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침묵과 담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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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침묵과 담담함
  • 김선
  • 승인 2020.10.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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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㉘감방의 시간과 재판의 무대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J’ai souri et elle a gardé le méme air sévére et triste.

나는 빙그레 웃었으나 비친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어느 날 간수로부터 다섯 달이 지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뫼르소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이해하기 전에 지나간다. 뫼르소는 언제나 같은 날이 자신의 감방으로 밀려오는 것과 함께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시간은 그냥 바람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날 간수가 가 버린 뒤에 뫼르소는 양철 밥그릇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인식의 주체를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일까? 뫼르소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무리 웃으려고 해도 여전히 정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시간이 만든 것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 앞에서 흔들어 보았다. 다른 사람의 얼굴인양 강제로 흔드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빙그레 웃었으나 비친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레비스트로스(1955), 슬픈열대
레비스트로스(1955), 슬픈열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을 바라보던 그런 슬픔은 아니지만 뫼르소의 슬픔은 브라질 밀림 속 원주민들이 문명인이라 칭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그 시선 속에 묻어 있는 슬픔처럼 자신을 재단하는 이들이 만들어 준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슬픈 건지 슬프게 보이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색하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뫼르소에게 있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형무소의 모든 층 여기저기로부터 저녁의 소리들이 침묵의 행렬을 지어 올라오는 그러한 시간이었다. 침묵의 움직임을 포착할 만큼 저녁의 소리는 뫼르소에게 힘든 시간인 듯하다. 뫼르소는 천장에 뚫린 창문으로 다가가서 마지막 빛 속에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빛 속에 자신을 내 던지고 싶어서 진지하고 간절하다. 그때 뫼르소는 더욱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여러 달 이래 처음으로 뫼르소는 자신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침묵은 뫼르소 자신의 소리도 빨아들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소리에 뫼르소는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귀에 울리고 있었던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줄곧 자신이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아차렸을까? 뫼르소의 지난 시간들이 궁금해 진다.그때 그는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하필 장례식 날의 말들이 생각났는지 뫼르소는 의아해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정말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의 대화가 앞으로 그를 빠져 나갈 수 없는 감옥처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형무소에서 맞는 저녁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니 뫼르소가 안타깝다.

  여름은 매우 빨리 지나가고 또다시 여름이 되었다. 첫 더위가 심해짐에 따라 또다시 뫼르소는 자신에게 무슨 새로운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사건은 중죄 재판소의 맨 나중 개정기에 심의할 예정으로 그 개정기는 6월로 끝나는 것이었다. 변론이 시작되었을 때 밖에는 햇빛이 가득했다. 햇빛을 뫼르소는 늘 느끼고자 하는 것 같다. 변론은 이삼일 이상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변호사는 단언했다. 게다가 뫼르소의 사건이 이번 회기의 제일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서 재판정에서도 서두를 것이며 뒤이어서 곧 존속살해 사건을 심의할 거라고 변호사는 덧붙였다. 아직까지 뫼르소의 시간은 순조로워 보인다.

  뫼르소는 아침에 불려 나가서 호송차로 법원까지 호송되었다. 간수 두 사람의 지시에 따라 어둠침침한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 앉아 기다렸는데 옆으로 있는 문 뒤에서 말소리, 부르는 소리, 의자 소리 등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프란시스 고야,1815~19,종교재판소 광경
프란시스 고야,1815~19,종교재판소 광경

 

고야가 그린 종교재판소 광경처럼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듯 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에게 예사소리는 아닐 듯싶다. 소리가 재판을 준비하는 것 같다. 그 순간 재판관의 출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간수들이 뫼르소에게 말했고 간수 하나는 담배 한 대를 뫼르소에게 권했으나 뫼르소는 거절했다. 호기심인지 긴장감인지 자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뫼르소다. 간수도 그랬나 보다. 조금 뒤에 간수가 뫼르소더러 떨리느냐고 물었다. 뫼르소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담담함으로 일단락 났다. 심지어 어떤 의미로는 재판 구경을 한다는 것이 뫼르소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까지 했다. 호기심까지 발동되는 형국이다. 뫼르소는 평생에 여태껏 그런 기회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할 말을 없게 만든다. 이런 경험까지 기대하는 사람이 뫼르소인 것이다. 뫼르소를 평범하게 대하는 다른 간수가 볼 만은 하지만 나중에 싫증이 나고 만다고 말한다. 간수는 뫼르소의 호기심에 직업적으로 응답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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