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깨우치니, 할 일이 정말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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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깨우치니, 할 일이 정말 많네요"
  • 학오름
  • 승인 2020.11.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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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할매' 저자 윤천순 할머니 인터뷰
60후반에 늦깎이 공부로 비전과 열정이 생겨
'문해교육'을 받고나서 찾은 윤천순 할머니의 꿈
꿈드레센터에서 한글수업을 듣고 있는 윤천순 할머니. 할머니는 센터 수업시간이 두시간밖에 안된다며 더 배우고 싶다고 하신다.

“나이가 몇이든 자기계발에 소홀하면 안 됩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몸이 늙어서 노인이 아니라 정신이 늙어서 노인이더라고요. 자기계발에 손을 떼면 꿈이 사라지더라고요. 꿈이 사라지면 정신이 나이드는 거예요”

2017년부터 G글로벌문화평생교육원에서 성인문해교육 초등과정을 배우고 있는 윤천순 할머니(68)는 지난 9월에 열린 인천시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아무거나 할매’ 시화로 대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한글뿐 아니라 노래교실 등 다른 교육에도 눈을 떠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배우느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교육이 잠시 중단된 상황에서, 노인문화센터를 알아보려던 할머니에게  가족들은 ‘위험하니 집에 계시라’고 만류하기도 하고 방역당국에서도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하며 외출을 자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배움의 끈을 놓을 수 없던 할머니는 집에서 홀로 유튜브 한글 강의영상을 보면서 배움의 갈증을 해소해 왔다.

거리두기가 완화된 요즘은 연수동의 꿈드레 센터에서 매일 두 시간씩 한글 수업을 듣고 있다.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어 독서와 신문읽기에 재미 붙인 할머니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일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에 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도 생기니 '자기계발'을 강조하신다.

어린 시절 윤천순 할머니는 몸 만한 수레를 머리에 이고 시장상인들의 밥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 학교는 꿈도 못 꾸었고 친구들과 편하게 논적도 기억에 없다.

가끔 교복 입고 시장으로 놀러온 또래들을 보면 부모님께 “학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집안 살림도 어렵고 어리광이라 생각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배우고 싶다’는 말을 겨우 삼켰다. 철이 빨리 들은 게 죄라며 웃음을 보이셨다.

‘학교가고 싶다’는 소원을 마음 한켠에 가진 채 시간이 흘러 할머니는 21살에 결혼을 하고 2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까지 30년 넘게 가구 공장에서 일하며 아들 공부도 시키고 모아둔 돈으로 장가도 보냈다.

“선생님이 한번만 제출해보자고해서 낸거였지 대상받을 줄 몰랐어요. 창피했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게 아까워서 ‘한번 내볼게요’ 했던거였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할머니의 시를 보여준다는 게 부끄러워 시화전 출품을 꺼렸다. 평생교육선생님이 정말 잘 쓴 시라고 묵히기 아깝다며 한번만 출품해보자는 권유에 ‘아무거나 할매’ 시를 내봤더니 복권 당첨처럼 우연히 수상했다며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연애편지’ 시로 서울까지 가서 장관상도 받았어요. 그때 울컥했어요. 나 같은 것도 상 받는구나. 난 시를 쓰려고 태어났구나.”

할머니는 시만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덧붙였다. 허송세월로 보냈던 어린시절이 생각나면서 회의감이 들어 ‘왜 배우고싶다는 말을 안했을까’ 라는 후회를 자주했다고 안타까워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고생만 한 원망스러운 어린 시절 회상도 잠시, 시를 쓰면 마음이 차분해져 지금 이렇게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이야기 하신다. 어렸을 때 글을 배웠다면 글공부로만 끝나고 지금처럼 시 쓸 생각은 못했을 거라는 얘기도 했다.

어린 사람들은 경험이 짧아 내가 느낀 감성, 감정들을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연로하다고만 생각했던 할머니의 나이가 시를 지을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경험과 감정들이 원숙 돼 시에 잘 녹일 수 있어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며, 연로하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해 시 쓰는 게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꿈드레 센터에 전시돼있는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대상작, 윤천순 할머니의 '아무거나 할매' 시와 상장
인천지하철 1호선 승객이 전동차 내부에 전시된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대상 작품 '아무거나 할매'를 감상하고 있다.

“환갑이 넘어서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더라고요. 내가 뭘 좋아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이 고민을 시작으로 할머니는 뒤늦게나마 배우고싶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감성적인 편이라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 새로 알게 됐던 것들을 기억에서 끝낼게 아니라 글로 남겨서 두고두고 읽고 싶어요”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알면 생각나는 대로 글도 쓸 수 있고 책을 읽으면서 표현력도 풍부하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고, 이것이 ‘문해교육배우기’에 첫 발을 떼게 된 동기라고 한다. 한글을 배운 이후부터는 시도 짓고 독서도 하고 신문도 읽으며 일기도 쓰고 있다.

“글을 모를 땐 초행길 찾기가 힘들었어요. 글을 못 읽으니 ‘알려줘도 난 모르는구나’하면서 서러운 적이 있었어요. 그 때가 가장 비참했죠”

윤천순 할머니가 성인문해교육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두 번째 계기는 길을 잘 찾고 싶어서였다. 누구든 초행길은 낯설어 지도를 봐도 찾아가기 힘든데 글을 못 읽었던 할머니는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설명을 듣는다 해도 좀 지나면 지도나 표지판과 또 마주쳤다. 글을 읽을 줄 알아야 다시 찾아가는데 까막눈이라 같은 길만 빙빙 돈 적도 있어 원통했다고 전했다.

“요즘 글자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지금 노인들은 한글 배우러 다니는 게 창피하다고 숨어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모르는 걸 알면서도 배우지 않는 게 더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윤천순 할머니는 문해교육을 받고 나서 삶이 분명하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한글을 떼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어 자신감도 함께 생겼다. 글을 깨우친 후에야 세상살이가 새로이 보이고 생활이 즐거워졌다.

이제 윤천순 할머니는 ‘노인 수업’이라는 글자만 보면 용기내서 들어가 무슨 수업인지 먼저 물어본다. ‘문해교육’으로 한글을 깨우쳐 시작한 작은 공부였지만 덕분에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꿈도 생겼다고 한다. ‘시인 윤천순’의 이름으로 시집을 출판해 보는 것이다.

“문해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있어서 나만 잘하면 될 거같아요. 이렇게 더 어려운 공부도하고 고등학교과정까지 배우면서 책도 많이 읽고 감성과 표현력이 더 풍부해지면 내 이름으로 시집도 내보고 싶어요. 또 건강만 따라준다면 어린이집에서 봉사활동도 하면서 선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더 열심히 수련해서 남녀노소에게 공감 받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대상까지 받았는데 이미 시인이시지 않느냐는 물음에 윤천순 할머니는 아직 한참 배우고 있는 학생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또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어린이집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시와 동화를 읽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두 번째 꿈도 있다.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구나. 늙은 건 내 몸이 아니었구나. 내 마음이 늙고 있었구나 깨닫게 됐어요. 늙은 몸으로 뭘 한다고 라는 생각에만 갇혀있었거든요. 지금은 관심사나 생기거나, 뭔가를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면 가슴이 뛰어요”

어떤 일이든 배우면 할 수 있고 도전하는 낙에 살고 있다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문해교육이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의 무지를 일깨워주었다는 생각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윤천순 할머니가 다음에는 어떤 일에 도전해서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줄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윤천순 할머니는 시집도 내고 보육자격증도 따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동화구연선생님으로 봉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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