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귀가 먼저 늙어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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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귀가 먼저 늙어가는 것은
  • 정민나
  • 승인 2020.08.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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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마을]
난청(難聽)에서 얻은 지혜 / 이충하

난청(難聽)에서 얻은 지혜

                                          이 충 하

 

환갑을 지나자

귀가 나빠져 일상의 대화가 어려워졌다

자연 말수가 적어지고

잘못 알아듣고 실수할까봐

고개만 끄덕끄덕하니

마음이 편안해서 좋다

선배 한분

고향친구 모임에서

동생 점잖아 졌네!

환갑을 지나더니

이순(耳順) 되었나 보네, 한다

나는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땃다붓다 해보아야

정답도 없고 결과도 없는 소소한 일에

의견이 다르면 이유를 따져 묻고

논쟁으로 번져 친한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민망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몸에 귀는 둘이고 입은 하나다

노년에 귀가 먼저 늙어가는 것도

귀 기울려 듣고 조심스럽게 말하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이제는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며

소리 없는 꽃처럼 살아간다

 

시적 화자는 환갑이 지나자 귀가 나빠져 소리를 잘 못 듣게 되었다. 소리가 안 들리니 자연히 실수하지 않으려고 말수가 적어졌다. 그것도 모르고 고향 선배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화자를 향해“점잖아졌”다고 말한다. “이순(耳順)이 되었”다고 말한다. 耳順, 한자를 직역하면 ‘귀가 순하다’이다. 또한 귀가 순해지는 나이 예순을 일러 우리는 흔히 이순이라고 한다. “환갑이 지나더니 이순이 되었나 보네”라는 이 한 마디에 화자는 자신을 돌아본다.

정말 그런가? 기실은 환갑이 지나 귀가 나빠졌고 그와 더불어 말수가 적어진 것뿐인데, 몸의 상황으로 달라진 화자의 태도에 선배는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귀가 나빠지기 전까지 화자는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갈수록 심하게 자신의 주장을 멋대로 말하였다. ‘땃다’는 ‘옳다’는 소리이고 ‘붓다’는 ‘틀리다’는 말이다.

서로, 또는 여럿이서‘그렇다’거나 ‘아니다’라고 하면서 옳고 그름을 무질서하게 다투는 모양은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시적 화자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지금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정작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의 주장만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면 주변 분위기는 냉랭해지고 싸해진다. 땃다붓다의 다른 말 ‘따따부따’도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다투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이라고 표현된다.

이순(耳順)과 정 반대의 의미이다. ‘순하다’와 ‘딱딱하다’는 화자 생애의 한 단면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된다.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약해졌을 때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맞는다. 본의 아니게 점잖아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순간부터 그는 점잖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성찰의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노년에 귀가 먼저 늙어가는 것도 /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럽게 말하라는 /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 이제는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며 소리 없는 꽃처럼 살아간다.”

이보다 더 순한 귀가 어디 있을까.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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