린다.
영이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송림1동 181번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영이는 그 곳에서 10년도 살지 않았다. 살아온 시간으로 따지면 영이보다 연희가, 연희보다 인구가, 인구보다 남숙이 그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영이는 어쩐지 연희와 인구와 남숙이 송림1동 181번지에서 살아온 모든 시간을 합한 시간만큼이나 그 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영이는 남숙과 형우가 손수 만든 흙집의 냄새라던지, 연희와 함께 현대시장에서 장을 봐 집까지 올라갈 때마다 힘들어서 내뱉던 숨과 투덜거림 같은 것, 누런 구데기 같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깊고 어두운 화장실의 냄새와 무서웠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름밤 연희의 무릎을 베고 누워 동네 여자들의 비밀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었고, 영이는 때로 연희의 마음이 보인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음에 이는 감정을 오래 기억하려고 영이는 글을 쓴다. <송림1동 181번지> 연극에는 남숙의 목소리가 나온다. 남숙의 딸 도영이 노래를 부른다. 연희가 들기름을 부어 부침개를 굽고, 앞집 성영이 엄마를 초대했다. 뚱아줌마도 덜렁이아줌마도 구남이할머니도 지수엄마도 초대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기도 하고 또 이제는 많이 죽었기도 하다. 집이 있던 자리에는 박물관이 생겼고, 극장도 신신예식장도 문을 닫았다. 영이와 남숙과 인구와 연희는 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제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송림1동 181번지에서 살아온 시간동안 몸에 베여버린 냄새, 습관, 행동, 마음, 정서 같은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관객들과 나눈다. 같이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자꾸자꾸 이야기를 한다.
**
필자는 남숙이 인천 와룡소주에서 노동했던 경험에 상상을 더해 <소주병뚜껑과 소주병>을 쓰는 중입니다. 인천 와룡소주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은 buntassi@naver.com으로 연락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