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은 코로나 대비 생활이 봄철이라는 계절과 씨름을 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와 교육, 의료에 점점 민감해지고 있다. 2주 후의 국회의원 선거까지 앞두는 등, 우리 사회는 다발성 과제를 안고 있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잘 견뎌내고 있다. 2m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더불어 사회적 모임 자제라는 강력한 권고사항은 낮의 불을 잊고 온라인으로 퍼져 가라며 시민들을 밀치고 있다. 이미 4월 개학은 온라인 개학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예술표현행위조차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는 가운데 답답한 실내에서 향유할 수 있는 ‘건강예술’이라는 개념이 생길 법도 한 시국이다.
그리 멀지 않은 섬, 무의도를 찾았다. 가는 길 자체를 즐길 목적이 컸으나 잠시 섬 한 바퀴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의 투망을 던졌다. 작년 무의대교가 개통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의 자연’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종도 거잠포에서 잠진도에 이르는 제방 비포장길(공사 중)을 지나 무의대교를 건너면 비로소 대무의도에 들어선다. 다시 좁은 왕복 2차로 길을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가다 보면 광명항에 닿고 무의인도교를 걸어 소무의도에까지 당도할 수 있다. 연도교가 생기면서 당연한 기대였겠지만 길 양옆으로 길을 넓히려는 시도와 함께 상점과 숙박시설을 세우는 공사 현장이 눈에 많이 띄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외지인들의 폭발적인 방문이 낯설게 느껴질 섬 주민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그 낯선 얼굴이 돈 구실을 하니 자식보다도 타지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는 건 아닐까 생뚱맞은 계산을 했다. 섬의 여건상 공터가 많지 않은 관계로 자동차들은 피할 수도 없이 자신의 목적지로 쭉~ 가야만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다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는 필수! 다만, 곳곳에 화장실이 많이 설치되었어도 손 씻을 물은 전혀 나오지 않아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바닷물에 씻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봄이라고 떠들기엔 조심스러운 날이다. 그런데 무의 자연은 봄을 틔우고 있었다. 절벽 사이에서도 연분홍 진달래와 개나리가 조금씩 피었고, 소나무로 위장한 작은 산은 푸르른 마음을 수줍게 기지개 중이다. 작은 어촌마을의 풍경이 짙게 남아 있음이 포근한 봄의 기운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초록 1번 마을버스는 왜 그리 반가울까? 강아지와 고양이들도 섬의 한 풍경인 가운데, 저쪽에서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농어가 꼬리를 흔들며 자리 소개를 한다. 팻말에 “제 이름, 자연산 농어예요.”
소무의도에는 바다누리길이 조성되어 섬 한 바퀴를 다채롭게 거닐 수 있었다. 광명항에서 소무의도로 진입하려면 무조건 걸어야 하니, 그야말로 건강루트가 따로 없다. ‘8’ 자 형태를 머리에 새기고 누리길을 따라 사색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몽여해변에 있는 소라 형태의 섬 이야기 박물관은 방치된 듯 보여 매우 아쉬웠다. 흙길, 백사장길, 돌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허기가 귀가하는 저녁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썰물과 같이 사람들도 빠져나가고 섬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가 싶었지만, 두리번거리니 숙박업소 야외 테라스에서 동시로 고기를 굽는 시간이었다. 한편, 관광객들이 들어찬 풍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늦게까지 경운기로 밭을 일구고 있는 어르신이 저 멀리 보였다. 실미도 해수욕장 일대에 무의쏠레어 리조트 개발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지만, 나는 자연에 장단 맞춰 밭을 일구고 가꾸는 어르신의 경작 사업에 마음이 좀 더 쏠리는 게 사실이다.
저녁과 동시에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리고 섬을 빠져나가는 차들로 좁은 2차로 길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느껴졌다. 순식간에 보고 느끼고 돌아온 드라이브 스루 유람이었다. 그리고 4월의 첫날, 거짓말처럼 코로나19가 사라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