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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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인상
  • 김선
  • 승인 2020.08.18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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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읽기]
(2)이방인- ㉓가족화된 심문과 내집이 된 감방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C’est fini pour aujourd’hui, monsieur I'Antéchrist.”

오늘은 끝났습니다. 반기독자 양반

 

  판사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뫼르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당신처럼 고집 센 사람은 처음 본다며 중얼거린다. 판사의 기준일 뿐이다. 자신 앞으로 온 죄인들은 고뇌의 형상을 보고 모두 울었다는 판사의 말에 뫼르소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뫼르소는 그들이 모두 죄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러나 뫼르소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차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때 판사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심문이 끝났음을 의미한 듯했다. 일어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다. 판사는 여전히 피곤한 표정으로 뫼르소에게 당신이 행한 일을 후회하고 있냐고 묻는다. 뫼르소는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한다. 후회와 귀찮음을 등가로 두는 묘한 뫼르소는 판사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판사의 같은 인상을 받았을 것 같다. 그날의 일은 그것으로 그치고 더 진전되지 못했다.

  그 뒤 뫼르소는 여러 번 예심판사를 다시 만났다. 만날 때마다 뫼르소는 변호사를 동반했다. 이야기는 뫼르소가 지난번 한 진술의 어떤 점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히도록 하는 정도였다. 해소되지 않은 지점이 해소될 수 있다는 판사의 신념이 엿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판사는 변호사와 수임료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변호할 대상이 잠시 사라진 느낌이다. 그럴 때면 그들은 뫼르소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째든 차츰차츰 심문의 방식이 달라진다. 심문의 방식이 변하는 것이 뫼르소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판사는 더 이상 뫼르소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사건을 매듭지어 버린 것 같았다. 암울한 결말의 서막인가? 판사는 뫼르소에게 다시는 하느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뫼르소는 첫날처럼 흥분한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 결과 대화는 더 화기애애해 진다. 화기애애함이 누군가에게는 화기애매함일 수 있는데 그 미묘한 지점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 같다. 몇 가지 질문이 있고 변호사와 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심문은 끝나는 것이다. 뫼르소의 사건은 판사의 말에 따르면 착착 진척되어 가고 있었다. 판사가 원하는 진척에 뫼르소는 착착 밀려들어 가고 있다.

  이따금 대화가 일반적인 내용일 때면 뫼르소도 한 몫 끼곤 했다. 이미 밀려들어 가 말려들어 가는 지경까지 가는 것 같은데 보는 이와 다르게 뫼르소는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무도 뫼르소에게 고약하게 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순조롭고 소박하게 진행되어 뫼르소는 가족들 사이에 끼여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인상을 받는 것이었다. 가족일 수 없는 사이에 끼여 있는 뫼르소에게 가족화된 상황의 연출은 기막힐 따름인 것이다.

 

영화 '베테랑' 속 배우 유아인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베테랑' 속 배우 유아인 (사진 = 네이버 영화)

 

  어이없는 상황을 얼굴로 표현한 유아인처럼 뫼르소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열한 달 동안이나 계속된 그 예심을 치르고 나면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뫼르소는 이따금 판사가 그의 방문까지 뫼르소를 따라 나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은 끝났다며 반기독교 양반이라고 하며 다정스럽게 말해 주던 흔하지 않는 순간들을 즐겼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어이없는 상황극을 즐기는 배우가 돼버린 느낌일 것이다. 판사의 방문을 나서면 뫼르소는 다시 경관들의 손에 맡겨졌다. 상황극의 마무리 장면처럼 말이다.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도 있었다. 형무소에 들어와서 며칠이 지나자 뫼르소는 장차 자신의 생애의 그 시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형무소에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형무소는 모두에게 낯선 공간이다.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광복의 그날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을 그분들이 막연히 무슨 새로운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던 뫼르소와 오버랩 된다.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마리가 처음이자 단 한 번뿐인 면회를 온 다음부터였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 뫼르소는 감방이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생활은 그 속에 한정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위한 직감일 것이다.

  체포되던 날 뫼르소는 여러 수감자들이 들어 있는 감방에 갇히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아랍인들이었다. 그들은 뫼르소를 보고 웃더니 무슨 짓을 했냐고 묻는다. 웃음이 무음으로 변하는 시간은 짧았다. 아랍인을 한 명 죽였다고 대답하니 그들은 잠잠해졌다. 잠시 후 저녁이 되자 그들은 누워 잘 때 돗자리를 어떻게 펴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서열정리가 말 한마디로 끝난 상황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열악한 감방생활을 곧 체감한다. 밤새도록 빈대가 얼굴 위를 기어 다녔다. 며칠 후 뫼르소는 독방에 격리되어 나무판자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변기통과 양철대야가 있었다. 독방이 나을지도 모른다. 형무소는 시가 꼭대기에 있었으므로 조그만 창문으로 바다가 보였다. 그를 위로할 바다였으면 좋겠다. 어느 날 철창에 달라붙어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으려니 바로 그때 간수가 들어와서 면회하러 온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마리라고 뫼르소는 생각했다. 과연 마리였다. 마리가 뫼르소에게 바다이자 빛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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